17일 오후 독극물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15일 경북 상주시 공성면 금계1리 마을회관 앞에 선을 치고서 통제하고 있다. 2015.7.17 (상주=연합뉴스)
검찰, 피의자 박아무개씨 구속 기소
“평소 싸움 잦아…사건 전날도 큰 다툼”
“평소 싸움 잦아…사건 전날도 큰 다툼”
대구지검 상주지청(지청장 신영식)이 13일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의 피의자 박아무개(82)씨를 구속 기소했다. 지난달 27일 경북 상주경찰서로부터 사건을 넘겨 받은 지 18일 만이다. 검찰은 박씨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피해 할머니들과 화투를 하다가 심한 싸움을 했던 것이 범행 동기로 보인다고 밝혔다. 할머니들과는 평소에도 마을회관에서 함께 화투를 하다가 속임수를 쓴다는 이유 등으로 자주 싸웠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난 전날에도 피해자인 민아무개(84) 할머니가 피의자 박씨와 싸우다가 화투패를 집어던지고 나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박씨가 계획적으로 범행을 했고 범행 이후에도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며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물증은 없는데다가 박씨가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진실은 재판에서 가려지게 됐다.
■ 피의자 박씨의 이상한 행동들
검찰과 경찰의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달 14일 경북 상주시 공성면 금계1리 마을회관 안에서 할머니 6명이 농약이 든 사이다를 마시고 쓰러진 것은 오후 2시43분께로 추정된다. 당시 마을회관 안에 있던 할머니들 가운데 유일하게 피의자인 박씨만 농약이 든 사이다를 마시지 않았다. 첫 신고는 오후 2시51분께 마을회관 바로 왼쪽 집에 사는 주민 박아무개(63)씨가 했다. 신고를 한 박씨는 이장인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집으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피의자 박씨는 쓰러진 할머니들을 구하기 위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119 구급대원이 혼자 밖으로 나와 쓰러진 신아무개(65) 할머니만 구급차에 태워 갈 때도 박씨는 마을회관 앞에 앉아 먼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박씨는 그러다가 마을회관 앞에서 이웃 할머니의 손자를 만나자 웃으면서 “너그 할매 뭐하시노. 병이 나으면 놀러오라고 해라”라고 말했다.
마을회관 안에 쓰러져 있던 할머니 5명은 한시간이 지난 오후 3시45분께 마을 이장의 두번째 신고로 병원에 뒤늦게 옮겨졌다. 사건 직후 피의자 박씨는 첫 신고를 한 박씨와 함께 경찰차를 타고 조사를 받으러 갔다. 당시 신고자 박씨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했지만, 피의자 박씨는 웃으면서 전화통화를 하는 모습이 경찰차량 블랙박스 영상에 남았다.
또 마을회관 밖에 나와 쓰러진 신씨를 보고도 박씨는 그냥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박씨는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119 구급대원에게 “사이다 때문에 할머니들이 쓰러졌다”고 말했다는 진술까지 나왔다.
검찰 관계자는 “사이다를 먹어서 일어난 사고라는 것을 피해자들도 모르는 상황에서 피의자는 어떻게 알았는지 사이다가 원인이라고 말했다. 박씨의 이런 행동들은 여러모로 의심스럽다. 범행을 은폐하려는 정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러 물증과 엇갈리는 박씨의 거짓말
피의자 박씨 집 앞마당에서는 지난달 15일 오후 3시30분께 뚜껑이 없는 자양강장제 병이 발견됐다.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을 의뢰한 결과 이 자양강장제 병에서는 살충제인 메소밀 성분이 나왔다. 사건 당시 농약이 들어 있던 사이다 병은 이 자양강장제 뚜껑으로 닫혀 있었다.
경찰은 지난달 17일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딸이 있는 대구에 가 있던 박씨를 체포했다. 이날 오후 2시께 박씨의 집 뒷마당에서는 살충제 메소밀이 들어 있는 검은 비닐봉지도 발견됐다. 박씨의 집 안에서는 메소밀이 검출된 자양강장제 병과 제조번호가 동일한 자양강장제 9병이 발견됐다. 자양강장제는 10병이 한 박스다.
메소밀 성분은 피의자 박씨의 바지와 상의, 전동휠체어, 지팡이 등 모두 21곳에서 검출됐다. 피의자 박씨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들의 입을 닦아주다가 메소밀이 묻은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분비물에서 메소밀 성분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검찰은 “부검결과 숨진 피해자들의 위 내용물의 역류 흔적을 볼 수 없고, 메소밀 중독의 주요 증상이 타액 과다분비인 점에 비춰 분비물은 타액에 불과하고 토사물은 아니다”라고 했다.
피의자 박씨는 또 “냉장고에서 사이다를 꺼낸 것은 피해자인 민아무개(83) 할머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회복된 민씨는 검찰 수사에서 “내가 사이다를 꺼내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또 신고를 안한 이유에 대해 박씨는 경찰에 “전화를 걸줄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씨의 휴대전화에서는 발신 내역이 나왔다.
■ 계획적이고 치밀한 범행?
검찰은 지난달 30일과 31일 피의자 박씨를 상대로 심리생리검사(거짓말탐지기 검사)와 행동분석검사, 임상심리검사를 했다. 그 결과 박씨는 경찰과 검찰에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임상심리검사에서 박씨는 분노조절이 어렵고 공감능력이 부족한 성향이 있다고 나왔다.
피의자 박씨는 사건 당일 오후 1시9분께 집을 나섰던 것으로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 분석 결과 확인됐다. 하지만 박씨는 평상시 전혀 간 적이 없었던 민씨의 집에 들렀다가 마을회관으로 갔다. 민씨는 전날 화투를 하다가 박씨와 심하게 싸운 할머니다. 검찰은 “피의자는 민씨가 마을회관에 가는지 여부를 미리 확인하기위해 민씨 집에 들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마을 입구 폐회로텔레비전 영상을 분석하고 마을 전체 주민(42가구 86명)을 상대로 조사를 한 결과 다른 의심가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의자 박씨가 평소 마을회관에서 할머니들이 사이다를 즐겨 마신다는 사실을 알고서 몰래 사이다에 메소밀을 넣어놓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법정에서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할 것에 대비해 주임 검사가 직접 공판에 관여하고 각계 전문가들의 증언을 적극적으로 받을 계획이다. 적극적인 공소 유지로 피의자가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구/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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