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육종을 앓고 있는 한민철(가명)군이 지난 6일 경기도 고양 국립암센터에서 어머니와 함께 병실로 걸어가고 있다. 고양/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016 나눔꽃 캠페인]
‘뼈에 생기는 암’ 고통 한민철군
‘뼈에 생기는 암’ 고통 한민철군
병원 가는 길, 봄바람이 상쾌했다. 한민철(가명·19)군은 차창을 내리고 바람을 맞으며 “이런 날 자전거 타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전거 타기’는 한군이 가장 좋아했던 취미다. 매일 30분씩 등하굣길을 자전거로 다녔고, 주말에도 호수공원을 질주했다. 내달리는 상상을 하면 절룩거리는 다리, 물 한 모금 넘기기 어려울 만큼 부어버린 식도, 힘겨운 가정 형편은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머릿속으로 자전거를 내달리는 동안 차는 어느새 병원에 도착했다.
아버지 사업실패뒤 두번째 불행
고3때 다리서 시작해 척추 전이
대학 진학 부푼 꿈마저 무너져
집안 빚 아직 1억…벌이 130만원뿐 그래도 희망 잃지 않는 긍정맨
“저는 정말 곧 나을 거에요”
병상에서 가족 걱정하는 효자
“부모님 고생 덜게 일하고 싶어” “저는 정말 곧 나을 거라니까요.” 골육종 치료를 위해 지난 6일 다시금 항암치료를 시작한 한군이 말했다. 그는 의사 선생님도 인정하는 “병원 안에서 가장 긍정적이고 속 깊은” 환자다. ‘골육종’. 어머니 강혜선(가명·56)씨가 한군이 앓고 있다는 이름도 생경한 이 병명을 동네 정형외과에서 처음 듣게 된 건 지난해 9월이었다. 아들을 진료실에서 내보낸 뒤 강씨는 “그게 무엇이냐”고 의사에게 되물었다. “뼈에 생기는 암”이라는 얘기를 듣고 주저앉아 울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뒤 가족에게 두번째로 찾아온 불행이었다. 눈물을 훔치고 아들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결심했다. “정말로 그때는 끝까지 숨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국립암센터로 와서 확진을 받고,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 어렵게 말을 건넸는데 민철이가 의연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 강씨가 아들의 어깨를 쥐며 말했다. 치료가 시작된 뒤 약을 먹고, 구토를 하고, 갑자기 열이 올라 수차례 응급실에 실려왔지만 한군은 여전히 “그냥 감기처럼 지나가는 병”일 거라고, “곧 나을 거라”고 자신과 엄마를 다독인다. 강씨는 “아프기 전에도 ‘손목 안 좋은데 무거운 짐 들지 말라’며 장바구니를 늘 들어주던 아들”이라며 “지금도 민철이는 저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라고 말했다. ‘다 자란 아들’의 마음은 엄마보다도 굳셌지만, 몸 상태는 심상치 않았다. 다리에서 시작된 골육종이 이미 척추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한군의 담당 의사인 박병규 국립암센터 교수는 “골육종의 경우 전이가 되면 위험해진다. 암이 시작된 다리 부분은 수술을 진행해 암세포를 제거했지만, 문제는 암이 옮겨간 척추”라며 “척추의 경우 뼈가 무너질 염려가 있어 직접 수술을 할 수 없어 방사선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6개월 정도 치료가 이어지는데, 그보다 훨씬 긴 기간 동안 병의 예후를 살펴야 한다. “방사선 치료 등이 이어지는 ‘지금’이 한군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박 교수가 강조했다. 병을 알기 전까지 한군은 수능을 준비하는 고3 수험생이었다. 다리에 불편함을 느낀 건 지난해 5월이었지만, 그저 운동하다 삐끗한 것으로만 여기고 수능 생각에 검진을 미뤘다. 어머니 강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보내줄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을 때, 아들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기 위해 국가장학금이라도 받아 대학만은 가고 싶다며 열의를 불태웠다”고 말했다. 한군이 대학에 가기로 마음먹은 건 “부모님 고생을 끝장낼 만한 번듯한 직장을 구하고 싶어서”였다. 전공도 ‘취업이 잘된다’는 컴퓨터 관련 학과를 생각하고 있었다. 대학에 가려던 꿈은 같은 해 가을 골육종 진단을 받으며 무너졌다. “결국 대학에는 가지 못했지만 3D 그래픽 자격증 공부를 해볼까 해요. 그쪽 업계는 학벌이나 배경 같은 것 보지 않고 열심히 하면 돈도 안정적으로 벌 수 있다고 해서요.” 한군은 병상에서도 부모님을 위해 얼른 돈을 벌고 싶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한군의 ‘돈 걱정’은 8년여 전 아버지의 사업 실패 뒤부터 시작됐다. 가족은 극한까지 내몰렸다. 집과 차가 경매로 넘어갔다. 그럼에도 채 갚지 못한 빚 탓에 채무자들이 집 대문을 두드렸다. 급하게 일을 시작한 어머니도, 친구의 회사로 적으나마 돈을 벌러 나간 아버지도 없는 집에서 한군과 누나는 귀를 막고 아빠를 찾는 채권자들이 내는 소란을 견뎠다. 강씨는 “정말 아들 앞에서 이런 얘기를 해선 안 되지만, 그때는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극한에 몰려 있었다. 하루하루 고단한 삶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기까지 했다”며 울었다. 한군이 묵묵히 당시 이야기를 꺼내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지금도 가족의 형편은 넉넉하지 않다. 아직 남은 빚은 1억여원, 한군을 비롯한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질 소득은 아버지가 벌어오는 한 달 130만원이 전부다. 어머니는 한군을 간병하기 위해 일을 그만뒀다. 벌이는 줄었지만 돈 들어갈 곳은 늘었다. 7개월 동안 한군의 치료비로만 2000만원 정도 돈이 들어갔고 앞으로도 1500만원 넘는 돈이 필요하다. 한군네 다섯 식구가 사는 임대아파트에도 다달이 53만원의 월세를 내야 한다. 여기에 생활비도 든다. 아무리 궁리해봐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막막한 상황이에요. 이전엔 보건소에서 진료비 지원이 나왔었는데, 이제 민철이가 어른이 돼서 받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다른 아픈 아이들도 많으니까 그 친구들을 위해서 쓰는 게 맞겠지만요.” 강씨는 막막한 와중에도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는 다른 이들을 떠올렸다.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받으며 85㎏이던 체중이 68㎏까지 내려가는 등 한군은 말라갔다. 최근에 가장 힘든 건 방사선치료로 식도가 부어오른 것이다. 식도에 생기는 염증은 암세포를 죽이기 위한 방사선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밥은 물론 침을 삼키는 것조차 고통스럽다. 하루 종일 우유와 병원에서 처방한 영양바 2개 정도만 먹으며 한군은 한 달여를 버티고 있다. 봄이 왔고 친구들은 저마다 대학 생활을 시작했지만 한군은 병상에 남았다. 그래도 그는 “괜찮다”고 했다. “친구들이 자주 찾아와주니까 괜찮고, 제가 원래 운동을 많이 해서 치료가 독해도 잘 버틸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한군이 엷게 웃었다. 그는 “내 힘으로 돈을 벌어 부모님 모시고 제주도 여행 가는 꿈”을 새기며 다시 한번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한겨레 나눔캠페인 참여하려면 한민철군과 가족을 돕고 싶다면 계좌이체(국민은행 762301-04-198569, 예금주: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를 해주세요. 민철군에게 필요한 돈은 치료비(1500만원)와 경제지원 자금(500만원) 등 2000여만원입니다. 모금액은 모두 민철군과 가족에게 쓰일 예정입니다. 작은 정성을 모으면 민철군이 골육종을 딛고 꿈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민철군에게 또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1544-1415)로 문의하시면 됩니다.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누리집(www.soaam.or.kr)에서도 배너를 클릭해 모금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모금에 참여한 뒤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로 연락하면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받을 수 있습니다. 방준호 기자
고3때 다리서 시작해 척추 전이
대학 진학 부푼 꿈마저 무너져
집안 빚 아직 1억…벌이 130만원뿐 그래도 희망 잃지 않는 긍정맨
“저는 정말 곧 나을 거에요”
병상에서 가족 걱정하는 효자
“부모님 고생 덜게 일하고 싶어” “저는 정말 곧 나을 거라니까요.” 골육종 치료를 위해 지난 6일 다시금 항암치료를 시작한 한군이 말했다. 그는 의사 선생님도 인정하는 “병원 안에서 가장 긍정적이고 속 깊은” 환자다. ‘골육종’. 어머니 강혜선(가명·56)씨가 한군이 앓고 있다는 이름도 생경한 이 병명을 동네 정형외과에서 처음 듣게 된 건 지난해 9월이었다. 아들을 진료실에서 내보낸 뒤 강씨는 “그게 무엇이냐”고 의사에게 되물었다. “뼈에 생기는 암”이라는 얘기를 듣고 주저앉아 울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뒤 가족에게 두번째로 찾아온 불행이었다. 눈물을 훔치고 아들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결심했다. “정말로 그때는 끝까지 숨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국립암센터로 와서 확진을 받고,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 어렵게 말을 건넸는데 민철이가 의연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 강씨가 아들의 어깨를 쥐며 말했다. 치료가 시작된 뒤 약을 먹고, 구토를 하고, 갑자기 열이 올라 수차례 응급실에 실려왔지만 한군은 여전히 “그냥 감기처럼 지나가는 병”일 거라고, “곧 나을 거라”고 자신과 엄마를 다독인다. 강씨는 “아프기 전에도 ‘손목 안 좋은데 무거운 짐 들지 말라’며 장바구니를 늘 들어주던 아들”이라며 “지금도 민철이는 저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라고 말했다. ‘다 자란 아들’의 마음은 엄마보다도 굳셌지만, 몸 상태는 심상치 않았다. 다리에서 시작된 골육종이 이미 척추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한군의 담당 의사인 박병규 국립암센터 교수는 “골육종의 경우 전이가 되면 위험해진다. 암이 시작된 다리 부분은 수술을 진행해 암세포를 제거했지만, 문제는 암이 옮겨간 척추”라며 “척추의 경우 뼈가 무너질 염려가 있어 직접 수술을 할 수 없어 방사선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6개월 정도 치료가 이어지는데, 그보다 훨씬 긴 기간 동안 병의 예후를 살펴야 한다. “방사선 치료 등이 이어지는 ‘지금’이 한군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박 교수가 강조했다. 병을 알기 전까지 한군은 수능을 준비하는 고3 수험생이었다. 다리에 불편함을 느낀 건 지난해 5월이었지만, 그저 운동하다 삐끗한 것으로만 여기고 수능 생각에 검진을 미뤘다. 어머니 강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보내줄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을 때, 아들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기 위해 국가장학금이라도 받아 대학만은 가고 싶다며 열의를 불태웠다”고 말했다. 한군이 대학에 가기로 마음먹은 건 “부모님 고생을 끝장낼 만한 번듯한 직장을 구하고 싶어서”였다. 전공도 ‘취업이 잘된다’는 컴퓨터 관련 학과를 생각하고 있었다. 대학에 가려던 꿈은 같은 해 가을 골육종 진단을 받으며 무너졌다. “결국 대학에는 가지 못했지만 3D 그래픽 자격증 공부를 해볼까 해요. 그쪽 업계는 학벌이나 배경 같은 것 보지 않고 열심히 하면 돈도 안정적으로 벌 수 있다고 해서요.” 한군은 병상에서도 부모님을 위해 얼른 돈을 벌고 싶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한군의 ‘돈 걱정’은 8년여 전 아버지의 사업 실패 뒤부터 시작됐다. 가족은 극한까지 내몰렸다. 집과 차가 경매로 넘어갔다. 그럼에도 채 갚지 못한 빚 탓에 채무자들이 집 대문을 두드렸다. 급하게 일을 시작한 어머니도, 친구의 회사로 적으나마 돈을 벌러 나간 아버지도 없는 집에서 한군과 누나는 귀를 막고 아빠를 찾는 채권자들이 내는 소란을 견뎠다. 강씨는 “정말 아들 앞에서 이런 얘기를 해선 안 되지만, 그때는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극한에 몰려 있었다. 하루하루 고단한 삶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기까지 했다”며 울었다. 한군이 묵묵히 당시 이야기를 꺼내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지금도 가족의 형편은 넉넉하지 않다. 아직 남은 빚은 1억여원, 한군을 비롯한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질 소득은 아버지가 벌어오는 한 달 130만원이 전부다. 어머니는 한군을 간병하기 위해 일을 그만뒀다. 벌이는 줄었지만 돈 들어갈 곳은 늘었다. 7개월 동안 한군의 치료비로만 2000만원 정도 돈이 들어갔고 앞으로도 1500만원 넘는 돈이 필요하다. 한군네 다섯 식구가 사는 임대아파트에도 다달이 53만원의 월세를 내야 한다. 여기에 생활비도 든다. 아무리 궁리해봐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막막한 상황이에요. 이전엔 보건소에서 진료비 지원이 나왔었는데, 이제 민철이가 어른이 돼서 받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다른 아픈 아이들도 많으니까 그 친구들을 위해서 쓰는 게 맞겠지만요.” 강씨는 막막한 와중에도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는 다른 이들을 떠올렸다.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받으며 85㎏이던 체중이 68㎏까지 내려가는 등 한군은 말라갔다. 최근에 가장 힘든 건 방사선치료로 식도가 부어오른 것이다. 식도에 생기는 염증은 암세포를 죽이기 위한 방사선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밥은 물론 침을 삼키는 것조차 고통스럽다. 하루 종일 우유와 병원에서 처방한 영양바 2개 정도만 먹으며 한군은 한 달여를 버티고 있다. 봄이 왔고 친구들은 저마다 대학 생활을 시작했지만 한군은 병상에 남았다. 그래도 그는 “괜찮다”고 했다. “친구들이 자주 찾아와주니까 괜찮고, 제가 원래 운동을 많이 해서 치료가 독해도 잘 버틸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한군이 엷게 웃었다. 그는 “내 힘으로 돈을 벌어 부모님 모시고 제주도 여행 가는 꿈”을 새기며 다시 한번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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