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일해재단을 방문해 조사하는 국회 5공비리 특별위원회 위원들. <한겨레> 자료사진
‘최순실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기금 모금 과정의 불법성을 확인하고도 이를 뇌물로 보지 않겠다고 밝혀, 이번 수사가 과거 ‘일해재단’ 수사처럼 결론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당시 기업 총수가 국회에 나와 일해재단 기금 모금의 강제성을 증언했음에도 검찰은 “강제성은 없었다”며 관련자들을 기소하지 않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설립한 일해재단(현 세종연구소)은 미르·케이스포츠재단의 모금 방법과 실체 논란 등이 비슷해 자주 비교된다. 일해재단도 당시 많은 증언이 있었지만 검찰이 전씨 등 관련자들을 뇌물 혐의로 기소하지 않아 ‘부실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일해재단은 전씨가 1983년 10월 버마 아웅산 폭발사고 유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려던 공익법인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후 장학재단, 국가안보 연구소로 모습을 바꾼 일해재단은 기업 기부금으로 1984년 3월~1987년 12월까지 598억5000만원을 모았다.
특히 설립자인 전씨를 당연직 총재로 한다는 규정을 1986년 신설해 전씨의 퇴임 이후를 대비하려는 ‘사금고’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해재단에 기부금을 낸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88년 11월 국회 ‘5공비리 특별위원회(5공 특위)’ 청문회에 “1985년 이후의 기부금은 내라고 하니까 내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해 냈다”고 강제성을 인정하기도 했다. 1990년 7월 활동을 종료한 국회 5공 특위는 일해재단 설립 과정과 자금 조성 등에 잘못이 있다며 현재 시설은 축소하고, 남은 재산을 국가에 귀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론 내렸다. 결국 1991년 정부는 세종연구소와 협의해 대부분의 터와 시설을 국가에 귀속시켰다.
하지만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검찰 ‘5공비리 특별수사부(부장 박종철)’는 1989년 1월 “기업들이 당초 모금계획을 훨씬 초과하는 기부금을 출연한 것은 현직 대통령이 재단을 설립한 사실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모금과정에서의 강제성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특혜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핵심 의혹은 그냥 둔 검찰은 일해재단 영빈관 건축 과정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을 구속기소했으나, 직권남용 혐의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당시 검찰 수사는 법조계에서 “본질은 벗어난 채 권력형 비리를 개인 비리로 국한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검찰이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영장에 적용한 직권남용 혐의를 기소 때까지 유지한다면 일해재단 수사와 판박이가 될 거란 지적이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김종보 변호사는 “일해재단의 수사와 기소는 사건의 본질을 밝히지 못한 수박 겉핥기식 수사였다”며 “이번 수사가 일해재단과 똑같은 결론으로 끝나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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