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인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오전 10시 ‘법꾸라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던 시각, 서울중앙지검에서 100m 떨어진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원조 법꾸라지’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섰다. 김 전 실장 쪽은 “여론재판과 정치적 표적수사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하며 혐의를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황병헌)는 이날 김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5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상률(57)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김소영(51) 전 청와대 문체비서관의 첫 정식재판을 열었다. 김 전 비서실장은 수의 대신 회색 스웨터에 검은색 코트를 두른 채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꼿꼿한 자세로 방청석을 둘러보는 듯 비교적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재판 도중 변호인과 여러 차례 귓속말을 나누며 변론 전략을 ‘코치’하기도 했다.
조 전 장관도 수의 대신 흰색 라운드 티에 검은색 정장을 입었다. 머리가 길게 자라 귀를 덮었고, 화장기 없는 얼굴이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조 전 장관은 반듯한 자세로 앉은 뒤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방청석 쪽에 등을 보였다.
이날 특검과 김 전 비서실장, 조 전 장관 쪽은 20~40쪽에 달하는 파워포인트 자료를 동원하는 등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먼저 특검이 김 전 실장 등에 대한 공소 사실을 낭독한 뒤 “피고인들이 정부와 청와대에 이견을 표명하는 세력을 반민주 좌파 세력으로 규정해 정권에 대한 비판을 막는 등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흔들었다”고 정리했다.
김 전 실장 변호인은 “특검의 주장은 몇 가지 잘못된 편견 내지 선입관에서 나온다. 이 사건을 예술의 자유를 침해한 중대한 범죄로 보는 것은 편견”이라며 맞섰다. 40여분에 걸친 모두 진술에서 김 전 실장 쪽은 “김 전 실장이 대통령 다음으로 권한이 센 사람으로서 소위 ‘왕수석’이라고 해서 모두 김 전 실장에 의해 (기획)된 것이고,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선입관”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 전 실장은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에 관여됐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추측에 따른, 여론재판과 정치적 표적수사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전 비서실장 쪽에선 10여명의 변호사가 법정에 나와 그를 방어했다.
조 전 장관 변호인도 “조 전 장관이 청와대 재임 당시 정무수석실 소속 직원이 지원배제 업무에 협조했다고 해서, 당시 정무수석인 피고인이 당연히 알고 가담했을 거라고 추측하는 것은 오해”라고 했다. 발언권을 얻은 조 전 장관은 “지금까지 저에 대한 깊은 오해가 쌓여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제가 겪은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소상히 밝히겠다”고 말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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