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없다옹.” 수술 직후 무기력하게 집사를 바라보는 라미(오른쪽)와 보들이.
그날은 어느 날 갑자기 왔다.
3월 중순 보들이에게 구충제를 먹이러 병원에 갔다. 수의사 선생님이 “이제 날 따뜻해지면 얘네들(라미와 보들이) 발정 올 텐데, 수술 날짜 한번 봐드릴까요?”라고 했다. 어느덧 라미는 생후 7개월을, 보들이는 6개월을 지나고 있었다. 언젠간 겪어야 할 일이었다.
2주 뒤로 잡았다. 둘 다 암컷이라 (비록 1㎝ 남짓이지만) 배를 째야 하는 대수술이었다. 수컷들은 피부조직만 절개하면 된다는데…. 별생각 없이 첫째를 암컷으로 들인 뒤 ‘혹시 발정기가 다가와 의도치 않게 눈이 맞을까봐’ 둘째마저 암컷으로 들인 게, 처음이자 아마 마지막으로, 후회됐다. 얼마나 아플까.
좀 천천히 왔으면 하는 날일수록 금방 다가왔다. 물과 사료를 먹지 못한 전날 밤부터 ‘짠’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라미는 피검사를 할 때부터 병원이 떠나가라 울어 젖혔다. 수술하기 전 수의사 선생님이 설명을 했는데, 검사 결과만 봐도 둘의 성격이 보인다고 했다. 쉽게 말해, 라미는 급하고 까칠하면 높게 나오는 간수치(?) 같은 게 정상 범위를 넘나들고 있었다.
수술엔 30분, 이후 마취가 깨는 데 2~3시간이 더 걸린다고 했다. 3시간쯤 뒤 다시 병원엘 갔을 때 목이 쉰 라미에게선 쇳소리가 났다. 보들이는? 전 과정을 통틀어 “냐옹~” 하고 한번 울었다고 했다. 저렇게 시끄러운 고양이와 조용한 고양이는 각각 처음 본다고 했다.
라미는 집에 오는 길 내내 목이 쉰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울었다. 겨우 집에 풀어놓으니 여기 툭, 저기 툭 넥칼라를 찬 줄 모르고 걸어가다 부딪히기 일쑤였다. 휘청대거나 느릿느릿 걷다가 넘어지기도 여러 번. 처음엔 소파에도 뛰어오르지 못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려면 한번은 겪어야 하는 거”라고, 위로를 했지만 깨방정 라미가 옴짝달싹 못 하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또 짠했다. 때는 바야흐로 봄날이거늘, 한없이 무기력한 고양이들이라니…. 짧으면 10년, 길면 15년쯤 뒤 얘네들이 늙고 병들었을 때를 미리 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넥칼라를 찬 탓에 그들 삶의 일부인 그루밍을 못 한다는 점이었다. 수술 부위는 아프면서도 간지러울 텐데 거길 보지도 핥지도 못 하는 모습이, 지켜보는 내가 안타까워 못 견딜 지경이었다. 이래서 수의사 선생님이 “절대 마음 약해져서 넥칼라 빼심 안 됩니다”라고 당부했던 거였다.
그런데 역시나 이 무기력함과 안타까움은 반나절을 넘기지 못했다. 짧으면 하루, 길면 이틀 정도 힘없이 있는다는데 저녁이 되자 평소처럼 싱크대를 쉼없이 오르내리고 서로 레슬링까지 하면서 지들이 개복수술을 했단 사실을 잊은 듯 보였다. 얼굴이 ‘넙데데’한 보들인 혓바닥이 물에 닿기 전에 넥칼라가 접시에 걸려 물을 잘 먹지 못했는데, 그게 또 얼마나 웃긴지. 넥칼라 둘레보다 훨씬 큰 냄비에 물을 담아줬더니 반쯤 먹다 또 장난을 치질 않나.
그래, 고생했으니 실컷 뛰어놀아라. 묘생 최대의 이벤트를 잘 넘겼으니,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수술비 76만원쯤 아깝지 않…으니. 흑흑.
서대문 박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