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내게 소개팅을 해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이제 그 사람들의 소개팅 밑천도, 나의 인맥도 다 바닥났다. 대신 다시 두 종류의 사람이 생겼다. 라미와 보들이의 보모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고양이와 함께 살면 명절이나 휴가 때 긴 시간 집을 비우는 게 불가능하다는 얘긴,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데 각오한다고 명절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냥이들에게 아늑한 보금자리가 필요한 것처럼 내게도 명절이면 엄마의 따뜻한 밥이 필요했다. 한달짜리 휴가는 못 가더라도 벚꽃 피면 섬진강에 라이딩도 가야 했고, 지리산 둘레길도 걸어야 했다.
화장실과 사료, 물만 잘 마련해두면 길게는 2박3일까지 집을 비워도 되는 게 고양이 키우기의 장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료야 뭐 평소에도 자율배식을 하는 냥이들이 대부분이니 쌓아두고 가면 큰 문제 될 게 없었다.
문제는 화장실과 물. 120리터 리빙박스 두개를 붙여서 만든 라미와 보들이의 화장실은 아마 서울 서대문구 안에선 가장 크겠지만, 아침에 청소를 한 뒤 저녁 늦게 들어가면 맛동산(똥)과 감자(오줌)가 한가득이다. 3일 동안 안 치우면? 모래 반 똥오줌 반이 될 것이다. 까탈스런 라미는 접시에 담긴 물도 반나절만 지나면 더럽다고 안 먹으니 감자는 좀 적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보모 이모들의 핵심 세 가지 임무가 밥 주고, 물 갈아주고, 화장실 청소해주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껏 방문한 보모 이모들 대부분이 냥이를 키우거나 키웠거나 좋아하는 이모들이라 이들은 이 세 가지 임무를 후다닥 해치운 뒤에 라미와 사진을 찍거나 구석으로 숨는 보들이를 쫓으며 ‘힐링’을 하고 돌아갔다(고 믿는다).
물론 아주 작은 해프닝은 있었다. 냥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J이모는 화장실을 치우면서 별생각 없이 코를 들이밀다 그날 내내 심한 두통에 시달렸고, Y이모는 밥을 주고 있는데 라미가 등에 올라타는 바람에 놀라 자빠질 뻔했다고 한다.
냥이들도 할 말은 있을 거다. 일단 밥그릇에 하루치의 절반을 채우고 나머지 절반은 타이머 식기에 담은 뒤 12시간 뒤에 열리게 맞춰야 하는데, 다음날 저녁 그러니까 밥 먹어야 하는 시각으로부터 12시간이 지난 뒤 내가 도착했을 때까지 열리지 않은 적도 두!번! 있었다. 24시간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다는 뜻. 뭐 아무렴 어쩌랴. 냥이들에겐 미안하지만, 이모들에겐 와서 봐준 것만도 고마울 따름이다.
예전 어른들은 “애들은 동네가 키운다”고 했다. ‘겨우’ 냥이들을 키우면서도 이 말을 실감하는 중이다. 머지않아 라미와 보들이의 한살 생일이 되면 이 고마운 보모 이모들을 모시고 감사의 생일상을 차릴 작정이다. 일단 그 전에 여름휴가를 넘겨야 한다. K이모, J이모1, J이모2, Y이모, P이모…. 우리 집 현관 비번 알죠? 그대로예요.
아, ‘왜 보모들이 죄다 이모들이냐’고 물으신다면…“라미와 보들이가 같은 성별의 이모들을 편하게 생각해서”라고 답하겠다. 별 이유는 없다는 뜻. 삼촌도 대환영이다.
서대문 박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