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집사입니다. 다른 준비는 다 끝났는데, 냥이 털이 많이 날린다는데 어느 정도인가요? 매일같이 청소기 돌려야 하는 정도인가요?”
고양이 털 날림(날린다는 표현도 많이 봐준 거다)은 예비·현직 집사 모두에게 고민거리다. 집사가 되기 전엔 당최 얼마나 날리길래 그러는지 알 수가 없고, 집사가 되고 나면 ‘이 털을 어찌해야 하나’라는 번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키우기 전에 털 때문에 포기하는 일은 잘 없다. 고양이와의 동거는 털과의 동거라는 것 정도는 함께 살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니까. “사람도 털 빠지는데 뭐. 고양이는 뭐 물론 사람보다 많이 빠지겠지만, 치우면 되지. 그 정도는 각오돼 있어”라고, 내가 그랬다. 모르고 한 소리였다.
실내에 사는 고양이들은 1년 내내 털갈이를 한다는데… 웬걸, 라미랑 보들이는 겨울이 지나 봄이 올 때까지도 비교적 양호한 편이었다. 그러다 슬슬 따뜻해지기 시작하면서 본색을 드러냈다. 중성화수술을 하던 3~4월부터였으니 날씨 때문인지 개월 수가 찼기 때문인지는 내년 봄이 돼야 알겠지만.
털이 빠지는 게 아니라 뿜는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외모에서 보듯 보들이의 털 뿜뿜 능력이 월등하다. 슥 스치기만 하면 그게 옷이든 피부든 물건이든 벽이든 흔적이 남는다. 여름이 되고 더위가 시작되면서 극에 달했고 달하는 중이다. 털이 빠지면 다시 나기까지, 그러고는 다시 빠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텐데 이건 뭐 끝도 없이 빠지는데 끝도 없이 새로 나는 듯하다. 테이프 클리너(일명 돌돌이)로는 감당이 안 돼 정전기 작용으로 죽은 털을 제거하는 장갑을 샀는데 한두번 슥슥 문지르면 장갑이 깔끔하게 털코팅 된다. 서너번 문질러 수확한 털이면 찹쌀 도너츠 크기의 털공을 만들 수 있다.
보들이에 비해 양호했던 라미도 날이 더워지니 어쩔 수 없이 털 뿜뿜에 동참했다. “청소를 해도 그때뿐”이라는, 오래전 엄마가 하시던 말을 그대로 내가 하고 있다. 청소 직후 털이 없는 순간을 좀 즐길라치면, 둘은 또 레슬링을 한다. 털뭉치들이 뚝뚝 떨어진다. 선풍기 바람에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린다.
다행히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 어떻게든 살긴 한다. (내) 밥그릇에 떨어진 털 한두개쯤은 그냥 무시하게 됐다. ‘저런 털들이 내 방 곳곳에 얼마나 많을까’라고 고민해봐야 답도 없다. 그냥 ‘털이 빠져서 뭉치면 눈에 보일 테니까, 그때 주워서 버리면 되겠지’라고 생각한다. 돌돌이는 주로 내 몸에 묻은 냥이 털을 제거할 때 쓴다.
어떤 집사들은 여름엔 미용을 하기도 한다. 고양이 털을 시원하게 밀어주는 건데, 그게 또 고양이한텐 꽤나 큰 스트레스가 된다고 해서 쉽게 하진 못하겠다. 그러니 ‘정신 승리’로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라미와 보들인 모두 털이 짧은 단모종 고양이라, ‘장모종 집사들은 오죽할까’라고, 최면을 거는 수밖에.
만약 예비집사가 내게 고양이 털 날림에 대해 묻는다면, 이젠 쉽게 정답을 말해줄 수 있다. “포기하세요. 냥이를 포기하거나, 털(날림)을 포기하거나.”
서대문 박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