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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리석이냐 ‘스뎅 쟁반’이냐

등록 2017-08-19 09:25수정 2017-08-19 20:00

구입 첫날 ‘스뎅 쟁반’에 올라앉은 보들이. 이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망했다.
구입 첫날 ‘스뎅 쟁반’에 올라앉은 보들이. 이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망했다.
[토요판] 박현철의 아직 안 키우냥

9. 쿨매트를 찾아서

시도 때도 없이 철퍼덕. 7월초부터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눕는 일이 늘어났다. 라미와 보들이의 생애 첫 여름은 그렇게 왔다.

여름 준비를 집사가 따로 한 건 없었다. 오히려 냥이들이 열심이었다. 슬슬 더워지는 날씨에 맞춰 둘은 열심히 털을 뿜어냈다. 털부자 보들인 꼬리 가까이 등 부분에 맨살이 보일 정도였다. 핼쑥해 보이기까지 했다.

7월 중순, 장마와 더위가 함께 쳐들어오니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출근을 할 순 없었다. 지난해까진 빨래를 말리려 선풍기 타이머를 맞춰놓고 출근하기도 했는데, 이번엔 그러지도 못했다. ‘반려견 위해 선풍기 틀었다 화재’ 기사를 봐버렸기에.

그러던 찰나 ‘고양이 쿨매트’라는 걸 누군가의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했다. 알루미늄 재질에 키가 낮은 냄비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그 안에 들어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누운 고양이 모습을 봤다. 후기를 보니 “사람이 발을 넣어도 시원하다”고. 값을 알아보니 싼 건 3만5000원, 비싼 건 7만원. 잠시 보류했다.

대리석으로 만든 것도 있었다. ‘역시 고양이용품 시장의 확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감탄하며 값을 알아보니 2만, 3만원대부터 10만원이 넘는 것까지 다양했다. 알루미늄 냄비와 대리석 매트. 무엇으로 할까 검색하다 ‘다른 차원’의 고민이 시작됐다.

‘저걸 사 놓으면 올라가서 드러누울까’ ‘저걸 마루에 두면 또 공간을 차지하겠군’ ‘소파에 캣타워에 티브이받침대까지 죄다 쟤들 차지인데…’ 먼지와 털이 수북이 쌓인 대리석을, 알루미늄 냄비를 보고 있자면 더 더워질 것 같았다. 결국 “나 어릴 땐 에어컨 없이도 잘만 살았다”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대리석도 알루미늄 냄비도 접었다.

뭔가 대용할 게 없을까 싶어 검색을 하다 ‘냥이 쿨매트 대용 스테인리스 쟁반’을 발견했다. “오천원으로 벌써 세번째 여름을 잘 나고 있어요.” 뭐니 뭐니 해도 가성비에서 따를 자가 없었다는 후기가 줄을 이었다. 동네 만물상엔 없길래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스테인리스 원형쟁반 9호 47.2㎝ 7150원.

그런데 역시나, 라미는 관심도 없었고, 보들이도 한두번 올라가기만 할 뿐 배를 깔고 눕진 않았다. 쟁반의 재질 탓인지 두께 탓인지 발을 올려봐도 시원한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애들의 취향 탓이라기보단 가성비에 눈이 먼 짠돌이 집사의 판단 착오였다.

쟁반은 결국 제 위치인 부엌으로 쫓겨났다. 쿨매트 도입 계획은 1년 뒤로 미뤄졌다. ‘스뎅 쟁반’의 실패로 냥이들을 시원하게 해줘야겠다는 의욕이 꺾였고, 무엇보다 너무 더워서 만사가 귀찮았다. 퇴근 뒤엔 에어컨을 켜고, 출근 전에 화장실 문을 열어두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독자적인 합의.

다행히 기특한 두 냥이는 숨 한번 헐떡이지 않고 대낮엔 틈틈이 화장실 바닥에 엎드려 열을 식히면서, 해수면 상승기에 접어든 지구 대한민국 서울의 무더위를 잘 넘기는 중이다. 밤낮 가리지 않고 레슬링 하는 둘을 보면서 혹시 어쩌면 이 정도 더위는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그래도 내년 여름엔 대리석이든 알루미늄 냄비든 꼭 장만해 줘야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서대문 박집사

방바닥 배깔기로 한여름을 버틴 라미.
방바닥 배깔기로 한여름을 버틴 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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