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자립생활센터 '파란' 회원들이 5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인근에 위치한 빌딩서 휠체어를 탄 채로 나오며 힙겹게 문을 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휠체어 바퀴가 계단에 부딪혔다 부질없이 튕겨 나갔다. 5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휠체어를 타기 시작한 뒤 김복선(55)씨는 편의점에서 음료수 한 잔 사는 것도 쉽지 않다. 실은 편의점에 들어갈 수도 없다. 김씨가 한숨을 쉬었다. “저는 편의점 안에 들어가서 물건 산 기억이 없어요.”
지난 5일 김씨가 물건 구입에 ‘도전’한 서울 양천구 ㅈ편의점 입구에는 10㎝ 높이의 두 단짜리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오들오들 떨며 10분을 기다린 뒤에야 인기척을 눈치챈 편의점 직원이 밖으로 나왔다. 김씨가 따뜻한 음료를 사고 싶다고 말하자 직원은 1600원짜리 유자 음료를 골라 왔다. “늘 직원이 대충 갖다주면 그걸 사요.” 김씨가 체념하듯 말했다.
<한겨레>가 지난 5일 김씨 등 휠체어를 탄 장애인 3명과 함께 서울 양천구 상가 일대를 다니며 편의점·카페·식당 등 우리 일상 속 평범한 공용시설로 출입을 시도해봤다. 장애인들이 편히 드나들 수 있는 곳은 드물었다.
“이렇게 낮아 보이는 턱도 장애인에게는 난관이에요.” 편의점 건너편 길목에 있는 ㅇ커피 가게 입구에는 5㎝ 턱이 설치되어 있었다. 뇌병변 장애 탓에 40년째 휠체어를 타고 있는 송정아(44)씨가 카페에 들어가려고 할 때마다 번번이 그 턱은 휠체어를 밀어냈다. 김씨는 “요새 작은 카페들은 이런 턱이 많다. 멀리 대형 카페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편의점 등을 이용하려면 입구에 턱이 없고 경사로 등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2016년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선 2㎝ 이상의 턱 또는 계단이 있는 시설이 전체의 82.3%였다. 이 가운데 65%는 경사로도 없었다.
실제 <한겨레>가 서울 양천구 오목로 상가를 돌아보니, 식당 대다수에는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한 동태전문점 입구에는 10㎝가량의 대리석 계단이 휠체어를 가로막았다. 바로 앞 해물찜 식당은 15㎝ 높이 목재 테라스 위에 입구가 있었다. 휠체어를 탄 지 35년 된 홍종숙(55)씨는 “이런 곳은 아예 들어갈 엄두도 내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통계청의 2014년 사업장 면적규모별 사업체 수 통계를 보면, 전국의 일반음식점 34만3415개 중 현행 ‘장애인 등 편의증진보장법’상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바닥 면적 300㎡ 미만인 곳은 32만8873곳(95.8%)에 이른다. 식료품 소매점 중 98.0%, 제과점 중 99.1%가 이런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이다. 지난 14일 인권위가 정부에 권고한 대로 이런 곳도 편의시설 설치가 의무화되면 장애인들의 불편을 크게 덜 전망이다. 김복선씨는 “내가 계단에 가로막혀 있으면 편의점이나 식당 직원들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본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은 상황이 빨리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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