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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세브란스와 세종병원 운명 가른 화재 법안 ‘땜질 대응’의 역사

등록 2018-02-05 04:59수정 2018-02-05 14:39

국회 속기록으로 본 ‘땜질처방’ 이유
소방 관계자들이 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 3층에 있는 푸드코트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지난 3일 아침 7시56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불이 났다. 본관 3층 식당에서 시작된 불은 2시간 남짓 만인 오전 9시59분께 완전히 꺼졌다. 화재 당시 병원엔 환자 309명이 있었는데, 인명피해는 거의 없었다. 평소 정기적인 훈련과 침착한 대응 덕분이기도 했지만, 병원 내 스프링클러와 구획별 방화셔터가 모두 작동하면서 조기진압이 이뤄진 게 대형 참사를 피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었다.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소방시설법)을 보면, 의료기관 등은 6층 이상이거나 4층 이상이면서 바닥면적이 1000㎡ 이상이면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

일주일 전 41명의 사망자(4일 기준)를 낸 경남 밀양 세종병원 참사 당시 스프링클러와 관련한 정부와 국회의 땜질 입법이 비판의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이번에도 정부는 건축물 화재안전 기준을 강화하고 점검과 단속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 했지만, 제대로 이행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지금껏 번번이 대형 건설사 등의 기득권과 경제적 유불리에 따라 국민의 안전이 희생됐기 때문이다. <한겨레>가 국회 속기록 등을 통해 주요 화재 사건과 관련한 ‘땜질 대응’의 역사를 살펴봤다.

2009년 가연성 외장재 규제 법안
국토부 반대로 수위 크게 낮아져
건축주 처벌 조항도 사장되고 말아
“2010년 완공 건물 제천화재 불러
2015년에야 불연재 사용 의무화”

전통시장 특별관리대상 포함 법안
소방청 “인력부족” 이유로 난색
자유한국당 소방인력 증원 반대
인력 증원 따라 대상 늘리기로 후퇴

유독성 가스배출 PVC 창호 규제
“산업 악영향” 논리에 막혀 무산
소방시설관리업 등록 완화도 문제
“안전 불감증” 인식에도 규제 안돼

■ 2009년 외부마감재 규제 실패

2008년 1월 경기 이천 냉동창고 화재를 겪은 뒤인 2009년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의 건축법 개정안 관련 논의가 그랬다. 신축 건물에 가연성 외부마감재를 쓰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건축법 개정안(강창일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이 국회에 상정됐지만 국토교통부의 반대로 시행령 수준으로 규제 수위가 낮아졌다.

관련 논의가 이뤄진 2009년 7월8일 국회 속기록을 보면, 정부 쪽 답변자인 권도엽 국토부 1차관은 “(외부마감재) 관련 제한을 처음 도입하는 거라 신중해야 한다” “(외국) 사례도 많지 않다” “(하더라도) 대상을 제한적으로 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개정안엔 건축주를 처벌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도 권 차관은 “전문가가 아닌 건축주를 처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최근 밀양 화재 뒤 정부가 ‘건축물 소유자·관리자의 책임과 의무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이때 관련 규제를 도입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반대가 계속되자 발의자인 강 의원은 “선진 강국답게 처음이다 뭐다 이런 얘기 하지 마시고 지금부터 해 나가야”라면서도 결국 정부 쪽 의견을 수용하고 말았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시 법안이 무산되면서 2010년말 (건물이) 완공된 제천화재 참사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 (2015년) 의정부 화재 참사가 난 뒤에야 고층건물 외장단열재의 불연재 의무화가 됐다”고 썼다.

지난 20년 주요 화재참사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 2016년 소방시설관리업 요건 완화

이런 상황은 최근에도 이어졌다. 지난해 2월14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소방시설공사업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의에선 박근혜 정부에서 소방시설관리업의 등록 요건을 큰 폭으로 완화(2016년 6월30일)한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원래 장비 보유 기준이나 주기적 검증 등이 등록 요건에 포함됐는데, 3명의 기술인력 요건만 남긴 것이다. 장정숙 의원(국민의당)은 “이런 요건 완화가 방재 회사들을 영세하게 만들어 화재안전 불감증을 유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주된 관심사는 경기 화성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였다. 불은 산소용접 중 튄 불똥으로 일어났는데, 사고 당일 방재업무 담당자가 “인화성 물질로 둘러싸인 곳에서 산소용접을 하면 안 된다”고 건의했지만 점포 입주를 서두르려는 건물관리업체가 이를 묵살하면서 불이 난 것이었다. 이 방재 담당자는 무려 4단계 하청 회사의 직원이었다. 인건비를 무기로 저가 입찰을 하는 구조에서 소방시설관리업은 영세할 수밖에 없고, 제대로 된 방재 기능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공공기관은 소방시설 공사 때 재하청을 금지하지만 민간 영역에선 이런 제한이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관련 규제는 여전히 미비하다.

■ 전통시장은 인력 없어 방치

지난해 8월28일 국회 행정안전소위 2차 회의에서 다뤄진 소방시설법 개정안 관련 논의도 들여다볼 만하다. 이때는 2016년 대구 서문시장에 이어 여수 전통시장, 인천 소래포구 시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전통시장의 화재 취약성이 주요하게 다뤄지던 시점이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소방시설법 개정안은 소방안전특별관리시설물에 전통시장을 포함하는 내용이었다. 원안대로라면 전통시장을 소방특별조사 대상에 넣고 5년 단위 중장기 화재예방정책 등을 담은 기본계획과 시행계획을 수립해야 하지만 소방청은 ‘일부만 수용’ 의견을 냈다. 인력이 부족하단 이유였다. 신열우 소방청 소방정책국장의 당시 설명을 보면, 전국 전통시장은 1577곳인데 이를 다 대상에 포함하면 점포 수가 21만개, 특별관리시설물이 3500개가 된다. 전국 소방청의 검사인력은 597명에 그쳤다. 이 때문에 (정부 계획대로) 2018년부터 소방특별조사 인력이 늘어나는 상황을 보아 대상을 늘리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올해 소방 등 현장 공공인력 1만2221명을 늘리려던 정부 계획은 야당 반대에 부딪혀 9450명 규모로 줄었다.

■ 2015년엔 불연재 창호 논란

2015년엔 건물의 창호(창문)를 난연재로 쓰게 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역시 묵살됐다. 2015년 11월13일 국회 국토교통소위 337회 속기록을 보면, 당시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낸 법안은 난연재를 써야 하는 대상에 외부마감재뿐 아니라 창호도 포함하자는 취지였다. 창호 재료로는 불에 탈 때 유독가스를 내뿜는 가연성 소재인 폴리염화비닐(PVC)이 널리 쓰이는데, 국토부는 피브이시 산업에 영향을 준다며 이 법안을 반대했다.

당시 김경환 국토부 1차관은 “화재 확산 최소화를 위해 창호의 마감재를 방화에 지장이 없는 재료로 해야 될 만큼 그 연관성이 충분치 않다. 외국의 사례도 피브이시가 대부분이고, 이를 전부 방화용으로 하면 단가가 30% 이상 올라가 건축주에게 부담이 된다. 추가 비용을 감내하면서 바꿀 만큼 화재 예방 효과가 큰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국토부 국토도시실장도 “소비자 선택의 문제다. 우리가 볼 때 화재는 유리가 깨져서 확산이 되지 창호가 타 가지고 확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제천 화재에선 피브이시 소재의 외벽 창호가 다량의 유독가스를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당 건물은 상층부 피라미드 형태 부분에 불연재인 금속 창호를 쓰고 아래쪽은 피브이시 창호를 썼는데 상층부는 유리가 깨지거나 불이 번지지 않았고, 유독가스도 없었다는 것이다. 반면 가연성 소재를 쓴 창호는 실내에 유독가스를 불어넣는 ‘불쏘시개’ 노릇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규제는 여전히 도입되지 않고 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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