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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고양이가 몰고 온 삶의 파장

등록 2018-02-09 19:48수정 2018-02-10 00:07

[토요판] 박현철의 아직 안 키우냥
15. 남의 집 고양이-울산의 일구
쓸데없이 잘생긴 일구.
쓸데없이 잘생긴 일구.

태어날 때부터 집사인 사람은 없다. 내 삶이 좀더 다양하고 풍족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집사가 된 (나 같은 좀 이기적인) 사람도 있고, 고양이의 삶이 어떻게든 좀더 따뜻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집사가 된 사람도 있다.

둘 중 어느 쪽이 바람직하다 또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말을 하고 싶진 않다. 시작이 어떠했든 고양이와의 동거는 집사의 삶에 크든 작든 ‘파장’을 일으킨다. 그거면 충분하다.

고양이 일구는 119센터 앞에서 구조됐다.(그래서 일구다.) 일구의 보호자 김수진씨는 일구를 “구조인생 최고의 외모”라고 소개한다. 수진씨는 2013년 가을 결혼을 한 뒤 유기동물보호병원에서 고양이와 인연을 맺었다. 유기묘 두 마리를 데려와 함께 살기 시작했고 동시에 길고양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일구는 수진씨가 구조한 고양이 가운데 하나였다.

2015년 가을이었다. 길고양이들에게 주려고 집 안에 쌓아둔 사료상자가 무너져 일구를 덮쳤다. 척추가 손상됐다고 했다. 수술이 이어졌고 병원을 옮겨 다니다 ‘고양이 백혈병’으로 불리는 범백에도 감염됐다. 재활치료까지 포함해 승용차 한 대 값에 맞먹는 비용이 들었다.

다행히 일구는 다시 걸을 수 있었다. 대신 배변신경이 손상돼 누군가의 도움 없인 똥오줌을 가리지 못했다. 밥을 챙겨주듯이 때가 되면 수진씨가 대소변을 짜줘야 했다. 수진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2018년 1월 현재 일구는 고양이 미용실이자 호텔인 ‘살롱 드 캣’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일구의 뒷바라지를 위해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수진씨는 길고양이를 구조하고 입양 보내는 일을 계속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컸다. 일구와 함께 있으면서도 가능한 일들을 고민했고 주변 캣맘들의 지지와 성원 속에 지난해 5월 미용실(겸 호텔)을 열었다. 일구는 수진씨와 함께 출퇴근을 한다. ‘최고의 외모’는 여전하고 낯설고 만만한 고양이를 만나면 냥펀치 대신 입으로 싸운다.

고양이가 몰고 온 수진씨의 또 다른 삶의 파장은 남편의 변화다. 고양이를 데리고 오기 전 수진씨가 가장 공들인 일 중 하나는 남편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첫째를 데리고 온 뒤 얼마나 됐을까.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 워킹맘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아. 예쁘고 귀여운 아이를 집에 두고 나오는 게 이렇게 힘든 거구나.” 미용실을 준비하면서 남편도 수진씨와 함께 일하기로 했다. 남편은 수진씨에게 최고의 동업자이자 지지자이자 조언자다.

이쯤 되면 가장 궁금한 것. 수진씨는 몇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을까. 예상 밖의 답을 들었다. “수를 세니까 압박을 받게 되더라고요. 고양이를 구조해야 하는 순간 ‘내가 이미 몇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망설이게 되는 거죠. 그래서 고양이 수를 세지 않은 지 오래됐어요.”

“세지 않는다”는 수진씨의 말이 “모른다”는 의미는 아니다.(수진씨는 현재 “자발적”으로 함께 사는 7마리+알파와 지낸다. 알파는 구조돼 입양을 기다리는 고양이들이라 그때그때 다르다.) 수진씨 남편의 말처럼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이겠지. 그 마음가짐, 어설프게 따라할 수도 없고 나는 쉽게 헤아릴 수도 없지만, 나와는 또 다른 마음가짐이기에 그를 꼭 소개하고 싶었다.

서대문 박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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