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단장 조희진)이 구성된 지 12일 만에 현직 부장검사 긴급체포라는 ‘강수’를 뒀다. 그간 서지현 통영지청 검사와 임은정 서울북부지검 부부장검사를 조사하는 등 준비작업에 시간을 들이는 듯하던 조사단이 비상한 카드를 꺼내든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제보를 축적한 조사단이 이제 공세적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모드 전환’에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실제 조사단 인선 과정에 주목하는 쪽에서는 ‘셀프 조사’의 한계를 묻는 비판에 대한 답변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서지현 검사 폭로 뒤 검찰 안팎에서는 외부위원 없이 검사들로만 구성된 조사단의 ‘셀프 조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더구나 조사단장을 맡은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은 임은정 부부장검사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백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다. 진상조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환골탈태’의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크다는 것이다.
‘곪을 대로 곪았던’ 검찰 내부에서 구체적인 제보가 쏟아졌을 가능성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조사단은 앞서 검찰 내부망(이프로스)에 검찰 내 성폭력 피해 사례를 조사단 대표 메일로 제보해 달라고 공지한 상태다. 이 공지글은 게시 며칠 만에 조회 수 수천건을 기록할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성폭력 피해 사례를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다. “성폭력 신고 시 피해자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며 쉬쉬해왔던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축적됐던 피해 사례가 한꺼번에 제보로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날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소속 ㄱ부장검사의 긴급체포 역시 구체적 제보의 결과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웬만한 혐의로는 긴급체포까지 하는 일은 없다. 제보 사실에 대한 간단한 확인만으로도 현직 검사를 체포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인 제보가 접수되고 있다는 방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짚었다.
권력기관 개편을 앞두고 있는 검찰 조직의 필요성 역시 조사단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구성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추문’ 때문에 국민의 신뢰를 잃어선 안 된다는 절박감이 검찰 조직 안에 공유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문무일 검찰총장은 “이번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의 처리에 검찰 조직의 명운이 달려 있다”고 말할 정도로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한 검찰청의 부장검사는 “지금 상황은 내부 구성원 몇명이 다치느냐 마느냐를 신경 쓸 수 있는 계제가 아니다. 온 국민이 낱낱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 아니냐”고 말했다.
이런 관측이 맞다면, 조사 범위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일부에선 내부 제보가 쏟아질 경우 조사 범위를 어느 수준까지 늘릴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게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사단은 현재 조직 전반에서 불거진 문제점을 조사하는 동시에 서 검사 성추행 사건을 별도로 전담 조사하고 있다. 서 검사 사건과 관련해선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을 조만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성추행 행위 자체는 공소시효가 지나, 조사단은 안 전 국장이 서 검사의 인사에 불이익을 줬는지를 파악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물을 수 있을지 검토하고 있다. 현직 부장검사에 대한 긴급체포로 강제수사의 물꼬를 튼 조사단이 안 전 국장에 대해서는 어떤 수사 방식을 취할지 역시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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