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돈 때문에 법원에 온 게 아닙니다!”
소액법정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서민들은 돈으로 보상되지 않는 분통함을 토로하고자 법원 문을 두드리곤 한다. 하지만 송사가 길어지면 법원을 찾는 시간과 비용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셈이다. 화해나 조정에 응할 의사가 있으면서도 감정의 골이 깊어진 탓에 선뜻 상대방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10만원짜리 향수 탓에 소송을 택한 고아무개씨도 이런 사례다. 고씨는 지난해 인터넷으로 구매한 향수를 배송받지 못하자 판매업자 박아무개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박씨도 황당할 따름이었다. 박씨 휴대폰에는 ‘배송 완료’를 알리는 택배회사 문자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배송 과정에서 분실이나 택배 도난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박씨 쪽은 택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라며 맞섰다. ‘10만원짜리 향수의 행방’을 두고 반년 넘게 대치하던 두 사람은 지난 3월 타협점을 찾았다.
“일단 택배회사와 계약을 체결한 피고가 원고한테 물어주는 게 맞겠어요. 차후 택배회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테고요.”(판사)
방청석에 있던 박씨 아버지가 딸을 설득해 판사의 화해권고가 받아들여졌다. 패소하면 상대방 소송비용 대부분을 물어줘야 하는 정식재판과 달리, 화해권고를 받아들이면 소송비용 분담 비율을 판사가 재량껏 조정할 수 있다는 게 이점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원고 쪽이 이의를 제기했다. 소송을 하느라 쓴 교통비며 소장 작성 비용이 만만찮다는 주장이었다.
판사가 다시 조정에 나섰다. “원고 입장에서야 다 받고 싶겠지만 피고도 한발 양보했지 않나요. 피고도 소환장 받았을 때 부담이 상당합니다. 이번엔 원고도 법정 공부한 셈 치는 건 어떨까요.”(판사)
결국 고씨가 10만원은 돌려받고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하는 선에서 화해가 이뤄졌다. 원고인 고씨도 10만원 때문에 또다시 법원에 오는 게 부담스러운 기색이었다.
정아무개씨도 비슷한 경우다. 서울 동대문패션타운에서 구입한 10만원대 치마가 물이 빠지며 100만원대 코트를 변색시켰다. 옷가게 주인을 상대로 세탁비용 등 270만원을 청구했지만 판사의 조정으로 결국 50만원에서 합의를 봤다. 옷가게 주인이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이런 사정에 정씨가 공감했기 때문이다.
소액법정에서 때로는 노련한 판사가 이어주는 양쪽의 ‘이심전심’이 자존심이나 법리 다툼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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