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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뉴스AS] 공임 ‘1300원 인상’ 탠디 파업, ‘절반의 승리’인 이유

등록 2018-05-15 09:17수정 2018-05-15 16:13

공임 1300원 올랐지만 근본적인 원인 ‘소사장제’는 그대로 유지
수제화 성지 성수동 제화공 “탠디 투쟁 승리했다 이제는 우리 차례”
11일 저녁 서울지하철 2호선 성수역 2번 출구 앞에서 민주노총 서울본부 주최로 ‘성수동 제화노동자 결의대회’가 열렸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11일 저녁 서울지하철 2호선 성수역 2번 출구 앞에서 민주노총 서울본부 주최로 ‘성수동 제화노동자 결의대회’가 열렸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11일 저녁 서울지하철 2호선 성수역 2번 출구. 개성 넘치는 카페와 갤러리들이 모여 있어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힙한 동네’로 떠오르고 있는 성수동에 트렌드와 어울리지 않을 법한 50~60대 남성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역 앞에 모인 약 300명의 사람들은 “탠디 투쟁 승리했다 이제는 성수동이다”, “소사장제 철폐하고 임금인상 쟁취하자”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이들은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주최한 ‘성수동 제화노동자 결의대회’의 참가자들이었습니다.

앞서 같은날 새벽 2시께 공임 인상과 소사장제 폐지 등을 요구하며 한 달 넘게 파업을 이어온 구두 제조업체 ‘탠디’ 하청업체 제화 노동자들은 16일 동안의 본사 점거 농성을 풀고, 업무에 복귀하기로 했습니다. 제화공들의 공임을 신발 밑창(저부)과 윗부분(갑피) 각각 켤레 당 1300원씩 인상하고, 회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일감을 줄이지 않는다는 내용 등에 합의했기 때문입니다. (▶관련 기사 : 탠디 노동자 공임 1300원 인상 합의…‘노동자 인정’만 남았다)

이 합의로 논란이 됐던 제화 노동자들의 공임 이슈는 해결된 것 아닐까요? 그런데 왜 이날 성수동에는 수백명에 이르는 제화 노동자들이 모였던 것일까요? 우선 이날 집회에서 발언을 했던 성수동 제화 노동자 이현수(61) 씨의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시죠.

“더 이상 새벽 첫차 타고 출근하지 말고, 막차 타고 퇴근하지 맙시다. 그동안 우리가 우리 살을 깎아 먹고 살았던 겁니다. 그게(장시간 노동과 저가 공임 감수) 내 직장 동료의 살을 깎아 먹고, 내 살까지 깎아먹고, 내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 행동을 하니까. 이 사장들은 ‘그만큼만 줘도, 그렇게 장시간 일해도 버티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노동자들을 갖고 노는 겁니다. 이제 앞으로 그렇게 하지 말고 8시 반 출근, 7시 퇴근 이런 문화를 가져봅시다. 제화 노동자 동지 여러분.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래야지 우리가 큰 소리 치고, 정당한 대접을 받고 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수제화의 메카’라는 성수동 제화 노동자들은 관악구 봉천동 탠디 본사를 점거했던 제화 노동자들의 현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히려 판매가 30만원짜리 신발을 만들며 켤레 당 6500원~7000원의 공임을 받는 탠디의 제화공들은 성수동 노동자들의 현실과 비교할 때 ‘양반’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실제 성수동에는 탠디와 비슷한 가격대의 백화점 브랜드인 ‘미소페’와 ‘세라’ 등의 수제화를 만드는 하청공장도 있지만, 홈쇼핑과 동대문,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10만원대에 판매되는 이른바 ‘시장신발’(수제화)을 만드는 소규모 공장이 여러 곳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성수동 제화 노동자 ㄱ씨는 “탠디는 켤레 당 6500원~7000원의 공임을 받는다지만, 대기업 홈쇼핑에서 18만원에 판매되는 구두를 만드는 나는 4500원~5000원을 받는다”며 “몇년 전 일했던 영세 (구두)공장 사장은 말도 없이 ‘묻지마 폐업’을 한 뒤 자신이 내야 할 부가가치세 500만원을 내게 떠넘겨 5년 넘게 국세청에 그 돈을 대신 내야 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40년차 제화공 김아무개(57) 씨도 “성수동은 탠디보다 훨씬 처우가 열악하다”며 “지난 20년 동안 성수동의 공임 단가는 계속 깎여왔고, 10년 전에 터졌어야 했던 제화 노동자들의 불만이 탠디의 파업을 계기로 이제야 나온 것”이라고 성수동 장인들의 속사정을 고백했습니다.

2016년 중소기업청(현재는 중소벤처기업부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성수동에는 모두 425개(2015년 기준)의 수제화 관련 사업체가 밀집해 있습니다. 이 가운데 구두를 생산·판매하는 곳이 72.9%(310개), 구두의 원·부자재를 유통하는 업체가 27.1%(115개)를 차지합니다.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남기범·장원호 교수가 펴낸 논문 ‘성수동 수제화산업의 지역산업생태계의 구조와 발전방향’을 보면, 1960년대 금강과 에스콰이어로 대표되는 대형 제화업체가 성수동 인근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 이 일대는 수제화 관련 하청업체와 부속품 제조업체, 원단 유통업체들의 단지가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1980년대 초반 당시 살롱화(수제화)의 중심지였던 명동의 부동산 임대료가 오르면서 수제화 생산 업체 상당수가 도심과 가깝고, 인쇄·출판업과 기계·금속산업 등 도시 내 준공업지역을 이루고 있던 성수동으로 대거 몰려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성수동은 한국의 각종 수제화 관련 업체들이 밀집한 ‘수제화의 메카’란 뜻입니다.

그런데 탠디도 그렇고, 수제화 산업이 가장 번창한 성수동도 그렇고, 노동자들의 공임은 왜 이렇게 턱 없이 낮은 걸까요? 이 문제의 중심에는 바로 ‘소사장제’라는 이상한(?) 제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소사장은 말 그대로 ‘작은 사장님’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구두 회사 하청업체와 도급 계약을 맺는 노동자에 불과합니다. ‘사장 아닌 사장님’인 셈이죠. 소사장으로 계약을 맺은 제화 노동자들은 본사에서 주문서와 함께 배정된 일감만큼 비품과 원자재를 받아 회사의 요구대로 구두를 만들지만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4대 보험과 퇴직금, 연차 휴가 등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개인사업자 신분이다 보니 회사에 임금 인상이나 불합리한 요구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교섭권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 소사장제가 유지되는 한 제화 노동자들의 공임이 수년 간 동결되는 상황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겁니다.

덤프트럭 기사와 학습지 교사, 보험 모집인과 방과후 강사, 대리 기사와 퀵서비스 기사, 택배 기사 등과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고용형태에서 회사는 노동관계법에 의해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세금과 사회보험 부담금을 회피할 수 있는 반면, 노동자는 정당한 노동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모순에 처하게 됩니다.

11일 저녁 서울지하철 2호선 성수역 2번 출구 앞에서 열린 ‘성수동 제화노동자 결의대회’의 요구내용이 담긴 팻말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11일 저녁 서울지하철 2호선 성수역 2번 출구 앞에서 열린 ‘성수동 제화노동자 결의대회’의 요구내용이 담긴 팻말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제화 노동자들이 처음부터 ‘소사장님’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과거 이들은 구두 브랜드 하청업체에 직접 고용돼 근로소득세를 내고, 4대 보험 적용과 퇴직금을 받았던 노동자였습니다. 상황이 달라진 건 1997년 외환위기 이후였습니다. 지난 2000년 소사장제를 도입한 탠디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제화업체가 제화공들을 개인사업자로 고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탠디 하청업체에서 6년 동안 일해 온 제화노동자 박완규(49) 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당시엔 탠디가 아니라 지금은 사라진 유명 브랜드 ㅅ사의 구두를 지을 때였어요. 어느 날 사장이 현장 기술자 열다섯명을 찾아와 ‘명의를 좀 빌려달라’고 울며 빌어요. 주민등록등본을 가져다주면 5300원이던 당시 공임을 1000원 더 올려 주겠다는 거예요. 제법 괜찮은 조건이라고 생각했어요. ‘회사가 살아야 나도 사니까’라는 생각도 했죠. 다른 기술자들과 함께 등본을 줬습니다. 그랬더니 저와 동료들이 어느 날부터 업체 소속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 신분인 ‘소사장님’이 된 거죠. 말이 좋아 사장이지 자기 돈 한 푼 없이 사장된 사람 봤어요? 우리는 내 기술, 내 연장으로 구두만 만들 뿐인데 4대 보험, 퇴직금 등 노동자로서 보호는 못 받고 세금 부담만 떠안고 있습니다.”

현재 회사와 합의문을 작성한 탠디의 제화 노동자들은 본사와 소사장제 폐지 등을 논의하는 노사 협의회를 상·하반기 각 1회씩 열기로 합의한 상태입니다. 이 합의는 다시 말하면, 이번 파업으로 소사장제 폐지 여부가 확실히 결정된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농성을 마친 제화공들이 “기쁘지만 여전히 마음이 편치는 않다”며 이번 합의를 ‘절반의 승리’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30만원을 넘나드는 고가 신발을 만들면서도 8년간 켤레 당 공임이 6500원~7000원 수준으로 동결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이 ‘소사장제’에 있는데, 이 문제를 풀지 못했으니까요.

본사 점거 농성에 참여했던 탠디의 제화 노동자들은 “파업 기간 동안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공임 인상 이슈에 초점을 맞춰왔지만, 사실 제화공들에겐 소사장제가 더 큰 족쇄”라며 앞으로 소사장제 폐지를 위해 투쟁할 계획을 밝혔습니다.

최근 법원도 제화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등 이들을 소사장으로 고용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지난해 2월 서울고법 민사1부(재판장 김상환)는 탠디에서 제화 노동자로 일하다 2000년대 초반 개인사업자 등록을 한 퇴직노동자 9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에서 이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하고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1심과 같은 판단이었습니다.

재판부는 먼저 회사가 업무 내용, 장소와 시간을 지정해 이들을 지휘·감독했다는 점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근거로 들었습니다. 소송을 낸 탠디 하청업체 제화공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회사가 배분한 작업분량에 맞춰 작업했고, 정규직 근로자들과 마찬가지로 매일 아침에 출근해 매일 저녁 퇴근했습니다. 또한 재판부는 이들이 회사 쪽과 주고받은 도급계약서가 형식적이었음을 지적하며 ‘소사장님’으로 불리는 제화 노동자들이 본사와 별개로 독립적인 사업을 운영한 게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

제화 노동자들이 이야기를 여기까지 들었을 때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소사장제 폐지를 위해 다시 투쟁하겠다는 탠디의 제화 노동자들은 왜 본사가 있는 봉천동이 아니라 성수동에 와서 다른 제화공들과 같이 싸우려는 것일까요? 6년 전 탠디의 하청업체로 오기 전까지 성수동의 공장에서 일했다는 박완규 씨는 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탠디 노동자들이 승리를 했지만) 또 시간이 흐르면 이전과 똑같은 시스템(공임 동결과 소사장제에 따른 불이익)으로 돌아갈 겁니다. 회사는 또 노동자들을 억누를 것이고, 노동자들은 대항하지 못하겠죠. 그래서 성수동을 바꿔놓아야 합니다. 그동안 탠디 노동자들이 회사와 싸우지 못했던 건 성수동으로 가면 (탠디보다) 더 낮은 처우를 받기 때문이었습니다. 관악구 봉천동(탠디 본사와 하청업체 5곳의 소재지)뿐만 아니라 수제화의 메카인 성수동(의 처우)을 바꿔놓아야 봉천동에서 싸움을 할 때 (회사에) 정정당당하게 맞설 수 있고, 그곳이 잘못 됐다면 성수동으로 나와서 우리가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겁니다.”

봉천동의 승리를 거둔 탠디의 제화 노동자들이 성수동에서 ‘투쟁 시즌2’를 예고한 이유, 이제 이해하실 수 있으실까요?

글·사진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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