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따뜻해지고부터였던 것 같다. 사료가 조금씩 남기 시작했다. 라미와 보들이는 사료를 쌓아놓고 먹는 게 아닌, 하루 세끼 일정한 양을 먹는 ‘제한급식’ 중이라 식사량이 줄면 쉽게 눈에 띈다. 두 냥이는 지금껏 비교적 가리지 않고 잘 먹어왔다. 처음 입양 와서 바뀐 사료에도 잘 적응했다. 덕분에 사료 고민은 크게 하지 않았다. 그런 애들이 일주일 가까이 사료를 꽤나 남겨서 신경이 쓰였다.
밥 먹는 걸 찬찬히 살펴봤다. 넓은 접시에 사료를 담아주면 라미가 먼저 와서 먹는다. 언제나 그렇듯 보들이는 조금 늦는다.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라미 엉덩이 냄새를 맡기도 하고 멀찍이 앉아서 그루밍을 하기도 한다. 성질 급한 라미가 맛을 보고 뒤로 빠지면 그때야 접시에 코를 박고 먹는다. 서열 따위가 있는 것 같진 않은데 늘 그래왔고 요즘 들어 좀 더 심해진 것 같았다.
그렇게 보들이는 한번 먹기 시작하면 라미보다 오래 많이 먹는데, 이번엔 그렇지가 않았다. 라미처럼 조금 맛을 보는 듯하더니 다시 뒤로 빠졌다. 보들이의 식사량이 줄어든 게 사료가 남는 이유였다. 그러고 보니 보들이 얼굴이 좀 핼쑥해 보였다.
병원에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으나 좀 적게 먹는 것 외에 특별히 달라진 건 없었다. 라미랑 레슬링도 잘하고, 좋아하는 고무공을 주면 ‘단독 드리블’도 곧잘 했다. 아파서 병원에 가면 수의사들은 늘 물었다. “혹시 잘 못 먹고 잘 싸지 못하거나, 움직임이 크게 줄었거나 하지 않냐”고. 밥을 좀 적게 먹는 것 외엔 평소랑 다른 게 없었다.
다른 집사들이 하는 고민을 해야 할 때가 왔나 싶었다. 아무리 잘 먹는 사료도 오래 한 가지만 먹으면 싫증을 내기도 한다는 집사들의 고생담을 익히 들었다.
나 같은 집사들을 위해 이른바 ‘샘플사료’를 파는 쇼핑몰들이 있었다. 고양이들이 잘 먹을지 어떨지 모르니 100g 안팎 적은 양을 포장해서 팔고 있었다. 70g씩 세봉지가 담긴 사료 세가지를 샀다. 어떤 사료를 잘 먹을지 궁금했다. 그보다 앞서 새로 산 사료마저 먹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됐다. 그러면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았다.
기존 사료와 새 사료 세가지를 적당히 섞어서 평소 먹던 양에 맞춰 접시에 담았다. 평소처럼 라미가 먼저 접시에 달려들었다. 새 사료부터 먹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보들이 역시 라미의 머리를 밀어가면서 새 사료만 골라 먹고 있었다. 얼마나 허겁지겁 먹던지, 기존에 먹던 사료마저 깨끗하게 ‘한 호흡’에 먹어치웠다. 다음번 실험도 마찬가지였다. 보들이는 그냥 기존 사료가 물렸던 것이었다. 반찬 투정이었던 것이다.
반찬 ‘투쟁’의 결과 보들이는 새 사료를 먹을 수 있게 됐다. 나로서도 ‘남는 장사’이긴 했다. 라미와 보들이가 1년8개월 가까이 먹어왔던 사료는, 집사들 사이에서 ‘금사료’로 통하는 것이었다. 보들이가 허겁지겁 먹은 세가지 사료 모두 금사료보다 저렴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밥그릇도 나누기로 했다. 그게 한 접시에 줄 때보다 잘 먹는 것 같았다.
생후 1년 고양이는 사람 나이 15살 안팎이라고 한다. 라미, 보들이는 생후 1년8개월을 지나는 중이니 사람으로 치면 10대 후반쯤 되지 않을까. 그러니 보들이는 지금 10대 후반,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중이다. 비행 청소냥(?)이 되지 않고, 가출도 하지 않고, 반찬 투정과 개인 밥그릇 요구 정도로 넘어갈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서대문 박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