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발표될 예정인 정부의 대체복무제 방안이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나 국제기준에 한참 뒤처지는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논의에 참여했던 일부 인사가 이에 반발해 사퇴 뜻을 밝혔다.
31일 국방부와 법무부, 병무청이 참여하는 ‘대체복무제 마련 실무추진단’과 추진단 자문위원, 여당 의원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정부는 대체복무 심사기구를 국방부에 두고 복무 기간은 현역병(육군 기준)의 2배인 36개월, 복무 분야(장소)는 교정업무(교도소·구치소)로 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논의에서는 대체복무 심사기구를 어디에 둘지가 핵심 쟁점이었다고 한다. 종교나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했던 병역거부자들은 병무청·국방부가 아닌 독립성이 보장되는 민간 심사기구 설치를 요구해왔다. 시민사회단체도 군과 무관한 국무총리실이나 법무부 등에 두는 방안을 제안했다. 실무추진단도 심사기구를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하는 방안을 깊이 검토했지만 진척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실무추진단 관계자는 “총리실은 산하 위원회가 늘어나는 게 부담이고, 교정업무를 맡은 법무부는 대체복무 심사와 함께 그 운용까지 담당하는 부담 때문에 꺼렸다”고 전했다. 결국 국방부가 심사를 맡는 쪽으로 얘기되고 있다고 한다.
육군 현역병의 2배 수준으로 논의 중인 대체복무 기간도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현역복무자의 1.5배’보다 길어 문제로 꼽힌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현역복무 기간의 2배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프랑스에 “양심의 진실성을 시험하기 위한 것으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근거하지 않았다”며 1999년 차별 시정을 권고했다. 유럽평의회 사회권위원회도 2008년 ‘2배’로 정한 그리스 대체복무제에 대해 “1.5배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했다. 우리 헌법재판소 역시 “대체복무 기간이나 고역의 정도가 과도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라 하더라도 도저히 선택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대체복무제를 유명무실하게 하거나 징벌로 기능하게 할 수 있다. 또 다른 기본권 침해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실형이 선고된 병역거부자들이 그동안 구치소 등에서 교도관 행정을 도우며 사실상 대체복무를 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들을 다시 구치소에서 일하게 하는 것은 행정 편의적 발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무추진단 자문위원인 김수정 변호사는 “그동안 심사기구는 군과 무관하게, 복무 기간은 지나치게 길지 않으면서 다양한 복무 분야를 요구했는데, 자문위원들이 제시한 의견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한편 국가인권위가 이날 발표한 ‘대체복무 도입방안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입영 대상자(527명)에게 ‘합숙을 전제로 한 적절한 대체복무 기간’을 물었더니 18개월(38.8%), 22개월(21.6%), 27개월(21.2%), 36개월(16.4%) 순으로 나타났다. 입대를 앞둔 병역 대상자의 80% 이상이 적절한 대체복무 기간으로 ‘현재 병역 기간의 1.5배 이하’라고 답한 셈이다. 반면 법조계·학계 전문가(370명)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36개월(47.3%)과 27개월 이하(47%)가 비슷하게 나왔다. 인권위는 “군 복무자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을 고려해 복무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합한 결과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김민경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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