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법 11조 폐지 공동행동은 11월27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집시법 11조 폐지 선언 대회’를 열었다. 공동행동은 ‘국회 앞’이라는 고정된 공간에서 열리는 사전 신고 집회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사진 장예지 기자
국회 앞에서 1962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정 이래 처음으로 사전 신고한 집회가 열렸다.
집시법 11조 폐지 공동행동(공동행동)은 27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집시법 11조 폐지 선언 대회’를 열고 “이번 집회를 통해 국회 앞 집회의 물꼬를 트고 2019년까지 이어질 집시법 개정 국면에서 11조 전부를 폐지하는 활동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집시법 제11조는 국회와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등의 청사 또는 저택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 장소에서 옥외 집회를 열거나 시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동행동에는 집시법 11조 때문에 처벌받거나 집회를 금지당한 당사자들과 단체들이 모여 있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쪽 추산 40명(경찰 추산 30명)이 참석했다.
그동안 시민들이 국회 앞 등에서 민의를 표현할 필요가 있어도 집시법 11조의 존재로 인해 집회나 시위를 열지 못 하고 기자회견과 같은 형식을 빌려야 했다. 하지만 올 5월 헌법재판소가 해당 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국회 앞’이라는 고정된 공간에서 열린 사전 신고된 집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 영등포서 관계자는 “(헌재 불합치 결정 이후) 장애인단체에서 행진 신고를 하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만 하는 형식으로 발언을 한 적은 있지만 사전 신고된 집회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국회가 집시법을 개정하지 않았지만, 이번 집회에 대해 별도의 금지 통고는 하지 않았다.
11월27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집시법 11조 폐지 선언 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집회의 자유’를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장예지 기자
이날 집회에 발언자로 나선 구교현 노동당 전 대표는 “집시법 11조는 결국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요구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겠다는 태도, 즉 국회가 가진 특권적 의식의 발현이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안혜영 민주노총 대외협력부장도 “국민들, 소수자가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관료들과 좀 더 가까운 곳에 가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올 5월에는 국회의사당, 7월에는 국무총리 공관과 각급 법원 청사 100m 이내 집회와 시위를 금지·처벌하는 집시법 조항(제11조 1항)에 대해 잇따라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국회는 2019년 12월31일까지 해당 장소 부근에서 집회·시위가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다만 헌재는 “어떤 형태의 집회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것인지는 입법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구체적인 허용·금지 기준을 국회가 마련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공동행동은 “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헌재 판단은 집회 자체가 위력의 행사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애써 모른 체 한 것”이라며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시간과 장소, 방법, 내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없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공동행동은 “국회가 헌법불합치 결정 취지에만 속박될 이유는 없다”면서 “현재 국회에 집시법 개정안이 여럿 발의돼 있지만 11조 전부를 삭제하는 안은 하나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국회와 법원을 상대로 하는 집회는 기울어진 공론장에서조차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이므로, 공정한 여론 형성을 진정 바란다면 이들이 더욱 강하고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유진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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