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사고 뒤 나흘 만에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
승무원들 코레일 자회사 소속…“안전업무 교육 못 받아”
담당 아니지만 위급 상황에 수행 안 하면 처벌
승무원들 코레일 자회사 소속…“안전업무 교육 못 받아”
담당 아니지만 위급 상황에 수행 안 하면 처벌
8일 오전 7시35분께 강릉선 남강릉 부근에서 198명의 승객을 태운 채 탈선한 케이티엑스 열차 4호차 내부 모습. 김경민씨 제공.
강릉발 서울행 케이티엑스(KTX) 806호 열차 탈선 사고가 난 지 나흘만인 12일, 열차에 탑승한 유일한 승무원인 김아무개(29)씨가 처음으로 언론에 입을 열었다. 코레일의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 소속인 김씨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위급 상황에 대처할 매뉴얼이 없었다”고 호소했다. 김씨의 말과 김씨가 겪은 상황을 종합해 사고 당시를 재구성해봤다.
김씨의 몸은 승강문 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사고 직후 객실 안 풍경은 ‘아수라장’이었다. 복도에는 음료들이 쏟아지거나 엎어져 있었고, 승객들은 의자와 벽을 짚고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김씨는 몸을 추스를 새도 없이 일어나 3호차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열차팀장의 지시를 받아 안내방송을 했다. “뒤쪽 호차로 순회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안내방송을 했어요.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탈선으로 앞쪽이 절단돼서 그런지 안내방송이 모든 고객에게 들리지는 않은 것 같더라고요.“ 이후에는 뒤쪽으로 이동하면서 승객들을 대피시켰다. “일단 3호차 고객님들한테는 바로 나가면 열차팀장이 있으니까 대피에 도움받을 수 있다 설명해 드리고 직원이 없는 뒤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어요. 아무래도 직원이 열차팀장과 저 둘 뿐이다 보니 승객을 대피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었죠.”
8일 오전 7시35분께 강릉선 남강릉 부근에서 198명의 승객을 태운 채 탈선한 케이티엑스 열차에 탑승했던 군인들이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다. 김경민씨 제공.
승무원은 안전업무에서 배제됐다 탈선 사고가 난 이후 승객 구조에 케이티엑스 열차 승무원들이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하지만 사고 당시를 돌아보면, 그들은 ‘보이기’에는 숫자가 너무 적었고, 더군다나 승무원은 체계화된 안전 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었다. 이날 다친 몸을 이끌고 구조활동에 나선 김씨는 사실 안전업무 담당이 아니다. 김씨와 같은 케이티엑스 승무원들은 코레일이 아닌 코레일의 자회사 코레일관광개발 소속 직원들이다. 코레일은 승무원들을 자회사 소속으로 분리하기 위해 본사 직원의 ‘안전업무’와 자회사 승무원의 ‘승객서비스’ 업무를 인위적으로 구분해 놓았다. 사고 열차 안 2명의 직원 중에서도 안전업무 담당은 열차팀장 1명뿐이었다. 그래서 안전업무를 담당하는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은 승객서비스를 담당하는 자회사 소속 승무원들에게 안전업무에 대해 ‘지시’할 수 없다. 다만 ‘협조’는 구할 수 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열차팀장들에게는 ‘지시가 아닌 협조를 구하는 투로 말하라’는 지침이 내려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구조 때문에 김씨는 안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안전업무를 맡은 본사 직원과 함께 안전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고, 안전 교육을 받더라도 체계화된 매뉴얼을 습득할 기회도 없었다. 올 초에 비상 사다리를 설치하는 법에 대해 배웠고, 분기에 한 번씩 동영상 강의를 들을 뿐이다. “저희는 안전업무 담당이 아니기 때문에 코레일 직원들이 받는 디테일한 안전업무에 대해서는 솔직히 교육을 받지 않았어요. 같은 회사 소속이고 함께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았으면 보다 원활하게 구조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긴 하죠.” _________
의무가 아니어도 처벌은 받는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안전업무의 담당이 아니라 제대로 된 안전 교육을 받지 않는 승무원들이 위급 상황 시 제대로 안전업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법으로 처벌받는다. 철도안전법을 보면, 열차 사고 시 승객을 대피시키는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승무원은 처벌받을 수 있다. 2015년 7월 개정된 ‘철도안전법’ 제40조2항은 ‘여객승무원이 철도사고 등의 현장을 이탈하지 말고 국토부령으로 정한 안전업무를 수행’하도록 강제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개정된 법률이다. 세월호 참사 때도 선장부터 선박 안전관리의 핵심 보직인 갑판부 선원까지 전체 승무원의 절반 이상이 1년~6개월의 계약직이었는데, 한국 사회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지 않은 채 승무원에 대한 의무만 강화하고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안전업무에 대한 의무는 없는데 책임은 있고, 협조는 해야 하고, 협조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 모순된 게 있죠.”
8일 오전 7시35분께 강릉선 남강릉 부근에서 198명의 승객을 태운 채 탈선한 케이티엑스 열차의 모습. 김경민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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