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수도에서 서쪽으로 150㎞ 떨어진 작은 마을, 파나하첼에는 아티틀란 호수가 있다. 체 게바라는 “이곳은 혁명가의 꿈도 잊게 만든다”고 말했다. 서필훈 제공
커피는 농작물이다. 나는 매년 재배지 수확 시기에 맞춰 여러 산지를 방문한다. 좋은 커피를 구매하는 데 중요한 출장이다. 올해 초 아프리카와 인도를 다녀왔고 한달 전 중미에 도착했다. 당시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몇몇 나라에서 한국인 입국금지 조처가 내려지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한사코 산지 출장을 만류했다. 첫 목적지 엘살바도르로 가기 위해 미국 엘에이(LA) 공항에 도착했는데 당일 엘살바도르에서 한국인 입국을 금지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할 수 없이 니카라과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니카라과에서 여러 농장을 방문하고 커피를 맛보며 다음 코스타리카 일정을 기다렸다. 수확 시기에는 생산자와 수출업체 모두 바쁘기 때문에 서로 약속한 날짜에 맞춰서 가는 것이 보통이다. 며칠 후 코스타리카에서 한국인 입국금지 조처가 취해졌다. 나는 다음 과테말라 일정까지 일주일을 더 니카라과에서 보내야 했다.
산지에서 내려오다 들은 대통령 담화
과테말라는 내가 입국한 다음날 한국인 입국 금지령이 내려졌다. 나는 몇몇 농장을 둘러보고 새로 수확한 커피를 점검했다. 다음 농장이 있는 우에우에테낭고로 향하던 중 과테말라 대통령의 긴급 담화를 전해 들었다. 당일 자정, 모든 공항과 국경을 봉쇄하고 대중교통 운행을 중단하며 대중이용시설을 폐쇄하라고 통보했다. 곧바로 많은 여행객과 외국인의 대탈주가 시작되었다. 1천여명이 공항으로 몰려들었고 그중 일부만이 비행기표를 구해 출국할 수 있었다. 외국 커피 바이어 친구들이 다급한 소식을 전하며 왜 공항으로 나오지 않냐고 다그쳤다. 나는 공항이 있는 과테말라시티에서 멀리 떨어진,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산에서 내려온 직후에야 소식을 들었다. 어차피 일찍 들었어도 탈출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해야 할 일이 남아서가 아니라 그간 쇼핑하듯 지나쳐온 산지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을 테니 말이다.
나는 국경 폐쇄로 고립된 이후 남은 산지 여정을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아티틀란 호수가 있는 작은 마을, 파나하첼로 피신했다. 당시 도로 위에 있던 상황에서 도시별 출입통제가 시작돼 최대한 빠르게 가깝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 것이다. 파나하첼은 과테말라의 수도인 과테말라시티에서 서쪽으로 약 150㎞가량 떨어진 곳이다. 과테말라 정부의 봉쇄 조처는 지난 일주일 동안 연이어 강화되었다. 항구가 폐쇄되더니 모든 도시 출입 자체가 통제되기 시작했다. 파나하첼도 마찬가지다. 며칠 전부터는 오후 4시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금지가 시행되고 있다. 어길 땐 현장에서 체포된다. 그사이 파나하첼에서는 프랑스인 두명이 폭행당하고 쫓겨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번 중미 출장에서 나는 처음으로 마주치는 사람들이 예전과 달리 흠칫 놀란다는 느낌을 받았다. 4월 초 미국 엘에이에서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미국 내 확진자 수를 생각하면 조만간 미국 입국도 금지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과테말라를 떠나는 것도, 미국에 입국하는 것도, 귀국하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요원한 일이다. 매일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나는 이렇게 과테말라에 유폐되었고 새로운 일상이 시작됐다.
하루에 25달러짜리 에어비앤비를 간신히 구했다. 대통령의 격앙된 담화에 숙박업소들이 겁을 먹고 투숙객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머무는 숙소는 방이 여러 개인데 지난 일주일 동안 손님이 나밖에 없다. 파나하첼의 관광객과 차량으로 북적이던 산탄데르 거리는 기이할 정도로 적막이 감돈다.
파나하첼 스페인어 학원에 등록했다. 하나 마나 한 레벨 테스트를 거쳐 초급반이 되었다. 선생님은 플로린다라는 이름을 가진 마야족 대학생이다. 플로린다는 언제나 이 지역에 사는 마야족인 카크치켈의 전통 의상을 입고 있다. 과테말라에는 다양한 마야족들이 살고 있는데 쓰는 언어도 다르고 전통 의상의 패턴과 색깔도 다르다. 플로린다는 마야족의 역사와 사회적 권리에 관심이 많다. 16세기 스페인 침략 이후 마야족은 학살과 전염병으로 인구가 큰 폭으로 감소했고 가톨릭으로 개종을 강요받았으며 마야족 언어는 제한됐다. 그 이후에도 2등 국민으로서, 제대로 된 교육과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고 지금까지 높은 실업률에 불안정하고 낮은 임금의 일들을 도맡고 있다. 플로린다는 자신이 대학을 가고 장학금을 받아 캐나다에 6개월간 어학연수를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라고 말했다. 플로린다는 파나하첼에서 한시간 정도 떨어진 산골 마을에 사는데 대통령 담화로 모든 대중교통이 운행을 중지하는 바람에 집에 가지 못하고 요즘 학원에 있는 방에서 지내고 있다.
파나하첼 스페인어 학원의 초급반 선생님 플로린다는 이 지역 마야족인 카크치켈의 전통 의상을 입는다. 서필훈 제공
엉터리 스페인어 문장에 담긴 위계
내가 커피 생두를 사겠다며 중미를 오간 지도 11년째다. 몇번 스페인어를 배우려고 시도했지만 개인 수업은 바쁘다는 핑계로 이어지지 못했고 혼자 짬을 내서 공부하기엔 의지가 부족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수업을 받으며 한편으로는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어서 기뻤고 다른 한편으로는 왜 더 빨리 배우지 못할까 자책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끄러웠던 것은 산지의 생산자를 먼저 생각하네, 동등한 입장에서 공정한 거래를 추구하네, 그동안 나의 그럴듯한 말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언어를 제대로 배워서 소통하려는 의지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내 언어 능력이나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커피 바이어와 산지 생산자가 시장 구조에서 차지하는 위계 문제였다는 것을 이제야 인정한다. 플로린다는 나보고 어휘는 중급에 가까운데 어떻게 문장은 그렇게 엉터리냐며 웃었다. 그동안 나의 어설픈 단어 몇마디에도 곧잘 알아듣던 생산자들 때문에 스페인어 소통에 큰 문제가 없다고 착각해왔기 때문이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소통은 권력의 평지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화 안에서 누군가는 조금 더 쉽게 말하고, 또 누군가는 조금 더 이해하고 소통하려 애쓰기 마련이다.
수업이 끝나면 근처 크로스 로드 카페에 간다. 이곳에서 거의 20년째 로스터리 카페를 운영하는 미국인 마이클이 반갑게 맞아준다. 셧다운 이후로 대부분의 상점이 아예 문을 닫았지만, 마이클은 나 같은 커피 중독자를 위해 가게 문을 살짝 열어놓았다. 마이클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자신은 ‘미소’라는 단어를 정말 좋아한다며 주문한 치즈케이크에 딸기잼으로 ‘Miso’라고 써줬다. 그는 20년이 다 된 에스프레소 기계를 자기가 직접 고쳐 쓰고 있는데 아직 건재하다며 웃었다. 요즘 쿨하고 힙한 인테리어와 고가의 커피 머신들, 패션 스타 같은 바리스타들이 대세인데, 그는 이 작은 동네의 허름한 카페에서 낡은 에스프레소 기계와 로스터로 커피를 만들고 있다. 처음 그의 커피를 마시고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나는 지금까지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나름 열심히 노력했지만 ‘내가 이 커피 한잔에서 느끼는 만족과 감동을 우리 회사는 고객에게 주고 있는 걸까?’ 생각했다. 마이클의 커피에는 내게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그 비밀이 알고 싶어 나는 매일 그의 카페를 찾는다.
파나하첼에서 20년째 카페를 운영하는 미국인 마이클이 만든 커피에는 ‘내게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 서필훈 제공
내가 처음 방문한 날, 그는 한국어 만화가 그려진 작은 팸플릿에 ‘Miso’라고 써서 읽어보라며 건네줬다. 내용은 기독교 선교를 위한 것이었다. 나는 며칠 전 그가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을 우연히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 심각한 마약·알코올 중독이었고 오토바이 광이었는데 죽을 뻔한 사고를 몇번이나 당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파나하첼에 여행 왔다가 아름다운 아티틀란 호수와 따듯한 마을에 마음을 뺏겨 자리잡았는데 그때 그는 이미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나는 그것이 마이클의 개심인지 변심인지 판단할 수 없지만, 그의 커피가 가진 비밀에 왠지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예전의 마이클과 지금의 마이클은 지금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
나는 마이클의 커피를 마시고 나면 파나하첼 중앙광장에 있는 성당에 들른다. 이 성당의 정식 명칭은 성 프란시스코 아시시 성당이다. 16세기 중반에 세워졌는데 이 지역을 강타한 몇번의 큰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성당 곳곳에 마야 문화가 함께 녹아 있다는 점이다. 16세기 당시 가톨릭과 스페인 사람이 마야인을 자신과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로 보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일이다. 당시 한 손에는 총을, 다른 손에는 십자가를 들었던 스페인 사람과 마야인의 거리는 지금 얼마나 더 가까워졌을까. 나는 매일 성당 의자에 잠시 앉아, 기도하는 사람의 뒷모습도 지켜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쉬다가 낡은 헌금통에 얼마 되지 않는 지폐 몇장을 찔러 넣고 나온다. 며칠 전에는 한 사내가 무릎 꿇고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거친 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잠시 그를 위해 기도했다.
파나하첼 중앙광장에 있는 성 프란시스코 아시시 성당. 16세기 중반에 세워진 성당 곳곳에는 마야 문화가 녹아 있다. 서필훈 제공
과테말라 파나하첼 인근 치치카스테낭고(Chichicastenango)의 산토 토마스 성당(Iglesia de Santo Tomás)에서 여성들이 간절히 기도 드리고 있다. 서필훈 제공
스페인어 고급반까지? 오, 멋진 일이다
한낮의 따가운 해가 기울면 자전거 타고 아티틀란 호수에 간다. 1550m 고도에 자리잡은 꽤 큰 호수다. 호수 건너편에는 우람한 산페드로, 톨리만, 아티틀란 화산이 있고 호숫가를 따라 작은 마을들이 흩어져 있다. 요즘은 관광객도 없고 다른 마을로 가는 배편도 중단됐는지 고즈넉해서 노을을 바라보기 좋다. 체 게바라는 멕시코에서 카스트로를 만나 쿠바로 떠나기 전, 과테말라에 8개월 동안 머물렀다. 그는 사회 개혁이 어떻게 힘없이 무너지는지를 목격하며 혁명적 공산주의자로 성장해 나갔다. 그는 당시 아티틀란 호수를 보며 “이곳은 혁명가의 꿈도 잊게 만든다”는 말을 남겼다. 나는 매년 커피 산지에서 3~4개월 이상을 보내는데 그러다 보니 그만큼 다양한 숙소에서 머물게 된다. 아침 알람 소리에 잠을 깨면 한 1~2초 정도 여기가 어딘가부터 생각한다. 한국에 있을 때조차도. 며칠 전에는 아름다운 아티틀란 호수의 노을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순간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되묻기도 했다. 나는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없는 호수 앞에 서 있다.
밤이 내린다. 한국 뉴스를 살펴본다. 주식이 폭락하고 환율이 10년 이래 최고치로 치솟았다. 나는 장사꾼이다. 커피 생두를 수입하는데 오른 환율만큼 가격이 높아질 테니 걱정이 많다. 코로나19 여파가 길어지며 회사 매출이 많이 떨어졌다. 그래도 직원들이 고생하고 고객들이 찾아줘서 어려운 시기를 잘 견디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이메일로 잔소리를 늘어놓거나 회사에서 보내오는 보고서를 보며 시름한다. 이번에 방문하지 못한 생산자들과 올해 작황과 샘플에 관해 얘기하다가 뜬금없이 언제까지 여기에 있게 될까 가늠해보기도 한다. 그러다 정신이 들면 플로린다가 내준 스페인어 숙제를 한다. 자기 전에는 별이 가득한 하늘도 한번 올려다본다. 그리고 나는 지금 피정, 세상으로부터 잠시 물러나 있다고 생각하며 잠이 든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매일 여기저기서 늘어나는 확진자와 셧다운 소식이 들려온다. 내일은 장을 넉넉하게 봐놔야겠다. 이러다가 스페인어 고급반까지 듣게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오, 멋진 일이다.
▶서필훈: 커피 리브레 대표. 15년 전 핸드 드립 전문점에서 바리스타로 시작해 현재는 로스팅과 생두 사는 일을 맡고 있다. 커피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본다. 아름다움과 참상, 희망이 한데 뒤섞여 있기는 매한가지다. 한 잔의 커피 뒤에 숨겨져 있는, 커피를 생산하고 가공한 사람들의 얼굴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4주에 1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