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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미 ‘사회적 고립’ 쪽방촌 곡소리…코로나 다음 찾으면 늦는다

등록 2020-04-12 09:48수정 2020-04-12 14:54

[토요판] 남의 집 드나드는 닥터 홍 ③ 쪽방촌의 절박한 목소리
서울 한 쪽방촌에 자원활동을 나간 모습. 홍종원 제공
서울 한 쪽방촌에 자원활동을 나간 모습. 홍종원 제공

“선생님 잘 지내시죠? 주민들이 계속 돌아가시니까 답답해서 연락드렸어요. 어떻게 방법이 있을까 해서요.”

최근 서울의 한 쪽방 밀집지역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자립 활동을 돕는 활동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단 한번 찾아뵐게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몇년간 자원 활동으로 한달에 한번씩 이 지역에 들러 몇 가정을 찾아가 건강 상담도 하고 아주 간단한 처치를 하고 상비약도 전달했다. 혼자도 갔지만 때때로 의대생 후배들이나 지역 활동가들과 함께 갔다. 항상 하는 대로 그분들의 이야기를 그분의 집에서 듣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이 지역 활동가와 야심 차게 계획해서 나름대로 방문 진료 체계를 잡아가고 있었는데 쪽방에 화재가 났다. 활동가는 주민 몇분이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면서 그 일에 집중하느라 바빠졌고, 나도 제 살길을 찾는다고 발걸음을 못 한 지 시간이 꽤 흘렀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방문 진료를 한다고 핑계를 대며 못 가고 있다가 이제는 가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몇달 전 나를 끌고 주민들을 소개해주시던 쪽방촌 선남(가명·60) 형님이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을 금할 길이 없었다. 온몸이 아프다고 엄살 부리시며 좋은 약 좀 지어달라고 농담하던 모습이 선한데 말이다. 아는 분들이 숨진 것을 알고 혹시 내가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면 달라졌을까 후회가 된다.

코로나19 사태로 서로가 서로를 멀리하는 때여서 오히려 그곳을 꼭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침 내가 속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사무처장이 “우리가 쪽방 주민들을 찾으면 좋겠다”며 “홍쌤이 쪽방 상황을 알아봐주세요” 하셨다. 이때다 싶어서 활동가에게 연락해 주민들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여쭤보았다.

“속옷이랑 양말이요. 라면은 물린 분들 많으니 컵밥도 좋을 거 같아요. 근데 400명분을 준비할 수 있을까요? 그보다 적게 오면 저희 주민들이 회의해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데 400명분이 준비되면 모두에게 넉넉하게 전달할 수 있어서요.”

너무 귀해진 방역마스크와 손세정제를 최대한 구해보기로 하고, 필요한 생필품도 전달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깨끗한 속옷 한벌이 큰 힘이 될 것 같았다. 활동가 얘기대로 식사도 400명분을 준비하기로 했다. 취약계층 의료지원을 위해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기금을 일부 사용하고 따로 모금도 했다. 인의협 사무국과 쪽방주민협의회 간사가 발 빠르게 시장조사를 해서 알려준 속옷세트와 컵밥을 준비하고 예쁘게 포장도 했다.

서울 돈의동 쪽방촌 사랑방. 홍종원 제공
서울 돈의동 쪽방촌 사랑방. 홍종원 제공

봄이 완연한 어느 주말 의사 선생님, 의대생 열분과 쪽방촌을 찾았다. 간소한 선물이지만 이것을 통해 주민들과 의료인들이 만나는 순간을 만들고자 했다. 주민들의 안내를 받아 문을 두드리고 선물을 드리며 멀찍이 안부를 나눴다. 무작정 이것저것 여쭙지 않고 무심히 아픈 곳을 확인했다. 자연스레 여러 하소연을 들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중단되어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공공근로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도 가혹하다. 건설 현장 일도 끊기고 병원은 어떻게 가야 할지 걱정이다. 이런 하소연들이 심상치 않았다.

“공공근로가 언제 시작할지 모르겠어. 돈을 좀 빌릴 수 있을까?” 쪽방촌 공제조합에 도움을 청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미 사회적으로 거리가 두어진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추상적 구호보다 생생한 그분들의 절박한 생존의 목소리, 아니 곡소리를 듣는다. 바이러스는 이름을 바꿔서 또 올 테고 그때 또 공공병원 응급실은 바이러스 환자들 치료에 동원돼 폐쇄될 것이다. 그러면 공공병원을 이용하는 대다수 취약계층이 병원에 가기 힘들어진다.

그때 이곳 쪽방촌을 다시 찾아도 늦을 것 같다. 쪽방 밀집 지역, 장애인시설, 요양원, 요양병원 등에서 집단감염의 두려움에 떠는 건강약자들이 지역사회에서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편히 삶을 꾸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릴까 하여 찾은 쪽방이지만 공제조합을 만들어 소액대출을 하고 장례를 함께 치르고 점심 식사를 나누는 주민들의 자조 활동을 보면서 오히려 큰 힘을 얻는다. 우리는 함께 살아갈 뿐이다. 바이러스 때문에 필연적으로 격리 상황을 겪고 거리두기를 실천하더라도 누구도 홀로 외롭게 격리되지 않는 경험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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