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카라과의 리브레 농장으로 가는 길 언덕에는 고즈넉한 성당이 있다. 마드리갈 신부의 예언이 깃든 모손테 성당의 복원 전 모습. 서필훈 제공
오코탈은 니카라과 커피 생산의 중심지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이곳에 올 때마다 늘 국경 호텔(Hotel Frontera)에 머물렀다. 오코탈은 아주 작은 도시인데 호텔 앞으로는 도시를 관통해서 온두라스 국경까지 이어지는 2차선 도로가 있다. 호텔에서 국경까지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이 도로는 팬아메리칸 고속도로로, 알래스카 끝에서 아르헨티나 최남단까지 약 3만 킬로미터가 이어져 있다. 그리고 딱 그 중간쯤 이 호텔이 자리 잡고 있다.
국경 호텔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별로 없다. 일하는 사람도 대부분 그대로고, 낡은 침대와 가구도 바뀌지 않았다. 내가 바꾸지 않으면 모든 것이 그대로인 내 방 같은 느낌이다. 호텔은 커피 수확 시기에는 전세계에서 모여든 커피 바이어와 인근 생산자로 붐비고, 보통 때는 국경을 넘나드는 장거리 여행객이 주로 머문다. 1년에 100일 이상을 커피 산지의 여러 호텔에서 지내지만, 국경 호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숙소다. 이곳의 시간은 차분하고 더디게 흐른다.
지천의 칼라꽃 ‘여긴 우리 농장이구나’
7년 전 일이다. 부산의 모모스 커피 사장님과 함께 오코탈 시내에서 커피 생산자와 저녁 식사를 하고 9시쯤 헤어졌다. 호텔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고 길도 복잡하지 않아서 슬슬 걸어가기로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걸어가는데 왠지 길을 잘못 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방향이 맞으니 곧 나오지 싶어서 계속 걸었는데 어느덧 시 경계를 넘었는지 행인도 없고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도롯가를 따라 걷고 있었다. 길을 물어보려 해도 막막했는데 마침 저 앞에서 사람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한 무리의 젊은 사내들이었는데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다. 괜히 말 걸었다가 귀찮은 일이 생길까 봐 잠시 주저했지만, 더 이상 이렇게 계속 걸을 수는 없었다.
국경 호텔로 가는 길을 물었다. 덩치가 건장하고 웃통을 벗고 있던 사내는 걸어온 방향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며 손짓했다. 고맙다고 말하고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는데 정말일까, 그렇다면 왜 호텔을 지나칠 때 보지 못했을까. 우리를 골탕 먹이려고 거짓말한 것은 아닐까,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져 뒤돌아보니 둘이 자전거를 끌고 따라오고 있었다. 나이는 10대 후반 정도였는데 몇 걸음 뒤에 바짝 붙어 자꾸 말을 걸었다. 몇 마디 대꾸하다가 예감이 좋지 않아 떼어 놓으려 더 빨리 걸었다.
왜 따라오는 걸까. 가다가 으슥한 곳에서 신호를 주면 다른 일행이 나타나 강도질이라도 벌일 셈인가… 그들은 약간의 거리를 둔 채 계속 따라왔다.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국경 호텔이 보였다. 그제야 좀 마음이 놓였다. 우리는 곧 호텔 입구에 다다랐다. 뒤를 돌아봤다. 두 소년은 손을 흔들며, “안녕, 즐거운 여행 하기를!”(Adios, buen viaje!)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왔던 길로 자전거를 타고 돌아갔다. 멍했다. 모닥불의 사내들은 어리바리한 동양인이 밤중에 호텔이 어딘지도 모르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자 길을 알려준다. 하지만 우리가 제대로 호텔로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돼 두 소년에게 호텔까지 데려다주라고 시킨 것이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온갖 상상과 걱정을 했던 것이고.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그들의 호의를 오해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를 쫓아왔던 것은 내가 만든 환영이었다.
젊은 신부, 아론이 부임해 복원한 모손테 성당. 여기서 서필훈씨는 제네시오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서필훈 제공
커피 생산하는 사람들과의 간극을 건너고 싶어 리브레 농장을 만들었다. 커피 생산을 직접 해보지 않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서필훈 제공
오코탈에서 차를 타고 비포장 산길을 따라 북쪽으로 한 시간 정도 오르면 주위가 겹겹의 산으로 둘러싸인 커피 농장이 나온다. 우리 회사 직영 농장, 핀카 리브레(Finca Libre)다. 이 농장은 북쪽으로는 온두라스 국경과 맞닿아 있고, 농장에 속한 산골짜기에서 내려오는 시내는 남쪽으로 흘러 모손테(Mozonte)강이 된다.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은 늘 서늘한 기운을 품고 있어 커피 열매가 아주 더디게 익어가기 때문에 예로부터 품질 좋은 커피를 생산해왔다. 실제로 이 농장은 10년 전 스페셜티 커피 중에서 해마다 좋은 커피를 가리는 컵 오브 엑설런스(Cup of Excellence)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농장주가 농장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커피 생산량과 품질 모두 하락했다는 얘기가 떠돌고 있었다. 4년 전 이 농장이 매물로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별생각 없이 구경이나 한번 하자며 찾아갔다. 예전에 와 본 적도 있고 생두를 구매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한번. 타고 온 픽업트럭에서 내리자마자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커피밭도, 농장의 산세도 아닌 지천으로 핀 칼라꽃이었다. 황홀했다. 나는 그 순간 ‘여긴 우리 농장이구나’ 생각했다.
농장을 둘러보는 내내 나는 벌써 어디에 어떤 품종을 심고 무엇을 더 개선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나는 농장주에게 다짜고짜 농장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좀 황당해하는 눈치였다. 물론 농장을 살 만한 돈은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 잔고를 확인해도 마찬가지였다. 농장주한테 대금을 앞으로 1년 동안 할부로 갚을 테니 이제 막 수확을 앞둔 농장을 넘겨 달라고 했다. 과도한 제안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왠지 농장주가 거절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결국, 거래는 성사되었고 곧이어 수확을 시작한 커피는 핀카 리브레(리브레 농장)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그 이후 잔금 치르느라 무척 고생했고 가공 설비 구매, 토양 개선, 경작지 확장 등에 농장 구매 비용에 맞먹는 돈이 더 들어갔다. 그냥 커피 샘플 확인하고 맘에 드는 것 사면 편하고 생두 비용만 감당하면 될 것을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직접 해보지 않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있을 것 같아서다. 음악을 듣기만 하는 사람과 곡을 연주할 줄 알면서 듣는 사람, 음식을 먹기만 하는 사람과 요리를 할 줄 알면서 먹는 사람의 차이랄까. 나는 생두를 사러 직접 산지를 다니기 시작하자마자 그 건널 수 없는 간극을 느꼈고 그것을 넘어서고 싶었다.
2년 동안 세례가 미뤄진 이유
커피를 재배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커피를 로스팅하고 매장에서 추출하는 일보다 커피 농사는 더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사람의 노력과 열정보다 자연의 힘이 월등하게 크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데만 몇 년이 걸렸다. 비가 너무 많이 올 때, 가물 때, 바람이 몰아쳐 잘 익은 커피 체리들이 땅에 떨어질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커피 품질을 향상시키는 데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다. 토질을 바꾸고, 농장의 기후 조건에 맞는 가공 방식을 실험하고, 오래된 나무를 가지치기하고, 새로운 품종을 심는 것 모두. 나는 몸이 달았다. 많은 외국 스페셜티 커피 회사도 좋은 생두를 찾아 산지에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마음속으로 동경하지만, 결코 넘고 싶어 하지 않는 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예 그 강을 건너고 싶었다.
리브레 농장에는 칼라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서필훈 제공
리브레 농장으로 가려면 모손테라는 작은 마을을 가로질러 산을 오르는 길이 유일하다. 그 길옆 언덕에는 폐허가 된 작은 성당이 있었다. 나는 그 버려진 성당을 좋아해서 농장에서 내려오는 길에 꼭 들르곤 했다. 그런데 3년 전에 찾았더니 그 성당이 깨끗하게 복원되어 있었다. 폐허가 가진 고혹적인 아름다움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담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그 언덕 바로 아래에는 모손테 성당(Iglesia San Pedro Mozonte)이 있다. 바티칸에서 7년 동안 공부를 마치고 이곳에 새로 부임한 젊은 신부, 아론은 오자마자 의욕적으로 많은 일을 벌였다. 복원된 언덕 위 성당은 그의 첫 번째 성과였다. 나는 세례를 받고 싶은 마음에 3년 전부터 아론에게 세례 미사를 몇 번이나 부탁했지만, 그는 내게 공부할 것만 던져주고, 웬일인지 차일피일 답을 미루기만 했다. 그렇게 2년이 흐르고 작년에 찾아가자 아론은 나를 앉혀놓고 한 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모손테 성당에는 마드리갈(Madrigal)이라는 신화적인 신부가 있었는데 작고 가난한 마을에 부임해서 거의 50년을 재직하며 사랑과 헌신으로 인디오가 대다수인 이 교구 사람들을 돌봤다고 한다. 공동체를 설립해서 학교와 정원을 세우고 마을에서 영화와 음악을 틀어주었다. 선교와 음악을 위한 라디오 방송도 직접 시작했다. 많은 기적 같은 일들이 이 작은 마을에 일어났다. 마드리갈은 43년 전 이곳에서 죽어 성당에 묻혔고 현재 그를 성인으로 추대하기 위한 공식 절차가 바티칸에서 진행 중이다.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많은 마을 사람들이 모손테 성당에 안치된 그의 사진과 유품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마드리갈 신부는 죽기 전에 몇몇 예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나중에 외국인이 모손테 성당에서 세례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40여년간 세례받은 외국인은 없었다. 이 마을은 커피 농장으로 올라가기 위해 외국 바이어들이 차를 타고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 외에는 외국인이 방문하거나 거주할 일이 없는 작고 외진 동네다. 여러모로 외국인이 이곳에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 있을 법한 일이 아니다. 나는 아론이 그 얘기를 왜 인제 와서 했을까, 어쩌면 그 외국인이 나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마침내 언덕 위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마드리갈 신부의 예언 속에 나오는 그 외국인이 되었다. 오랜 친구, 옥타비오가 대부가 되어 주었고 오코탈의 스무 명 남짓한 커피 생산자와 그 가족이 세례 미사에 함께했다. 내 세례명은 제네시오(Genesius)다. 예술가들의 수호성인이고 가면과 기타가 그의 상징이다.
즐겁고 위태롭게 경계를 넘나들다
어쩌면 누구나 경계에서, 경계를 넘나들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피부는 나와 외부의 물리적 경계고 나의 성별, 인종, 계급, 국적과 같은 사회문화적 경계는 나의 삶을 규정하는 범주들이다. 나는 그 안에서 행복하고 안전하다고, 혹은 그렇지 않다고 느낀다. 국경 호텔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맸을 때, 현지인들의 배려와 나의 오해는 방문자인 나와 이곳에 사는 그들의 경계가 중첩되며 생겼던 혼란이었다. 생두 구매를 넘어 커피를 직접 재배하겠다고 나섰다가 맞닥뜨린 여러 어려움은 새로운 세계의 증거가 아닐까.
성당은 인간과 신의 영역이 만나는 경계다. 사도 바울은 세례가 옛사람을 장사 지낸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경계에 세례와 종교가 있다. 그런 점에서 월경(越境)은 금지와 한계 너머의 고통과 희망을 동시에 받아들이고, 새로운 경험과 인식,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커피 생산자이자 로스터로, 회사 대표이자 모손테 교구의 제네시오로, 한국과 커피 산지들을 넘나들며 살고 있다. 더없이 즐겁고 위태롭다. 나는 오늘로써 한 달째 과테말라에 발이 묶여 오도 가도 못한 채 이 글을 쓰고 있다. “국경의 밤이 저 혼자 시름없이 어두워간다.”(김동환 시 ‘국경의 밤’)
▶서필훈: 커피 리브레 대표. 15년 전 핸드 드립 전문점에서 바리스타로 시작해 현재는 로스팅과 생두 사는 일을 맡고 있다. 커피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본다. 아름다움과 참상, 희망이 한데 뒤섞여 있기는 매한가지다. 한 잔의 커피 뒤에 숨겨져 있는, 커피를 생산하고 가공한 사람들의 얼굴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4주에 1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