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서필훈의 얼굴 있는 커피
⑦ 케냐 은다로이니 커피 가공소
‘아웃 오브 아프리카’ 주인공 카렌
열정적으로 커피 농장 일구던 케냐
다국적기업 지배로 커피농민 어려워
은다로이니 커피 가공소와 함께
가공소-구매업체 직거래 열어
커피 탈취, 전기 차단 협박에도
1400여명 생산자 굳건히 뭉쳐
비료와 농약 살 여유가 생기니
60년 만의 흉작에도 은다로이니
생산자들 수확량은 오히려 늘어
⑦ 케냐 은다로이니 커피 가공소
‘아웃 오브 아프리카’ 주인공 카렌
열정적으로 커피 농장 일구던 케냐
다국적기업 지배로 커피농민 어려워
은다로이니 커피 가공소와 함께
가공소-구매업체 직거래 열어
커피 탈취, 전기 차단 협박에도
1400여명 생산자 굳건히 뭉쳐
비료와 농약 살 여유가 생기니
60년 만의 흉작에도 은다로이니
생산자들 수확량은 오히려 늘어

바에서 일하고 있는 마틴. 세계 올스타 바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던 그의 꿈은 케냐 사람들에게 최고의 케냐 커피를 제공하는 것이다. 서필훈 제공
케냐에서 온 바리스타, 마틴 이곳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나는 마틴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는 도심에 새로 개장한 복합 쇼핑몰의 커피숍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매번 느끼지만, 나이로비 도심은 커피밭이 펼쳐진 케냐의 농촌과는 큰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다른 세상이다. 나이로비는 동부 아프리카의 핵심 도시로 유엔 아프리카 본부와 여러 산하 기구, 비정부기구(NGO) 사무실,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한 유명 외국 회사가 많이 자리 잡고 있어서 늘 활기 넘친다. 마틴은 케냐가 훌륭한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인데도 정작 케냐 사람들은 수출하고 남은 품질 낮은 생두와 투박한 로스팅, 바리스타의 기술 부족으로 좋은 품질의 커피를 마시기 쉽지 않다며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의 꿈은 케냐 사람들에게 최고의 케냐 커피를 제공하는 것이다. 내가 마틴을 처음 만난 것은 2017년 서울에서 치러진 세계 바리스타 대회를 얼마 앞두고였다. 케냐 대표가 연습할 공간을 찾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회사 연습실을 내줬다. 마틴은 늘 웃는 얼굴에 친절해서 우리 직원 모두 그를 좋아했다. 대부분의 선진국 바리스타 대표는 팀을 이뤄 대회에 참가한다. 그들의 대회용 기물은 화려하고 시연 대본은 유행에 충실하다. 마틴은 혼자 트렁크 달랑 들고 왔는데 기물이 모두 너무 낡고 온전하지 않아 도저히 그대로 대회에 들고 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 내가 종용해서 우리는 같이 장을 보러 갔고 구할 수 있는 기물을 급하게 구했다.

은다로이니 생산자가 커피나무 앞에 서 있다. 1400여명의 생산자가 다국적기업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똘똘 뭉쳐 있다. 서필훈 제공
트라보카와 함께 악순환 끊은 생산자들 케냐의 가장 중요한 커피 산지는 나이로비에서 북쪽으로 150㎞ 정도 떨어진 중부고원의 니에리 근방이다. 간선도로에서 벗어나 황톳빛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비포장도로를 얼마간 더 달리면 은다로이니 커피 가공소가 나온다. 케냐는 고품질 커피로 유명하지만 최근 수확량과 품질이 떨어지면서 예전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이상기후 영향도 있지만, 그보다는 케냐가 가진 커피 거래 구조 탓이 크다. 커피 가공소에는 적게는 수백명에서 수천명의 소규모 커피 생산자가 속해 있다. 그들은 텃밭에서 기른 커피 열매를 수확해서 가공소로 가져온다. 그러면 커피 열매 껍질을 벗긴 후 발효시키고 건조해서 파치먼트(얇은 껍질에 감싸진 상태의 커피 생두)로 만든다. 가공소는 상위 조합에 소속되어 있는데 조합은 판매 대리인을 고용해서 커피를 드라이 밀(건식도정소)과 수출업자에게 넘기고 수출업자는 대부분의 커피를 커피 경매소를 통해 수입업체에 판매한다. 각 단계에서 수수료가 발생한다. 그런데 문제는 판매대리인, 드라이 밀, 수출업체, 수입업체가 모두 몇몇 다국적기업 소속이라는 점이다. 내부 거래인 셈이다. 소수의 다국적기업이 수직계열화를 통해 시장을 독점지배하다 보니 생산자 편에서 이익을 대변하는 주체나 구조적 장치는 없다. 케냐 커피는 품질이 좋은 만큼 국제거래 가격이 비싼데 정작 케냐의 커피 생산자는 턱없이 낮은 대금을, 그것도 열매를 넘기고 보통 5~6개월 후에 받는다. 그러다 보니 커피 농사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료와 농약, 설비를 살 수 없고 커피 생산량과 품질은 떨어지기 일쑤다. 결국 다음 수확 때는 더 낮은 대금을 받게 되고 악순환이 계속된다.

은다로이니 커피 가공소의 커피 가공 기계. 서필훈 제공

태양열 충전식 전기스토브를 보여주는 은다로이니 조합원 가정의 여성. 부엌에서 일하다 화상을 입거나 연기를 마셔 건강이 나빠지는 경우가 많은 케냐에선 유용한 조리도구다. 서필훈 제공
“응공에 비가 내리는지 궁금해할 거예요” 케냐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 교통체증은 심하고 생각은 꼬리를 문다. 마틴이 일하는 최신식 쇼핑몰의 커피숍에서 좁은 농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길 끝에 있는 커피 농가의 부엌까지. 그리고 케냐 커피가 배를 타고 멀리 유럽과 미국, 한국의 근사한 스페셜티 커피숍에서 소비되기까지, 커피는 다양한 공간에서 변주된다. 100년 전 카렌의 농장과 오늘날 은다로이니 가공소의 모습에는 놀라울 정도로 큰 차이가 없다. 세상은 혁명적으로 변해왔지만, 이곳은 그 세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이런 것을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고 하는 걸까. 커피를 바라보는 입장과 관점은 다르지만, 커피는 많은 사람의 노력과 도전 속에 공간과 시간의 이질성을 관통하고 커피 거래 구조의 다층적인 면면을 지나 우리에게 온다. 커피는 생산자가 길렀지만 숱한 우여곡절 끝에 그들의 얼굴은 지워지고, 커피를 가공하고 유통하는 브랜드가 그 자리를 대신 채운다. 그리고 마침내 소비자의 손에는 브랜드만이 크게 인쇄된 컵이 쥐어진다. 커피는, 그리고 우리는 그 어디쯤에서 길을 잃은 것일까. 카렌이 커피 농장을 운영할 때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커피밭을 보며,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중에 내가 어디에 있더라도 응공에 비가 내리는지 궁금해할 거예요.”
▶ 서필훈 커피 리브레 대표. 15년 전 핸드 드립 전문점에서 바리스타로 시작해 현재는 로스팅과 생두 사는 일을 맡고 있다. 커피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본다. 아름다움과 참상, 희망이 한데 뒤섞여 있기는 매한가지다. 한 잔의 커피 뒤에 숨겨져 있는, 커피를 생산하고 가공한 사람들의 얼굴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4주에 1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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