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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하야시 선생님의 일은 ‘외로움 돌보기’

등록 2020-08-08 15:07수정 2020-08-08 15:26

[토요판] 남의 집 드나드는 닥터 홍
⑦ 일본에서 남의 집 간 이야기
방문진료를 가고 있는 하야시 선생님 등 일본 의사들. 홍종원 제공
방문진료를 가고 있는 하야시 선생님 등 일본 의사들. 홍종원 제공

“이분이 항상 하는 이야기가 외롭다는 것이에요.”

일본의 방문진료 의사인 하야시 선생님이 집을 나서며 이렇게 말하자 나도 답했다.

“한국도 똑같아요. 혼자 사는 어르신을 만나면 외롭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에요.”

살다 보니 타국에서 남의 집을 드나든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기 얼마 전인 올해 1월 일본의 방문진료를 배우고자 도쿄 시내에 위치한 방문진료 전문 의원을 찾았다. 처음 방문 때 간담회만 진행했기에 제대로 배우고자 방문진료 참관을 요청하였고 따라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몇주 뒤 다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본의 방문진료 선구자들은 고맙게도 나를 한국의 선구자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 방문한 집은 지난해 남편과 사별한 할머니 댁이었다. 경증 치매, 고혈압 등을 앓고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외로움이다. 할머니는 하야시 선생님이 사람들을 만나보라고 권했지만 사람들과 쉽게 어울릴 수 없어서 결국 고립을 택한다고 했다. 속으로 정기적으로 전화드리고 방문하는 방문의사의 존재가 얼마나 큰 역할일지 생각했다. 할머니의 말을 진심으로 듣는 하야시 선생님도 자신의 일이 할머니의 경우처럼 ‘애도를 돌보는 것’이라고 했다. 할머니 같은 분들은 반려자의 죽음 이후의 시간을 홀로 견뎌야 한다. 고령자에게 애도의 시간은 평생의 추억을 정리하는 더딘 과정이다. 하야시 선생님은 그것을 이해하고 활동을 강요하기보다는 충분히 마음을 정리하시길 기다리고 또 함께하고 있었다.

최근 보건소 의뢰로 내가 방문진료하고 있는 80대 고은(가명)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는 지난해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외로이 살고 있다. 자녀들이 있지만 멀리 살고 있어서 자주 볼 수 없다며 종종 찾는 우리 의료인들을 손주들이라며 반긴다.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식습관도 바꿔보려 노력하여 건강관리는 잘하고 있지만 방문객이 떠난 이후 홀로 보내는 시간이 외롭다.

“불나면 누가 꺼줘, 이웃이 꺼주지. 멀리 사는 자식들은 소용없어. 이렇게 찾아주는 우리 손주들이 제일 고마워. 또 와야 돼. 안 오면 절대 안 돼.”

헤어질 때는 어찌나 아쉬운지 나와서 승강기를 직접 잡아주시고 승강기 문이 닫힐 때까지 하트를 그리며 우리를 배웅한다. 보건소 사업으로 단기간 건강 돌봄을 위해 찾았던 터라 방문을 잠시 중단해야 하는 시점이었지만 또 오겠다는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야시 선생님과 다음으로 방문한 집은 80대 후반 부부 댁이다. 부인이 중증 치매, 파킨슨병, 고혈압, 고지혈증, 피부질환으로 투병 중이었다. 하지만 부인은 약을 먹지 않는다. 약을 처방하고 약 복용을 교육해보지만 쉽지 않다. 약을 먹어도 큰 변화가 없다고 느껴서 소홀히 한다. 쪽방에 사는 가난한 부부로 하루 종일 같이 시간을 보내는 남편은 돌봄으로 인한 소진이 크다. 약 복용을 하지 않는 아내를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고민이다. 같은 무게로 하야시 선생님은 어떻게 조금이라도 남편이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지 또 고민이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댁은 중년의 손자와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 댁이었다. 집이 크고 깔끔했다. 98살로 오전 동안 방문한 여섯분 중 가장 고령이었는데 가장 건강해 보였다. 일본어 대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의사 선생님, 할머니와 손자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하야시 선생님은 집을 나오며 할머니가 말씀을 재밌게 잘하신다고 했다. 노인들에겐 생물학적 나이보다 가까이 있는 관계망이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한다. 하야시 선생님은 언제나 진심으로 그들과 대화했다. 모니터 화면 너머 의사의 얼굴이 아니라 곁에 선 의사의 존재가 얼마나 든든한지 새삼 깨달았다.

하야시 선생님이 방문진료를 시작한 지 5년 되었다. 원래는 종합병원에서 당뇨 환자를 치료했는데, 자신이 하는 일이 제한적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약 처방과 처치 등 당뇨 치료는 완벽했지만 병원 밖 환자의 삶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후 방문진료에 뛰어들어서 만족스럽게 일하고 있고, 주말에는 죽음에 대해 토론하고 생명존중을 이해하는 중고생 대상 시민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짧은 일정 속에서 몇몇 방문진료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분들은 기술은 고도로 발달했지만 전문분야별로 분절적인 종합병원 진료에 아쉬움을 느껴서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심장 수술을 하는 선생님은 두달에 하루꼴로 방문진료 알바를 하는데 수술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고 했다. 의사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사람들의 삶의 순간에 함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특별히 헌신적인 의사인 게 아니라 고령자를 위한 지역 돌봄 시스템 속에서 돌봄 인력들과 호흡하며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을 뿐이었다.

30대를 살아가는 나로서는 고령자의 삶을 전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외로움이 큰 적임이 명백해 보인다. 사실 고립된 청년들에게도 외로움이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때때로 고립된 채 삶을 마감하는 청년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변종 바이러스도 인류의 위기임이 분명하지만 외로움 속에 서서히 잊혀가는 것이 조금 더 비참해 보인다. 물론 그 둘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건강한 사회를 고민하는 나로서는 둘 모두 해결책을 찾아야 할 숙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서로를 버려두게 된 건지, 어디서부터 숙제를 풀어나갈지 감이 오지 않는다. 친구와 연락을 소홀히 하고 부모님을 찾지 못하는 나 또한 변명의 여지가 없다. 변형 바이러스에 너무 들뜨지 않으면서도 서서히 잊히는 사람들을 잊지 않도록 조금이나마 노력하고 싶다. 부디 고은 할머니의 남은 삶이 조금이라도 덜 외롭길 바란다.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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