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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르완다 커피, 죽음과 파괴를 딛고 일어서는 희망

등록 2020-08-22 17:54수정 2020-08-22 17:57

[토요판] 서필훈의 얼굴 있는 커피
⑩ 르완다·부룬디·콩고민주공화국

르완다 처음 방문한 충격
황홀한 커피에 초록색 구릉
무엇보다 르완다 학살 추모관
성직자마저 학살 관여한 증언

내전 딛고 커피 발전한 르완다
키부호수 건너 콩고민주공화국
커피 팔려고 건너다 숨지기도
관광객 납치 직후 가본 그곳
깨끗한 정부가 들어선 르완다에서 커피는 내전의 상흔을 극복하는 힘이 되었다. 르완다의 커피 가공소에서 커피를 골고루 말리기 위해 섞어주고 있다. 서필훈 제공
깨끗한 정부가 들어선 르완다에서 커피는 내전의 상흔을 극복하는 힘이 되었다. 르완다의 커피 가공소에서 커피를 골고루 말리기 위해 섞어주고 있다. 서필훈 제공

르완다에 처음 방문했던 것은 커피 리브레를 오픈하고 1년도 채 되지 않았던 2010년 여름이었다. 나는 르완다에서 열린 컵 오브 엑설런스(Cup of Excellence) 행사의 국제심사위원으로 아프리카를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비행기가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 공항으로 하강을 시작했다. 창문 밖으로 들어온 풍경은 내가 막연히 상상했던 사막이나 건조한 초원과는 사뭇 달랐다. 르완다에는 1천개의 언덕이 있다고 하더니 정말로 초록색 구릉들이 가득했다. 컵 오브 엑설런스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은 두번째다. 하지만 아프리카 스페셜티 커피에 대해 아는 것이 부족했던 나는 심사가 열린 일주일 동안의 모든 것이 놀라움과 배움의 연속이었다. 심사하는 커피는 황홀할 정도로 맛있었고 인터넷으로만 보던 유명한 커피인들은 내 무지한 질문에 매번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르완다 농림부 장관이 방문해 대통령의 격려 메시지를 전해준 것도 신기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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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테랑 정부, 로마 가톨릭도…

하지만 르완다 방문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심사 위원단과 단체로 관람했던 르완다 학살 추모관이었다. 거의 100만명이 학살된 것이 1994년이었으니 고작 16년 전 일이다. 르완다 내전을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의 종족 갈등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나는 추모관에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에 경악했다. 평소 친절했던 동네 이웃과 다니던 교회 목사, 학교 선생님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이름을 부르며 뒤쫓아 왔다는 생존자의 증언이나 학살을 피해 성당으로 들어온 수백명의 투치족을 민병대에게 넘겨 몰살시킨 신부의 사례도 잊히지 않는다. 르완다 내전은 벨기에 식민통치의 유산이었고 당시 학살의 주범이었던 후투족 정부군과 민병대를 훈련하고 무기를 공급했던 프랑스 미테랑 정부, 방관을 넘어 학살에 직접 관여했던 로마 가톨릭까지 모두 믿을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나는 그날 저녁 호텔로 돌아와 내가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 하는 커피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르완다를 다시 찾은 것은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재작년이다. 그사이 수도 키갈리는 몰라보게 발전했고 거리에는 활기가 넘쳤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능하고 부패하지 않았다고 평가받는 정부의 성공적인 정책에 힘입어 많은 엔지오(NGO)와 기업이 르완다에 몰려들었다. 커피 산업 또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커피 생산자 조합의 노력으로 날로 발전하고 있다. 이번 르완다 방문은 키부호수 인근의 몇몇 커피 가공소를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다 보니 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편해서 많은 이동 시간을 호수 위에서 보냈다. 여남은명이 탈 수 있는 작은 배였다. 지도에서 볼 때는 실감 나지 않았는데 키부호수는 거대했다. 남북으로 90㎞, 동서로 48㎞, 평균 수심이 200m다. 키부호수를 사이에 두고 르완다와 콩고민주공화국이 마주 보고 있는데 르완다 내전 당시 수많은 희생자가 이 호수에 산 채로 수장되었다. 호수는 유난히 잔잔했다.

호수 인근에 있는 커피 가공소들은 모두 깨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었다. 위생에 특히 신경을 써서 건조 중인 커피를 손으로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큰 발효 탱크에서는 마침 발효를 마치고 커피를 세척하고 있었다. 20여명의 남녀가 탱크 안으로 들어가 다 함께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커피를 발로 밟아 발효가 끝나고 커피 표면에 남은 잔여물을 제거하고 있었다. 나는 호수를 지나오며 들은 비극적인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채 가시지 않아 흥겨운 노랫소리가 겉돌기만 했다.

아프리카 동부에는 커피를 생산하는 국가가 많지만, 세계 스페셜티 커피 시장에 널리 알려지고 인정받아온 커피는 케냐와 에티오피아가 전부였다. 특히 르완다,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 같은 키부호수 인근 국가는 커피 재배에 적합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 오랜 커피 재배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내전 등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한 농업 공동체 파괴와 기간시설 부족에 따른 생산량 감소, 품질 저하로 그동안 스페셜티 커피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그런데 르완다는 여러 역경을 이겨내고 지난 10년 사이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페셜티 커피 산지로 부상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 회사는 르완다 커피를 지난 6년 동안 계속 구매하고 있다.

키부호수를 운항하는 배의 승무원. 여남은명이 같이 타고 건넜다. 서필훈 제공
키부호수를 운항하는 배의 승무원. 여남은명이 같이 타고 건넜다. 서필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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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식민 지배의 유산

콩고민주공화국은 다이아몬드, 구리, 금, 코발트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고 있어 부유한 국가가 됐을 법도 한데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다. 1990년대 중반 발발한 내전으로 6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꽤 유망한 커피 생산국이었지만 내전 발발 이후 수확량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내전 중 많은 커피 가공 시설이 파괴되고 전기 공급과 도로까지 끊기자 커피를 판매할 방법이 없어졌다. 커피 생산자들은 커피를 팔기 위해 낡고 작은 배에 커피를 실어 키부호수 건너편 르완다로 이틀에 걸친 항해를 감행했다.

도중에 배가 침몰하거나 해상 강도를 만나 커피와 목숨 모두를 잃는 경우도 많았다. 운 좋게 르완다에 도착해도 그곳 상인 모두가 이들에게는 다른 판로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시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커피를 넘겨야만 했다. 내전 이후 이렇게 호수를 오가며 2천여명의 콩고민주공화국 커피 생산자가 이 호수에서 목숨을 잃었다. 키부호수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며칠 전 콩고민주공화국 서부에서 에볼라가 발병했다. 르완다에서 콩고민주공화국 국경을 넘어 고마에 도착한 당일에는 비룽가 국립공원 인근에서 무장 반군에 의한 영국인 관광객 납치가 발생했다. 비룽가는 다음날 방문할 커피 가공소가 있는 곳이다. 결국 영국인 2명은 끌려가고 함께 있던 공원 경비와 운전사는 살해당했다. 이 지역에는 현재 약 2천명의 무장 반군이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달에만 납치와 매복 공격으로 경비대를 비롯한 8명이 살해됐다. 긴장한 현지 파트너는 이리저리 전화하더니 그래도 커피 가공소를 방문하겠냐고 물었다. 당연하다고 답했다. 비가 많이 내려서 예정보다 4시간 늦게 소형 프로펠러기를 타고 부템보로 떠날 수 있었다. 비행기는 귀가 멍할 정도로 내부가 시끄러웠고 이리저리 심하게 흔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 양쪽으로 거대한 화산이 연이어 나타났다. 그중 니라공고 화산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위험한 활화산인데 2002년 폭발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

비행기는 부템보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는데 내려서 보니 활주로가 그냥 흙바닥이다. 부템보는 이 지역 주요 도시인데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지 않고 시내에도 포장된 도로가 거의 없었다. 차창 밖 도시 풍경은 매우 낯설었다. 에티오피아나 케냐의 지방 도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인데 과거와 현재, 미래가 비현실적으로 공존하고 있었다. 도시 전체가 지구 멸망 이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매드 맥스>의 세트장 같았다.

예정보다 도착 시간이 늦어져 바로 호텔로 이동했는데 호텔 정문에는 경비원이 바주카포를 들고 있었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호텔이거나 가장 위험한 호텔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2시간 거리의 가까운 커피 가공소로 향했다. 원래는 비룽가 국립공원의 커피 가공소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납치 사건으로 도로가 폐쇄된 상태였다. 인근 커피 가공소로 가는 길조차 무척 험했고 도착한 마을은 믿기 힘든 오지였다. 커피 가공소와 주변 커피 농가는 꽤 높은 고도인 1800m 내외에 자리 잡고 있었고 비옥한 화산토양에 고급 품종에 해당하는 부르봉 비중이 높아서 품질 잠재력은 좋아 보였다. 하지만 가공 과정 문제인지 많은 샘플을 확인해봐도 쓸 만한 커피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좋은 콩고민주공화국 커피를 구하기 위해서는 아직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키부호수 지역의 종족 갈등은 벨기에가 이 지역을 식민통치하던 시절 시행했던 종족 분리 및 차별 정책에서 비롯되었다. 벨기에는 이곳에 커피를 심어서 수출하고 일부는 본국으로 가져갔다. 이 지역 국가들은 독립한 뒤에도 생존하기 위해 계속 커피를 생산해야 했고 식민주의 국가가 만들어놓은 기존의 커피 거래 시스템을 통해 커피를 판매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 사람들은 여전히 공용어로 벨기에가 쓰던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벨기에는 식민통치 시절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천만명을 학살했지만 히틀러나 스탈린만큼 비난받지 않는다. 지금도 키부 지역 국가에는 벨기에인과 프랑스인이 많이 들어와 여러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정치적 독립은 오래전에 이루어졌지만, 경제적 예속과 문화·심리적인 상흔은 더 뿌리 깊고 장기지속 하는 것 같다. 이곳 사람들에게 커피란 무엇일까?

부룬디의 커피 가공소에서 커피를 계속 공중으로 던지며 말리는 모습. 서필훈 제공
부룬디의 커피 가공소에서 커피를 계속 공중으로 던지며 말리는 모습. 서필훈 제공

콩고민주공화국의 커피 가공소에서 결점두를 골라내는 사람. 서필훈 제공
콩고민주공화국의 커피 가공소에서 결점두를 골라내는 사람. 서필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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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극복의 디딤돌 ‘충돌 내성 작물’

키부 지역에서 커피는 대표적인 ‘충돌 내성 작물’(conflict resistant crops)로 기능한다. 이런 개념의 작물은 국가와 환경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지만 무장 집단이 곡물을 소비하거나 판매하여 이익을 얻기 어렵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커피 열매는 사람이 바로 먹을 수 없고 가공에 상당한 설비와 시간이 필요하며 지역에서의 현금화가 쉽지 않다. 그래서 커피는 무력 충돌의 와중에도 커피 생산자가 정주할 수만 있다면 생산이 가능하다. 커피는 내전이 끝난 뒤에도 피해 복구와 지역민의 수익 증대에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특히 스페셜티 커피는 기존의 자급자족 상태에 머물러 있는 생산자를 국제시장과 연결하고 높은 부가가치를 지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커피는 르완다가 내전으로 인한 파괴를 성공적으로 넘어서는 데 중요한 디딤돌이었고 콩고민주공화국이 지난 수십년 동안의 사회 불안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내가 지난 10년 동안 만난 모든 커피 생산자에게 커피는 희망이었지만 특히 르완다와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의 커피 생산자에게 커피는 죽음과 파괴를 딛고 일어서는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직업으로서 혹은 음료로서 커피를 좋아한다는 것과 커피를 생산한 사람의 역사, 문화, 사회경제적 상황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에게 무엇을 좋아한다는 의미는 그렇다.

▶ 서필훈 커피 리브레 대표. 15년 전 핸드 드립 전문점에서 바리스타로 시작해 현재는 로스팅과 생두 사는 일을 맡고 있다. 커피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본다. 아름다움과 참상, 희망이 한데 뒤섞여 있기는 매한가지다. 한 잔의 커피 뒤에 숨겨져 있는, 커피를 생산하고 가공한 사람들의 얼굴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4주에 1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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