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서필훈의 얼굴 있는 커피
⑪ 보고 싶은 콜롬비아 사람들
매년 이맘때 방문한 콜롬비아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못 가
어느 빈한한 농가 방문해도
최고의 음식 내어놓던 사람들
은퇴하고 커피농장 하는 티르샤
꿈 담은 농장 시작한 아멜리아
자기 농장을 ‘우리 농장’이라 하던
스페셜티 수출입하는 친구 하이로
⑪ 보고 싶은 콜롬비아 사람들
매년 이맘때 방문한 콜롬비아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못 가
어느 빈한한 농가 방문해도
최고의 음식 내어놓던 사람들
은퇴하고 커피농장 하는 티르샤
꿈 담은 농장 시작한 아멜리아
자기 농장을 ‘우리 농장’이라 하던
스페셜티 수출입하는 친구 하이로

하이로가 지난해 구입한 농장에 커피나무를 심고 있다. 그는 이 농장을 이야기하면서 항상 자기 농장이 아니라 우리 농장이라고 말했다. 그를 해마다 만난 지 7년이 됐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위기로 콜롬비아에 가지 못했다. 서필훈 제공
아멜리아의 멋진 꿈을 들었다 티르사는 가정법원에서 일할 때 법정에서 만난 6명의 부모 없는 여자아이들을 입양해 준 수녀님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 아이들이 이제 다 컸는데, 수녀님을 소개해줘서 고마웠다며 다들 자신을 포옹했고 티르사는 기분이 좋았다며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결국 자기 자랑인 셈이었지만 배경음악 탓인지 그녀가 얄밉지 않았다. 요즘 젊은 일꾼 구하기가 너무 어려운데 다들 커피 농장의 힘든 일은 하기 싫어하고 오토바이택시나 하고 싶어 한다며 큰일이라고 푸념도 늘어놓았다. 곧이어 커피와 간식거리를 내줬다. 커피가 너무 맛이 없었지만, 예의상 다 마시려고 온 힘을 다했다. 커피 잔이 참 크기도 하지. 다 마셨더니 바로 빈 잔 가득 커피를 채워줬다. 이번에도 다 마시면 한잔 더 줄 것 같아서 다 마실 수 없었다. 정원에 돌로 만든 물그릇이 많아 물어봤더니 집에 찾아오는 새들이 물 마시고 샤워하고 가라고 이곳저곳에 물을 채워 놓는다고 한다. 티르사는 정말 유쾌하고 멋진 분이다. 그가 기른 커피에는 어떤 선율이 흐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오늘도 말이 이끄는 대로 하늘 가까운 산길을 오르고 또 오른다. 이런 데도 정말 사람이 살까 싶을 즈음이 되면 심어놓은 커피나무들이 불쑥 나타나고 곧이어 허름한 집과 가공한 커피를 말리는 비닐하우스가 거짓말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이런 깊은 산골에 있는 농장에서는 커피밭 좀 볼 수 있냐는 질문은 삼가는 편이 좋다. 자칫하면 산골짝을 한참이나 오르내려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마중 나온 생산자를 따라가 보니 2천m가 넘는 산 중턱에 줄도 맞추지 않고 흩뿌리듯 커피나무를 심어놨다. 사탕수수, 구아버, 오렌지, 블랙베리도 커피와 같이 기르고 벌통 몇개에 벌도 치고 있다. 고도가 높고 건조한 기후라 내추럴 가공을 해보라는 하이로의 제안에 내추럴 커피만 생산하고 있다.

아멜리아 가족 농장에서 커피 열매의 당도를 측정하는 모습. 서필훈 제공
하이로가 농장을 하는 이유는 하이로를 처음 만난 것은 7년 전 콜롬비아 페레이라에서 열린 컵오브엑설런스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을 때다. 머뭇거리며 다가와 자기 회사를 소개하고 싶은데 잠깐 시간을 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속으로 우리가 얼마나 작은 회사인지 모르고 그러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조금 들었지만, 다음날 나는 그와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하이로는 노트북을 열어 준비해온 자료를 보여주며 열심히 자신의 회사와 일, 꿈에 관해 이야기했다. 잘 준비된 자료였지만 정작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의 말에서 느껴지는 커피에 대한 열정과 확신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 자신의 회사가 얼마나 크고 좋은 설비를 하고 있는지, 외국의 어떤 유명 업체와 거래하는지를 자랑하기 바쁜데, 그는 주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하이로 회사도 우리처럼 설립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했다. 아버지가 포파얀에서 꽤 규모가 있는 커피 수출업체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자신은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한 스페셜티 커피에 기반한 사업을 펼치고 싶었다. 아버지는 그의 제안에 코웃음만 쳤고 하이로는 형과 함께 독립해서 반엑스포트라는 회사를 차렸다. 나는 그제야 고백하듯 우리 회사도 이제 막 시작한 작은 회사라고 하니 실망하기는커녕 자신도 그렇다며 크게 웃었다. 당시 콜롬비아에는 외국에 잘 알려진 유명한 스페셜티 커피 수출업체가 여럿 있었고 그중 몇몇 회사는 만나보기도 했지만 나는 하이로가 마음에 끌렸다.

아멜리아 가족의 농장으로 가는 길은 험난해서 차에서 내려 말을 타고 가야 한다. 서필훈 제공

올해 71살인 티르샤는 가정법원 판사로 일하다 몇년 전 은퇴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방치됐던 커피 농장을 다시 일구기 시작했다. 티르사의 커피는 왈츠같이 경쾌했다. 제공
그곳의 꽃과 별을 떠올리며 참, 그 뒤 한국에 도착한 티르사의 커피는 왈츠같이 경쾌했다. 아멜리아 가족의 내추럴 커피는 콜롬비아 커피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독특했다. 두 커피 모두 이례적으로 빨리 완판되었다. 나는 티르사와 아멜리아의 커피를 로스팅할 때마다 그곳의 꽃과 별을 떠올린다. 나는 지금 하이로가 보낸 그들의 햇커피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이로의 회사는 어느덧 규모와 평판 모두에서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스페셜티 커피 수출업체 중 하나가 되었다. 매년 이맘때는 남미 콜롬비아와 볼리비아에서 보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방문하지 못했다. 다행히 하이로가 좋은 샘플을 보내줘서 마음에 드는 커피를 구매할 수 있었다. 남미는 유럽이나 미국보다 코로나가 늦게 유행했다. 콜롬비아는 서둘러 강력한 셧다운을 시행했지만, 현재 코로나19 확진자가 70만명으로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많다. 하이로가 전해준 소식에 따르면 콜롬비아는 대중교통 및 이동 제한 조처로 커피 열매를 따는 데 필요한 노동력 확보가 어려워 수확이 지연되었고 생산량이 감소했다. 커피 수확 일을 하지 못한 노동자도, 커피를 제때 따지 못한 농장의 생산자도, 셧다운으로 일자리를 잃은 도시 노동자와 가게 문을 닫은 자영업자도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나는 티르사와 아멜리아 가족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러다 문득 그들이 내게 보여준 일상처럼 늘 주위를 돌보며 찾아준 손님을 환대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끊임없이 희망하는 것,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만이 우리의 일상을 지킬 수 있는 평범하지만 강력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 여정에 커피가 작은 보탬이 될 수 있기를.
▶ 서필훈 커피 리브레 대표. 15년 전 핸드 드립 전문점에서 바리스타로 시작해 현재는 로스팅과 생두 사는 일을 맡고 있다. 커피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본다. 아름다움과 참상, 희망이 한데 뒤섞여 있기는 매한가지다. 한 잔의 커피 뒤에 숨겨져 있는, 커피를 생산하고 가공한 사람들의 얼굴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4주에 1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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