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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만남 자체가 진통제가 될 때

등록 2020-10-24 10:23수정 2020-10-24 10:24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토요판] 남의 집 드나드는 닥터 홍

⑪ 원인 모를 지독한 통증

“선생님처럼 말씀해주시는 의사 선생님은 살면서 만나본 적이 없어요.”

서울에 사는 50대 남성인 성진(가명)님과의 첫 만남이 예사롭지 않았다. 방문 진료를 가도 집에 있는 것이 분명한데 연락을 받지 않는다. 분명 어제 전화로 뵙기로 했는데 막상 집에 오니 답이 없다. 성진님의 진료를 의뢰한 돌봄요양센터에서 알려준 주소에는 건물의 몇 층인지가 나와 있지 않았다. 지층인지 1층, 2층인지 알 수가 없고 문을 두드려도 답이 없다. 왠지 좀 기다려볼까 싶은 마음에, 마침 또 점심시간이라 근처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기다렸다. 다행히 식사가 끝날 때쯤 전화를 주셔서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죄송해요. 제가 약을 먹으면 정신을 잃고 잠이 들어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지요. 마침 점심시간이라 밥 먹고 있었어요. 기다리길 잘했네요.”

그렇게 처음 만난 이후에도 종종 전화를 받지 않으시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있었다. 먹는 약을 보니 어떻게 살아가나 싶을 정도로 강력한 향정신약물과 진통제를 먹고 있다. 이렇게까지 약을 먹게 된 연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전한 이야기는 이랬다. 전도유망한 공학도였던 그는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에 수술을 했다. 그런데 수술 이후 오히려 알 수 없는 통증이 심해졌다. 유학을 떠났지만 통증 때문에 학업을 이어갈 수 없어 돌아왔다.

취직하고 직장생활도 잠시 했지만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다. 그 이후로도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고 척수강 내로 마약성 진통제를 주입하며 통증을 조절하고 있다. 그마저도 부족해 엄청나게 많은 약물을 먹고, 때때로 응급실에 들러 진통 주사를 맞으며 버티고 있었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응급실을 내원했던 경험도 부지기수다. 어디서부터 그의 몸이 잘못된 것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의 이력이다. 등산과 수영 등 운동을 즐겨 하고 건강했던 그는 치료에 치료를 거듭했지만 결국엔 해결하지 못하고 원인 불명의 통증을 품고 살고 있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죽음을 시도했던 흔적들을 보여주며 죽는 것도 쉽지 않다는 그와 함께 웃었다. 차마 죽으려 했던 사실을 부모님께 알릴 수 없었다. 부모님은 그가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간 걸로 알고 계시다고 한다. 이전에 공부했던 과학을 지금은 멀리 떨어져 사는 고등학생 딸에게 가르쳐주는 일이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과이다. 어렵사리 딸이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같이 가는 길은 고됐지만 소중했다. 그것을 위해 버티자고 했다.

나는 그저 그의 삶이 궁금했고 어떻게 이 고통과 살고 있을까 알고 싶어 그의 이야기를 집중해 들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에게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잘 먹어야 통증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영양 보충에 대한 조언을 조금 했다. 어떤 최신 의학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통증이 분명히 있다. 어떤 시술, 약물로도 조절되지 않는 통증을 함께 조절하는 법을 성진님을 통해 배우고 싶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지 명확히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약물과 통증으로 일상이 사라져버린 그가 통증을 잘 관리하고 회복해 일상의 작은 평범함을 누릴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그의 남은 삶이 조금이라도 덜 아프길 바란다.

찾아가는 의사 홍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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