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관계자들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중구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26차 전태일 50주기 캠페인’에서 요양보호사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4층 어르신도 있는데 봐주시면 안 될까요?”
코로나19가 여전히 유행이라 방문 진료를 하는 나는 항상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코로나와 더불어 계절 독감이 동시 유행할 거라는 전망과 독감 백신의 안전성 논란으로 노약자와 그들을 돌보는 이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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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마주하는 의료진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2차 유행이 온 상황에서 집에서 칩거하는 노약자들의 상황은 ‘코로나 레이다’에 걸리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나에겐 오히려 해야 할 일이 선명해졌다고 할까. 그렇기에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가야 할 곳이라면 기꺼이 가보리라 마음을 다진다.
진희(가명)님은 석준(가명)님을 돌보는 요양보호사이다. 임대아파트에 위치한 복지관의 간호사 선생님이 의뢰해주신 석준님은 척추협착증과 낙상으로 인한 전신 통증, 인지저하 증상을 가진 채 와상 상태로 홀로 거주하고 계셨다.
“선생님, 제가 기저귀로 대소변 이렇게 다 치우고 있어요. 너무 힘들어요. 자식은 모르는 척이에요.”
진희님은 하소연을 하신다. 석준님 자녀와의 문자 대화 속에서도 그간의 노고를 알 수 있었다. 대체로 진희님이 자녀분께 보내는 문자였고, 자녀분들은 여기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어디 아프신 데 있으세요? 저한테 다 말씀해보세요.”
“괜찮아요. 안 아파요.”
“다 말해요. 맨날 아프다고 하면서.”
석준님은 인지가 또렷하진 않았고 묻는 말에 충분한 답을 해주지 못했다. 몇개 남지 않은 치아로 음식을 씹기 힘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충분한 영양섭취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통증은 붙이는 마약성 진통제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자녀분들은 저보고 알아서 하라고 해요. 내가 못 돌보면 자신들은 손 놓겠다고 하네요. 이미 법적으로 끊어진 상태라고 하고요.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거의 24시간은 들여다보고 있는 셈인데 급여는 3시간밖에 못 받아요. 이게 말이 되나요? 예전에 조금 걸을 수 있으셨을 땐 새벽에 밖에 나가시는 거예요. 걱정되어 밤에도 제가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죠.”
진희님의 경우 오전 몇시간만 노동으로 겨우 인정받을 뿐인데, 근처에 살아서 밤에도 혹시 어른께 문제가 없는지 때때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석준님도 안쓰럽지만 진희님의 정성이 대단했다. 현재는 돌봄 여력의 한계로 어쩔 수 없이 석준님을 시설로 모시는 것을 고민하고 있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진희님이 봐달라는 분을 만나러 14층에 가보니 90대 와상 어르신이 계셨고, 그의 집에선 또 다른 요양보호사님이 나를 맞이해주셨다. 이렇게 돌봄을 매개로 존재와 존재가 연결되는 ‘돌봄 경제’의 현장을 종종 마주한다. 그곳에서 국가가 인정한 돌봄 노동 이상 자신들의 선의로 해내는 돌봄의 결실을 목격한다.
돌봄 노동자들은 꼭 이웃의 아픔을 전해주는데 그들의 마음이 고맙다. 이 노력이 결코 미담으로 그쳐선 안 될 텐데, 돌보는 이들의 노동이 제대로 인정받아야 돌보는 이도 돌봄을 받는 이도, 아파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텐데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보건소는 빠르게 대면 서비스를 중단하고 선별진료 업무에 집중하였다. 공공 보건사업으로 진행되는 장애인 방문건강관리 사업, 방문간호, 영양 증진, 만성질환 교육, 청소년 건강증진 사업 등은 전면 중단되었다. 코로나 초기 공포감이 다소 사라지니 대면 서비스의 중단이 이제 눈에 띈다.
복지관에서 무료 혹은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양질의 식사가 중단된 이후 주로 노인들과 장애인인 이용자들은 어떻게 식사를 챙겼을까? 공공 체육시설에서 수영, 탁구, 배드민턴 등의 여가를 즐기던 장애인들도 서비스의 중단으로 칩거했다. 어떤 분들에게는 공공 대면 서비스의 공백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나 역시 코로나 시기 만성질환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 환자들에게 항상 마음이 쓰였다.
진수(가명)님은 뇌졸중 이후 반신마비가 있지만 복지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재활병원에 꾸준히 다니며 건강관리를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모든 활동이 중단되고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해 눈에 띄게 살이 찌고 당뇨 수치가 악화되었다. 나름대로 재차 교육하고 당부하고 있지만 그간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만 같아 아쉬웠다.
“재난지원금이 나와서 덕분에 잘 먹었죠” 하시는데 서로 씁쓸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진수님이 그간 해온 방식대로 다시 잘해내리라 믿지만 건강관리의 책임은 온전히 개인에게만 맡겨졌다. 지방자치단체 혹은 국가 차원에서 코로나 이후 취약계층의 포괄적 건강관리를 위해 전보다 더 힘써주길 바랄 뿐이다.
코로나 2차 유행, 3차 유행을 대비하며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간의 성공적인 방역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배제된 이들을 찾고 ‘안전한 거리 좁히기’로 소외를 막는 일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돌보는 이들을 지키는 일이다.
얼마 전 지역 시민사회 코로나19 대응 포럼에 참여했을 때 재가요양센터 담당자의 하소연에 가까운 발표를 들었다. ‘코로나 걱정만 있고 대책 없는 돌봄 현장’이라는 제목으로 “대중교통 이용 말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라” “누굴 만났는지 어디에 갔다 왔는지, 하루 일과 이용자에게 보고하라” “최소한 방역물품도 종사자 개인이 구매하라” 등 도무지 현실감 없는 현실의 요구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주었다.
돌봄 노동자의 이동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지켜야 할 이동이다. 물론 이동에는 바이러스 전파의 위험이 따르기에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한다. 돌봄 담당 필수 인력을 공동체가 보호해야 한다. 돌봄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 스스로 위생수칙을 지킬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다. 그들이 안전한 이동을 할 수 있도록 동선을 확보해야 할 뿐 아니라 무리하게 일하지 않도록 고용의 안정을 보장해야 한다. 사회를 지키는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주어야 한다. 예산을 써야 한다면 돌봄의 공백이 발생하지 않는 쪽에 써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돌봄의 공백은 특별히 취약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발생하지 않았다. 사회적 돌봄 역할을 조금씩 담당했던 지역 아동센터,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의 폐쇄는 부모들의 돌봄 부담을 가중시켰다. 청년 공간의 폐쇄로 청년들도 갈 곳이 없다. 청년 자살은 코로나의 또 다른 합병증이다. 코로나 위기의 다른 말은 돌봄 재난이다. 안전한 긴급 돌봄 공간과 그것을 지킬 인력을 확보해 돌봄과 호혜의 공동체를 작동시켜야 한다. 그것이 현재로서는 비용이라 생각되지만 긴급 돌봄 지원이 코로나 이후에도 이어진다면 이 혜택은 다시 우리 모두와 지역사회에 돌아온다.
이제는 케이(K)-방역이 아니라 케이(K)-돌봄의 전면적 확장을 주장하여 코로나 이후를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 전사’를 칭송하기 이전에 코로나로 인한 전사자가 있지 않은지 하루빨리 찾고 돌보아야 하지 않을까? 아직 지역사회는 아픈 이를 돌볼 준비가 안 되어 있다. 먹거리, 산책로, 말벗, 여가, 의료, 복지, 돌봄 등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여러 삶의 조건들이 있을 텐데 아픈 이와 보호자 입장에선 어느 하나 충분치 않다. 코로나 이후 세계는 이전과 다른 세계가 될 거라고 전망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인간은 본디 늙고 아픈 존재임을 잊고 건강한 이를 중심으로 사회가 구성되었다면 코로나 이후 다시 만날 세계는 아파도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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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원 : 찾아가는 의사. 남의 집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꿈도 계획도 없다. 내 집도 남이 드나들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방문을 허락하는 이들이 고맙고, 그 고마운 이들과 오랫동안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