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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역경이 와도 또 같이

등록 2020-12-05 09:02수정 2020-12-05 13:41

[토요판] 남의 집 드나드는 닥터 홍 ⑬ 서로를 지키며 살아간다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선생님 얼굴 느낌이 이상해요. 마비가 왔어요. 풍이 또 온 거 같아요.”

뇌졸중 전조였다. 석훈(가명)님은 증상이 나타나는 와중에도 거친 말을 섞어가며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태연했다. 토요일 오후라 마침 쉬고 있어 걱정된 마음으로 급히 찾아갔다. 필요시 병원 응급실을 모시고 가야 했다. 지역 활동을 하는 후배의 차를 얻어 타고 석훈님 집으로 향했다. 실제로 가보니 과거 겪었던 뇌졸중 증상과 비슷하다고 본인이 먼저 인지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다만 예상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구급차를 타고 상급 병원 응급실로 갔다. 다행히 상태가 아주 심각하진 않았나 보다. 검사 뒤 며칠간 입원 치료를 권유받았다. 그나마 안심했는데 무슨 연유인지 입원 중에 나에게 밤낮 전화를 주신다.

“여기 병원 못 믿겠어요. 주사가 너무 아프네요.”

“치료를 잘 받으셔야 돼요. 아파도 참고 치료받으세요.”

일단은 담당 주치의나 간호사에게 잘 물어보지 왜 나한테 물어볼까 의아했다. 그래도 오랜 기간 집에 찾아갔던 내가 편하시긴 한가 보다 싶었다. 며칠간 전화로 나에게 엄살을 부리더니 결국엔 억지로 상급 병원에서 자의 퇴원을 해서 과거 입원했었던 2차 병원에 잠시 입원하고 결국엔 집으로 돌아왔다. 입원한 김에 충분히 검사받고 치료받고 돌아오라고 타박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석훈님은 척추협착증이 심해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었다. 과거 뇌졸중으로 인한 마비와 척추협착증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으로 집에서 온종일 앉아서 생활한다. 겨우 기고, 붙잡고 해서 화장실을 다녀온다. 실수를 하는 경우도 많아서 기저귀도 항상 대비해야 한다. 얼마 전엔 도저히 집에서 생활하기 어려워 지인의 소개로 요양원에 입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50대 중반의 석훈님이 요양원에 적응하기는 어려웠다. 결국엔 한달 만에 역시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요양원에 가실 땐 다시 못 볼 거란 생각에 코끝이 시리다가도 막상 돌아오니 다시 집에서 어떻게 지내실까 걱정이다. 블루스 음악을 좋아하여 집에 가면 함께 음악을 듣고 음악 얘기를 나눈다. 석훈님은 젊었을 적 음악 하는 형님들을 따라 유랑했었던 터라 음악에 조예가 깊다. 스마트폰을 최근에 마련하여 다양한 음악 영상 링크를 전송해주신다. 홀로 행정 업무를 처리할 때 들으며 석훈님을 떠올린다.

본인은 수술을 하면 통증이 사라질 거란 기대를 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차근차근 운동을 하며 생활 반경을 넓혀가는 게 우선이다. 물론 이런저런 약도 처방해보고 함께 운동도 해보지만 쉽지 않다. 너무 전화를 자주 해서 귀찮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오죽하면 나에게 전화를 할까 싶어서 또 내가 그래도 신뢰가 있긴 한가 보다 하고 고마운 마음도 든다. 석훈님과의 인연이 어떻게 이어질까? 멀지 않은 곳이라 늦은 밤 들르기도 하는 석훈님 댁에 언제까지 찾아갈 수 있을까? 그 집을 찾을 때면 강아지 한마리가 나를 반긴다. 어느 날, 강아지가 순식간에 커버린 느낌이 들었다. 거동이 어려운 석훈님과 대문 앞을 지키는 강아지의 조합이 때론 웃기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다. 강아지를 자꾸 구박하는 걸 보면서 왜 키우는 걸까 싶기도 했는데, 강아지가 금방 자라 석훈님을 지켜주는 셈이 됐다. 나도 강아지도 석훈님도 서로를 지켜주며 살아가다 보면 역경이 와도 또 같이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찾아가는 의사 홍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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