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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픈 이와 함께 살아갈 준비

등록 2020-12-19 10:12수정 2020-12-19 14:56

[토요판] 남의 집 드나드는 닥터 홍
⑭ 돌보는 이의 부재, 그 뒤 남은 이의 삶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동 주민센터예요. 방문 진료를 요청드려도 될까요?”

동주민센터에서 정중한 방문 요청이 왔다. 전에도 몇 번 요청 주셔서 함께 애써본 경험이 있는 곳이었다. 그 일은 나나 복지 담당자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기꺼이 바로 수락했다. 연진(가명)님은 정신질환이 있었다. 무릎 통증이 심하고 옥탑방에 살아 쉽게 병원에 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 방문 진료 요청을 한 것이다. 보호자의 연락처를 주셨기에 연락을 드렸다. 마침 멀지 않은 거리여서 바로 찾아갔다. 갑작스러운 나의 방문을 보호자인 오빠는 놀라며 맞이해주셨다.

“작은 병원을 오랫동안 다니다가 문을 닫아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이어오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두 번 가면 다시 오지 말라고 해요. 우리가 기초수급자라 그런 건지…. 동생이 몸이 편치 않아서 직접 병원에 데리고 갈 수도 없고요.”

“저도 몸이 안 좋아서 잠시 입원을 해야 해요. 간이 안 좋아서 한 달에 한 번은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하거든요. 제가 살아 있으면 돌보겠지만 제가 죽으면 어떻게 될지….”

“제가 일단 약 처방해서 다시 올게요.”

만나본 연진님은 만성질환과 정신질환이 있지만 건강 관리를 철저히 하고 돌보는 이가 있다면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는 듯했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오랫동안 돌봐온 오빠란 존재의 부재는 커 보였다. 연진님보다 오히려 연진님을 돌보는 오빠의 건강 상태가 더 안 좋다. 나이 든 어머니와 동생을 함께 돌보는 연진님의 오빠분이 더 안쓰러웠다. 자기의 죽음 이후를 걱정하는 오빠의 말에 나도 모르게 ‘좋은 시설을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연진님은 60대 중반이다. 시설에 입소하기에는 아직 젊고 건강하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순간 시설 입소가 가장 먼저 떠오른 대안이었다. 짧은 대화 후 필요한 약을 처방해서 다시 들렀다. 역시나 놀라시며 나를 맞이하신다. 주기적으로 찾아뵙고 약도 드리고 진찰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다음에는 제가 찾아갈게요. 상담 좀 부탁드려요.”

찾아오는 의사가 어색하신지 오빠는 자신이 찾아가도 된다고 재차 말씀하신다. 그리고 자신도 상담해 달라고 한다. 물론 둘 다 필요하다. 나 역시 오빠분의 건강 상태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연진님은 아주 많지 않은 용량의 약물이 효과가 있다.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돌보는 이가 부재하게 되면 이후의 삶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남은 기간이 길지 않다. 나조차도 ‘시설’이 아니고서는 별다른 답변을 드릴 수 없는 처지다. 죄송하다. 아마 어떻게든 될 테지…, 동주민센터에서도 도움을 줄 테고. 우선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신청하고 사회 돌봄 서비스를 받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과거에 신청했을 때 그마저도 정신장애인이라 쉽지 않았었다고 한다. 몸과 마음의 아픔과의 공생이 이젠 일상이다. 모든 질병이 완치되면 참 좋겠지만 그건 아마 현실적으로 어렵다. 아파도 방치되지 않으면 된다. 아픈 이가 사라지지 않고 이웃과 가족과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숙제를 미뤄서는 안 된다. 시간이 별로 없다.

찾아가는 의사 홍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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