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서 왔다 가시고 불안함이 사라졌어요. 그 전엔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짜 몰랐거든요. 선생님께 계속 연락드려도 괜찮을까요?”
90살 숙진(가명)님의 가족들이 급한 연락을 주셨다. 어르신이 갑자기 기력이 떨어져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고 물조차 넘기지 못하는 상황이다. 말기 암에 전이가 와 4개월 전 병원에서 치료받았지만 더 이상 손쓸 도리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119를 불렀지만 호흡기 증상이 있다는 말에 자신들이 모시고 가기는 어렵겠다 말했다고 한다. 코로나19 상황 때문이다.
지난 이야기를 전해주시는 보호자님은 그때 호흡기 이야기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자책했다. 사실 기침 등 호흡기 증상이 두드러진 건 아니었는데 상태를 설명하다 보니 언급해버렸고, 결국 119를 통한 응급실 내원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우리에게 연락하기 전에 어렵게 가까운 의원에 모시고 가서 수액을 두번 맞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이젠 뭔가를 더 해드리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약도 거의 드시지 못한 채 2주 가까이 흘렀다. 찾아뵙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듣고 진찰해보니 기력이 없어서 축 늘어져 있었지만 호흡은 안정적이었다. 대화를 나누긴 어려웠다. 가족들이 잘 돌보고 있어서 편안해 보였다.
“어머님께서 상황이 아주 좋진 않으시지만 가족들과 함께 계시니까 편안하실 거예요. 마음을 굳게 먹으시고 아주 조금씩이라도 물을 입가에 적셔주시면서 물을 드시도록 해보세요. 잠시라도 깨어나시면 이야기를 잘 나눠보세요. 마지막 대화일 수 있어요. 장례 절차를 어떻게 할지도 가족분들이 잘 상의해보세요. 어떤 순간에도 당황하지 마시고 필요할 땐 연락 주세요.”
처음 찾아뵈었을 때는 빨리 병원으로 모시고 가보라고 말씀드렸다. 119가 아니더라도 평일이 되면 입원이 가능한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문제를 확인한 뒤 최소한의 기력을 회복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가족들끼리 상의해보시더니 병원에 가면 고생하시다 돌아가실 것 같아 주저했다. 호스피스 병원을 가까운 곳에서 찾기도 어렵고 당장 입원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연락을 주셨다. 몇번 찾아뵙고 최소한의 처치를 해드리니 다행히 물도 몇잔 드시고 가족들과 이야기도 잠시 나누었다고 했다.
임종을 앞뒀다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종종 마주한다. 물론 언제가 마지막일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임종을 앞둔 담담한 당사자와 여러 회한이 스치는 보호자를 만난다. 보호자분들이 마음의 정리를 할 수 있도록 상태를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최소한의 역할이다. 응급실에 가야 할지, 집에 모시고 있어도 될지 쉬운 결정은 아니다. 당사자와 보호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그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 결정에 맞추어 앞으로의 계획을 설정한다. 그리고 언제라도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벨소리를 최대로 하고 잠이 든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닐 것 같다. 숙진님과 가족들의 오래지 않을 동행을 조금이라도 돕고 싶다. 찾아가는 의사 홍종원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남의 집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꿈도 계획도 없다. 내 집도 남이 드나들어도 신경쓰지 않는다. 방문을 허락하는 이들이 고맙고, 그 고마운 이들과 오랫동안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