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 대표변호사가 후배 변호사를 성폭행한 사건 피해자가 경찰에 “수사결과를 발표해달라”고 요구한 가운데, 그 가능성과 실효성을 놓고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대표변호사가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황에서, 피의자가 사망했더라도 수사가 상당부분 진행된 만큼 결과를 밝혀야 한다는 게 찬성론자의 주장이지만, 피의자가 사망해 항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수사결과를 공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 사건 피해자를 대리하는 이은의 변호사는 지난 31일 “피의자 사망으로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경찰은 이미 이뤄진
수사결과를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의 말을 종합하면, 피해자는 지난해 봄 대표변호사 ㄱ씨에게 수차례 성폭행 및 성추행을 당했고, 그해 말 ㄱ씨를 고소하면서 약 6개월가량 경찰 수사가 진행된 상태였다. 그러나 ㄱ씨가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수사는 중단됐다. 에스엔에스(SNS) 등에선 ㄱ씨 사망 뒤 피해자를 탓하는 식의 2차 가해도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은의 변호사는 “피의자가 극단적 선택을 해 피해자가 피해를 떠안는 형국이 됐다”며 “이 점을 고려해 수사기관은 수사결과 발표와 그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수사 중 피의자가 숨지면 수사는 중단되고 수사결과도 발표되지 않는다. 경찰수사규칙에 따라 이 경우 경찰은 수사를 종결한다. 검찰도 조사받던 피의자가 사망하면, 검찰사건사무규칙에 의해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처분한다. 앞서 경찰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서도 박 전 시장 사망으로
수사를 종결했으며, 배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건도 조 회장이 2019년 4월 지병으로 별세하면서 수사가 마무리된 바 있다.
피해자 쪽에선 수사기관이 수사를 중단하면 사건의 진상규명이 어려워진다고 비판한다. 이은의 변호사는 “피의자 사망으로 수사를 중단하는 건 관행에 불과하다. 피의자 기소나 처벌이 어렵더라도 실체적 진실규명을 위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 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도 “피의자가 사망해도 사실관계를 밝힐 수 있는 건 밝히는 게 수사기관의 역할”이라며 “피해자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규명하는 게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위해 필요하다. 자살로 피해자의 권익 구제를 봉쇄하는 피의자의 행위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추가수사나 수사결과 발표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양홍석 변호사는 “현행법상 수사는 죄를 밝히고 처벌하기 위한 국가 작용으로 피의자가 사망하면 처벌 대상이 사라지기 때문에 더 이상의 수사 필요성도 없어진다”며 “‘공소권 없음’을 유지하는 이상 더는 수사하지 않고 중단하는 게 맞다”고 반박했다. 서초동의 또 다른 변호사는 “피의자가 사망해 항변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추가로 수사하고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피해자의 요구와 달리 수사결과를 발표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서울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조사가 많이 진행된 건 맞지만 종결된 것은 아니다”라며 “피의자가 사망했는데 그동안 수사한 걸 갖고 결론을 내서 발표해 달라는 것은 내용상의 한계 뿐만 아니라 피의사실 공표와 같은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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