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엔번방 사건과 유사한 성착취물 유포 범죄가 또다시 발생하는 등 디지털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엔(n)번방 사건’이 2019년 공론화되면서 후속 대책으로 엔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마련됐지만, 최근 엔번방 사건과 유사한 성착취물 유포 범죄가 또다시 발생하는 등 디지털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불법 성착취물 유통 경로인 텔레그램은 법 적용 대상에서 벗어나 있고, 텔레그램처럼 서버가 국외에 있고 익명 대화가 가능한 플랫폼 운영사에서는 성착취범 신원을 파악하려는 경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불법 웹사이트에서 메신저 대화방으로 성착취물이 유포되는 악순환이라도 제대로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법영상물 삭제 서비스를 제공하며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하는 보안회사 ‘라바웨이브’의 김준엽 대표는 7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수사기관의 온라인 수색이 불가능한 현재로서는 경찰이 불법영상물이 유포되는 익명 대화방에 직접 들어가 범죄 증거를 수집하지 않는 이상 성착취범의 구체적인 범죄행위를 알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수색이란 국가가 범죄 예방과 범죄 수사를 목적으로 타인의 정보기술 시스템에 비밀리에 접근해 저장된 정보를 열람하는 등 범죄 증거를 수집하는 기법이다.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갈수록 심각해지는 디지털 성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엄격한 요건 아래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는 상황이다.
불법영상물 삭제 서비스를 제공하며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하는 보안회사 ‘라바웨이브’의 김준엽 대표는 “텔레그램으로 성착취물이 유포돼 피해가 커지는 연결고리부터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바웨이브 제공
텔레그램 대화방 안에서 유포되는 불법영상물 중에는 불법 웹사이트에 올라온 영상물도 다수 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불법 웹사이트에 게시된 성착취물에 텔레그램 띠광고(배너)가 삽입돼 있고, 그 띠광고에 표시된 아이디(ID)로 연락하면 성착취범이 돈을 요구하며 불법영상물을 판매한다. 이를 산 이가 다른 플랫폼에 해당 불법영상물을 유포하는 식으로 디지털 성범죄가 확산하는 구조다. 김 대표는 “텔레그램·디스코드 같은 메신저에서는 웹사이트, 오픈채팅방과 같이 공개된 온라인 서비스에 올라온 불법영상물을 포착하는 필터링 기술이 모두 작동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성착취물 유통 창구인 텔레그램 등을 당장 제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이런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성착취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불법 웹사이트 게시물부터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말이다. 그는 “텔레그램으로 성착취물이 유포돼 피해가 커지는 연결고리부터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외에 서버를 두고 불법영상물을 유통하는 웹사이트를 규제하기 위해 한국도 ‘사이버범죄 방지 협약’에 가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유럽평의회 주도로 2001년 제정된 이 협약은 현재 유럽 45개 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캐나다 등 21개 비유럽국에서 발효 중이다. 이 협약은 가입국이 사법공조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직접 외국의 인터넷서비스 제공자에게 정보제출 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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