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7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부성주의 폐기 내용을 담은 민법 개정안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자녀가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하는 ‘부성우선주의’를 폐기하는 민법 781조 개정안이 이르면 8월 초 발의된다. 해당 개정안에는 부부가 협의해 자녀의 성·본을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성본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다. ‘아버지 성은 원칙, 어머니 성은 예외’로 두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평등한 조건에서 자녀의 성·본을 협의할 수 있게 만드는 개정안이다. 지난 20대 국회 때 이어 해당 민법 개정안을 다시 발의하는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7일 <한겨레>와 만나 “부성우선주의는 가부장제 사회의 표상”이라며 “현대사회에서 가장 급변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가족관계인데, 이를 반영한 법적인 기반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0대 국회에도 같은 법을 발의했는데 제대로 논의가 안 되고 임기만료 폐기됐다. 다시 발의하는 이유가 있나.
“호주제가 폐지됐다고 하지만 ‘부성우선주의’가 있는 민법 조항이 존재하는 한 실제로 이를 체감하긴 어렵다. 남성을 기본값으로 하는 가부장의 틀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등한 가족’을 지향하는 것이 시대와 함께 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법률이 이를 가로막고 있어 개정안을 재차 내게 됐다. 해당 개정안이 통과되면 사람들이 가족관계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도 보인다. 아빠와 자녀의 성씨가 다를 때, 예를 들어 사실혼·한부모·비혈연·다문화가족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차별의 시선이 존재하지 않나. 부성주의가 폐기되면 부부 간 평등한 문화가 마련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른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하는 차별이 사라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자녀가 아빠 성을 따르고 있나.
“20대인 아들이 한 명 있는데 최씨다. 아들이 초등학생 때 ‘그동안 최씨를 했으니 정씨로 바꿔보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싫다고 하더라. (웃음) ‘최씨 가문’이란 정체성이 이미 생겨났던 거다. 아빠의 성을 따르는게 ‘원칙’인 사회라면, 아이들도 가부장적인 질서에 자연스럽게 자신을 위치시키게 된다. 아들에게 ‘너한테 엄마와 관련된 부분도 최소 절반은 된다’고 답했다. 이처럼 자녀에게서 엄마와 관련된 부분을 사라지게 만드는 제도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인식 자체는 많이 변한 것 같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가족다양성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73%가 부모가 협의해 자녀의 성과 본을 정할 수 있게 하는 데 찬성했다.
“남성인 가장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존재고, 이때문에 아들을 중심으로 대를 이어나가는 가부장적인 가족질서 자체가 변화하고 있지 않나. 젊은 남성들도 부부가 함께 벌고, 같이 양육하는 걸 자연스럽게 여기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인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가족’ 개념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 거다.”
―나중에 아들이 결혼해서 자녀에게 부인 성을 물려주겠다고 해도 괜찮나.
“상관없다. 정작 결혼을 안하려고 해서 그렇지.(웃음)”
―‘부성주의 폐기’는 가족 내 성평등한 문화를 마련하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말씀하신대로 ‘대를 잇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아들-딸 차별의 유구한 역사가 만들어진 것 아닌가.
“그렇다. 제사나 장례문화도 여전히 기형적이다. 단지 ‘딸’이란 이유로 장손임에도 영정사진을 들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고. ‘하고 싶은데 못 하는 것’과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은 다르다. 저희 집도 딸만 세명인데, 제사에 함께하지 못했던 경험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제사에 같이 참여하고 싶어 옷을 단정하게 입고 기다렸는데, 할머니가 ‘너는 여자라서 안 돼’라며 내보냈다. 평생 잊지 못할 명언이다. (웃음) 그 땐 그게 법에 써 있기라도 하냐며 울고불고 싸웠다. 사촌오빠보다 더 착하고 공부도 잘 하는데 왜 못 지내게 하냐며 유치한 주장도 해봤다. 그 때 제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가 속으로 ‘아들 낳겠다’고 결심했다고 말씀하시더라. 차별의 시대를 살아왔는데, 그게 아직도 변하지 않은 거다.”
―여성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오면서 ‘호주제 폐지’ 운동을 겪지 않았나. 그 때 기억이 궁금하다.
“그 때는 재판을 중심으로 운동이 진행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교계 쪽에서 ‘근본없는 것들’이란 욕도 많이 먹고 항의 전화도 사무실로 많이 왔는데 개의치 않았다. 사회 전반의 인식이 호주제 폐지 쪽에 기울었던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이미 핵가족화가 진행이 많이 됐고 가족의 형태가 변화무쌍하게 변하던 시기였다. 당시 ‘부모 성 함께쓰기’ 운동도 있지 않았나. 저는 한동안 양쪽 성을 다 안 쓰고 이름만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이런 시도를 통해 가부장제 질서를 좀 가볍게 만들면서 새로운 제도에 대한 상상을 해보는 것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성평등 관련 의제에 대해선 늘 사회적 인식과 법의 괴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듯 싶다. 법무부가 매우 보수적이다. 부성주의 폐기는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을 위한 법제개선위원회’에서 권고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법무부에선 별다른 검토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법무부가 늘 법의 안정성만 이야기하는데 이는 매우 문제적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급변하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할 법적인 근거가 마련되지 않고 있다. 비단 민법 뿐 아니라 20대 국회 때 발의했던 스토킹방지법이나 디지털 성폭력 관련 처벌 법안도 그랬다.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하지 않는 법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민법은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고 사회 문화를 투영하기도 한다. 이를 법에 다 담지 못하니 사회적으로도 파열음이 일어나는 거다. 사실 부성우선주의를 폐기하는 것 외에도 부부 간 평등을 위해 다른 민법 개정안도 함께 발의할 예정이다.”
―어떤 법안인가.
“혼인생활 중 부부가 취득한 재산에 대해선 양쪽이 공평하게 재산을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공유재산제’를 명시한 법안이다. 현행 법은 부부재산제를 ‘별산제’로 채택하고 있다. 부부 중 한쪽이 자기 이름으로 소유한 재산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 제도에 따르면 혼인생활 중 부부가 함께 기여해 취득한 재산이라고 해도, 명의를 가지지 못한 쪽의 재산권은 보호받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자기 명의 재산을 갖지 못한 비율이 높은 여성에게 불평등하게 적용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여성이 주로 맡아온 육아·가사노동에 ‘노동의 가치’를 부여하지 않을 때 만들어진 제도기도 하다. 2006년 법무부가 관련 개정안을 내긴 했는데 그 때도 통과되지 않았고 아직도 별산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가족 안의 민주화가 아직도 멀었단 생각이 든다. 호주제 폐지될 때도 ‘나라 망한다’는 얘기 나왔지만 전혀 아니지 않나. 시대 변화에 맞는 법적 규율이 만들어져야 한다.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 의원 분들이 적극 판단해주셔야 하는데, 설득도 열심히 해보겠다.(웃음)”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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