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대용 가스레인지의 유혹. 린나이코리아
[매거진 Esc] 요리의 친구들
밖에서 먹는 밥은 맛있다. 한때 여름철 방송 뉴스의 단골 자료화면은 산과 골짝에서 사람들이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고기를 굽는 모습이었다. 같은 부서 선배는 1995년 여름 계곡에서 그 맛을 봤다. 전북 진안군 주천면의 운일암 골짝은 시원했다. 떠꺼머리 대학생 넷은 돌을 골라 자리를 폈다. 그러나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을 만한 크기의 돌판이 없었다. 가로 세로 30cm가 넘는 돌판을 낑낑거리며 올려놨다. 억지로 불을 켰지만 휴대용 가스렌지가 찌그러들 듯 위험해 보였다.
딱 맞는 함석판을 사무실 선배가 발견했다. 냅다 돌판을 치우고 함석판을 올려놨다. 선배는 과학시간에 배운 ‘함석〓아연도금 철판’이란 설명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열전도율이 높아 순식간에 고기가 지글거렸다. 지지직!. 선배는 그때 먹은 삼겹살을 ‘내 인생의 맛’으로 주저 없이 꼽았다. 발암물질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팔리기 시작한 건 1970년대 후반이라고 린나이 코리아는 설명한다. 골짝한테는 미안하지만 휴대용 화덕 덕분에 많은 서민들의 혀가 즐거워졌다.
공원으로 지정된 계곡에서 음식을 만들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자연공원법)에 처해진다. 그러나 나는 계곡만 보면 유혹에 빠진다. 교과서에 나왔던 최익현의 <유한라산기>를 기억하시는지? 그는 “백록담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털썩 주저앉아 잠시 동안 휴식을 취하였다. … 시구를 외며 백록담 가로 되돌아오니, 짐꾼들이 이미 밥을 정성스럽게 지어 놓았다.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데, 물맛이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나는 일행을 둘러보며 말하기를, ‘이 맛은 금장옥액(신선들이 먹는 선약)이 아니냐?’고 말했다”고 썼다. 130년 전에도 밖에서 지어먹는 밥은 꿀맛이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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