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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룸 고객이 모텔로 간 사연

등록 2007-12-12 18:03

브이아이피가 방문하면 총지배인은 더 분주해진다. 올해 록그룹 스콜피언스가 W호텔에 투숙할 때 총지배인과 함께 한 모습. W서울워커힐호텔 제공
브이아이피가 방문하면 총지배인은 더 분주해진다. 올해 록그룹 스콜피언스가 W호텔에 투숙할 때 총지배인과 함께 한 모습. W서울워커힐호텔 제공
[매거진 Esc] 닉 히스의 ‘호텔에서 생긴 일’ ⑪
왕족 접대에서 손님 찾기까지 호텔 서비스는 끝이 없어라

브이아이피를 맞느라 분주했던 기억들이 떠오르네요. 인도네시아 호텔에서 일하던 1999년, 새로 취임한 와히드 대통령이 우리 호텔에 투숙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역사상 어떤 대통령도 호텔에서 투숙한 적이 없던 터라 우린 초긴장 상태였죠. 며칠 전부터 정부 비밀요원, 경찰과 함께 보안 준비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와히드 대통령은 도착하자마자 대연회장에서 연설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비서에게 “화장실에 가야겠다”고 말하지 뭡니까. 비서는 당장 근처에 있던 직원에게 “가장 가까운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죠. 대통령은 우리가 미리 준비한 브이아이피 전용 화장실 대신 호텔의 공용화장실로 안내되었습니다. 경호원들은 계획에 없던 일에 크게 당황하며 공용화장실 주위를 지켰죠.

대통령이 원하는 수프를 찾느라 진땀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오후 6시쯤 호텔에 드나드는 도로가 800명 가량의 공장 노동자들로 막혀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직원들이 트럭을 타고 와서는 도로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 겁니다. 이 사건 자체는 우리 호텔과 아무 관련이 없었습니다. 노동자들은 대통령이 노사분쟁에 대해 동정해주기를 바란 것이었습니다. 차도를 정리하는 데 장장 4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날 밤 대통령은 이 지역의 소꼬리 수프를 먹고 싶어 했고, 우리는 다시 이를 위해 작은 식당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그때 그 식당 주인은 아마 “당신이 만드는 수프는 대통령을 위한 것”이라는 우리 말을 믿지 않았을 거예요.


타이 방콕에서는 왕족 등이 몇 차례 제가 있던 호텔에 투숙했습니다. 언젠가 아프리카 어떤 나라의 대통령이 투숙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회의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영부인은 쇼핑에 여념이 없었죠. 덕분에 호텔의 모든 보관 장소가 다 찼습니다. 대통령 내외가 공항으로 떠났을 때 우리 호텔에선 모든 짐과 쇼핑한 물건들을 나르기 위해 트럭까지 준비해야 했습니다. 타이 국왕의 즉위 60돌 축하행사가 열렸던 해에 벌어진 사건도 기억납니다. 호텔을 출입하는 모든 사람들이 금속 탐지기와 수화물 스캐너를 통과해야 했죠. 그 와중에도 권총을 차고 다니던 요르단 국왕이 있었습니다. 타이 음식을 아주 좋아하는 요르단 국왕은 제가 근무하던 호텔의 타이 레스토랑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국왕이 팔 옆에 끼고 있던 권총을 테이블에 놓는 걸 보고 아주 놀랐습니다.

W호텔에서는 브이아이피보다 ‘손님 찾던 일’이 더 생각나네요. 호텔에서 사람을 찾는 일이 쉬워 보이죠? 천만에요. 저희처럼 같은 지역에 호텔이 두 개 있을 땐(W호텔 바로 옆에 쉐라톤워커힐 호텔이 있음) 더 어려워요. 사업차 투숙하는 손님들은 대부분 단체로 체크인을 합니다. 그런데 꼭! 따로 돌아다니시는 분이 생기고, 그분들 때문에 호텔 전체가 발칵 뒤집히기도 한답니다.

손님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거창한 서비스보다 ‘담배 한 갑’일 때가 있습니다. 일본, 중국인 카지노 고객들은 저희 카지노의 중요 고객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며칠 동안 투숙하던 일본인 카지노 고객이 갑자기 체크아웃을 했습니다. 지갑과 여권도 그대로 놔둔 상태였습니다.

설렁탕 한 그릇에 담긴 풀서비스 정신
닉 히스의 ‘호텔에서 생긴 일’
닉 히스의 ‘호텔에서 생긴 일’

저희 직원이 수소문해 그가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그 직원은 중요한 분실물을 우편으로 보내는 게 신경 쓰여 퇴근길에 직접 전달하기로 했죠. 그곳은 직원의 집과 반대 방향이고 W호텔과도 1시간이나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일본인 손님을 찾아간 직원은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카지노에서 돈을 죄다 잃고는 변두리 모텔에 머무르며 자신을 일본으로 송환시켜줄 대사관 직원을 기다리는 상태였습니다.

W호텔의 고급 ‘스파 스위트룸’에서만 머무르던 그 손님이 지저분한 모텔에서 밥도 못 먹고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자, 그 직원은 발을 뗄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 손님을 근처 국밥집으로 데리고 가서 설렁탕을 사먹였습니다. 나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과 다음날 아침에 먹을 빵과 우유를 사주었답니다. 같이 담배를 한 대 피우는데 그 고객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더군요. 그는 일본으로 돌아가자마자 제게 전자우편을 보내 이 사연을 전했죠. 자신을 도와준 직원이 ‘베스트 프렌드’라며 다음번 한국에 머물 때도 반드시 W호텔에서 묵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닉 히스 W서울워커힐호텔 총지배인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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