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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생명이 좌우되는 작업의 정석

등록 2008-01-23 23:42수정 2008-01-25 15:56

새김칼은 작지만 위험하다. 새김질을 할 땐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한다.
새김칼은 작지만 위험하다. 새김질을 할 땐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한다.
[매거진 Esc] 마장동 새김꾼 김지삼의 18년 ②
발골의 핵심은 등심… 새김칼 엇나가 스스로 찔려 숨지는 경우도
저는 처음부터 발골을 배운 게 아니라 쇠고기를 납품하는 일부터 배웠습니다. 마장동 업소를 돌아다니면서 어깨너머로 배웠습니다. 정부가 식육처리 기능사 자격증 제도를 만들었지요? 그래서 요새는 교재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배울 땐 새김질 교재는 꿈도 못 꿨습니다. 교재는커녕, 누구 한 명이 붙잡고 가르쳐 주면 좋으련만, 돼지와 달리 소는 비싸서 아무도 초짜에게 칼을 안 맡기려 했습니다. 어깨너머로 배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입니다. 그래서 새김질을 배운 지는 10년이 넘지만, 지금 회사를 차린 것은 7년쯤 됐네요.

날마다 소주 마시지만 새김질할 땐 예외

새김칼은 보기보다 무서운 물건입니다. 작은데 매우 날카롭기 때문에 실수로 자기 살을 찔렀을 때, 대체 칼날이 얼마나 깊이 들어갔는지 가늠이 안 됩니다. 병원에 달려가 조사를 받아 봐야 비로소 정확히 찔린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발골 작업이 위험한 까닭 가운데 하나입니다. 상처의 크기만 보고 ‘별것 아니겠지’라고 안심했다가 크게 다치는 수가 있습니다. 발골 경력 20년이 가까운 한 친구는 발골하다가 자기 새김칼에 스스로를 찌른 사람이 숨지는 모습을 봤다고 합니다. 어떻게 자기 스스로 상처를 낼 수 있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네요. 새김칼로 뼈와 살을 바르다 칼날이 연골 같은 데 딱 걸릴 때가 있습니다. 이때 뻑뻑하다고 오른손에 무리하게 힘을 줬다간 새김칼이 엇나가 곧바로 자신의 허벅지를 찌르게 됩니다.

그래서 작업의 요령이 중요합니다. 오른손잡이는 오른손에 새김칼을 쥐고 왼손으로 천장에 걸린 쇠고기를 붙잡아 작업합니다. 이때 반드시 왼손이 오른손보다 높은 부위를 잡아야 합니다. 혹 실수로 오른손이 새김칼을 휘둘렀을 때 자신의 왼팔을 찌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오랫동안 발골한 사람들은 대부분 큰 상처 하나씩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잔상처만 있고 큰 상처는 없어 운이 좋은 편에 속합니다.

저는 새김칼과 ‘야스리’를 갖고 일합니다. 야스리는 꼬챙이처럼 생긴 도구로 우리말로 ‘줄’입니다. 새김질이 중요한 이유는 결국 돈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가령 등심과 갈비를 얼마나 정확히 분리하느냐에 따라 돈이 왔다 갔다 합니다. 가령 등심이 더 비싼데, 등심 발골을 잘 못했다고 칩시다. 그만큼 손해 보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런 게 새김질을 평가하는 실력의 기준이 됩니다.


제가 처음 새김질을 배울 때 힘들었던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다치는 것보다 칼질하나에 돈이 왔다 갔다 해서 많이 긴장했습니다. 발골의 핵심은 등심 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 전 등심과 안심(소의 갈비 안쪽 채끝에 붙은 연하고 부드러운 살) 가르는 일이 젤 어려웠습니다. 등심이냐 안심이냐에 따라 값어치가 달라집니다. 새김칼질 방향 하나에 돈이 걸려 있습니다. 수입 쇠고기는 발골해 본 적 없습니다. 왜냐하면 발골, 손질이 다 된 상태로 부위별로 진공포장 돼 수입되기 때문입니다.

워낙 몸을 많이 쓰는 일이라 소주를 많이 먹게 됩니다. 아무리 줄이려 해도 거의 날마다 마시는 것 같네요. 그러나 새김칼을 잡을 때만은 예외입니다. 술에 취해 새김칼을 잡는 일만큼 위험한 건 없습니다. 어깨도 다 망가졌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침도 맞고 병원도 다녀봤지만 허사입니다. 어쩌겠습니까. 본래 어깨를 많이 쓰는 직업인데 말입니다.

새김꾼 스카우트와 수입소의 함수관계

마장동 축산물 시장이 생긴 지 40년이 넘습니다. 예전엔 ‘마장동에서 아무개가 제일 새김질을 잘한다더라’는 소문도 돌곤 했습니다. 또 실제로 새김질 잘하는 사람을 축산업자들이 서로 데려가려고 스카우트를 펼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샌 스카우트전까지 벌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과거보다 외려 새김질 일이 줄어든 탓이 큽니다.
마장동 새김꾼 김지삼의 18년②
마장동 새김꾼 김지삼의 18년②
무엇보다 수입 쇠고기도 많아졌습니다. 밖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소 발골은 스포츠 경기가 아닙니다. 무조건 빨리 한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뼈가 하얗게 반짝반짝 빛날 정도로 완벽하게 뼈와 살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발골하는 데 천년만년 걸린다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속도와 정확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결국 새김질을 잘한다는 건 속도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이익을 가져다 주느냐 입니다.

옛말에 ‘소 한 마리를 잡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빈말이 아닙니다. 지금은 도축장에서 내장이나 소머리를 따로 공급하니까 특정 부위만 따로 다루는 업체가 있습니다. 제 가게 바로 옆 가게는 소머리를 다듬습니다. 저도 새김질과 손질을 다 마치고 나면 소 지방 덩어리가 수북하게 쌓입니다. 이 기름들은 따로 모아서 비누공장으로 보냅니다. 마장동을 돌아다니며 기름만 따로 사는 분도 계십니다.

김지삼 부영축산 대표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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