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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문명의 충돌

등록 2008-06-18 23:21수정 2008-06-23 16:44

〈농심과 함께 하는 라면 공모전〉 ‘삶은 라면’의 추억
〈농심과 함께 하는 라면 공모전〉 ‘삶은 라면’의 추억
[매거진 Esc] 농심과 함께 하는 라면 공모전 ‘삶은 라면’의 추억
1. 뜨거웠던 삶은 라면

18년 전쯤 전 일이다.

고등학생 시절 3년 연속으로 같은 반이었던 몇 안 되는 녀석 중에 한 친구가 있었다.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 녀석이었다. 나름대로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한번도 자기 집에 놀러 가잔 소릴 안 했고 누구도 그 녀석 집엘 다녀왔다는 이야길 듣지 못했다. 그냥 속으로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험을 마치고 이른 시간에 집으로 가려는데 그 녀석이 “우리 집에 가서 밥이나 먹자”고 했다. 그래서 찾아든 산동네의 허름한 녀석의 집에서 녀석이 내놓은 것은 양은으로 된 밥상에 라면과 맨밥 그리고 간장뿐이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이 간장은 뭐냐?” “우리 집에 김치가 다 떨어져서 …. 간장이라도 찍어 먹어라. 그래도 명색이 손님인데 그냥 라면만 내놓을 수 있냐? 라면에 계란도 풀었으니 남기지 말고 다 먹어라.”

우리 집도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중학교 땐가 공부 좀 잘했다고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선물로 사주신 게 너구리라면 한 박스였으니까. 하지만 그날 내가 받은 충격은 거의 ‘문명의 충돌’ 수준이었다. 생전 처음 신문지로 도배한 집을 방문했고, 드라마 ‘전원일기’에 나오는 곳이 아닌 데도 그런 밥상에 밥을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허기진 상태이기도 했지만 그 녀석의 마음이 너무 고맙고 ‘너무 세상 쉽게 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으로 울면서 그 라면 한 그릇을 다 먹은 기억이 난다. 그 뒤론 절대 반찬 투정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 먹었던 그 뜨거웠던 삶은 라면은 오랫동안 내 기억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 녀석은 현재 미국에서 공부 중이다. 아직도 라면을 먹는지 한번 물어봐야겠다.

야학은 학생과 노동자가 서로 배우는 곳이었다. 70년대 구로공단. 한겨레 자료사진
야학은 학생과 노동자가 서로 배우는 곳이었다. 70년대 구로공단. 한겨레 자료사진

2. 기름진 삶은 라면

고등학교를 졸업도 하기 전에 처음 찾은 곳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야학이었다. 동네의 공장 지역 노동자를 대상으로 운영되는 생활야학이었다. 당시 무슨 생각이었는지 ‘대학 가면 꼭 저기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찾아갔다.


첫날 여러 선배 강학(야학에서는 선생을 ‘강학’으로, 학생을 ‘학강’으로 부른다. 강학은 가르치며 배우는 사람, 학강은 배우며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들과 인사를 한 뒤 학생 모집 포스터를 붙이러 가기 전에 식사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날 처음 간 신입이고 막내라 그냥 주는 밥을 먹고 나중에 설거지나 하라고 말했다. 식사는 라면과 밥 그리고 김치였다. 하지만 라면이 좀 특이했다. 웬 생선 같은 게 들어 있어서 뭐냐고 물어봤다. “이곳 식사는 거의 90%가 라면이고 영양 공급을 위해 매일 정어리 통조림 하나씩 넣는다”고 했다. 골뱅이 번데기 통조림은 알았지만 정어리 생선 통조림은 그날 그곳에서 처음 봤다.

어찌 되었건 기름진 라면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그렇게 기름진 그릇은 난생처음 설거지한 것 같았다. 라면 기름에 정어리 통조림 기름까지 …. 그 라면을 그렇게 1년 이상 먹었다. 그리고 지금은 결코 그런 기름진 라면을 먹지 않는다. 그때 함께 라면을 끓여 먹던 동료 강학들과도 대부분 연락이 되질 않는다. 라면 뒷면에 라면에 얽힌 사연과 사람 찾는 소식란을 만들어도 대박 날 것 같다. 우리 국민 중에 라면과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추억 하나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당시 가장 기름진 라면을 먹었으면서 기름진 생활을 하지 못했던 야학의 강학들과 학강들에게 안부 인사를 전하면서, 다음에 만나면 깡통 생선 말고 싱싱한 해산물에 라면 한번 끓여서 대접해야겠다.

김규환/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괴안동

◎ 주제 : 내 삶은, 삶은 라면 - 라면에 얽힌 추억·이야기

◎ 분량 : 200자 원고지 10장 안팎 + 관련사진. 반드시 연락처나 전자우편 명기.

◎ 기간 : 1차 공모 - 6월13일∼8월15일

◎ 응모 방법 : 농심 고객안심 캠페인 홈페이지(www.promise-tree.com)에 공모.

◎ 마감 : 매주 금요일 자정

◎ 상품 : ‘농심호텔 패키지 상품권 + 농심 베스트셀러 선물세트’ 40만원 상당

◎ 발표·게재일 : 개별 연락/매주 목요일 요리면

◎ 문의 : 농심 (02)820-8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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