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적 해탈
[매거진 esc] 문득 생각난…
아마도 내가 전생에 대통령이었다면 나는 이생에 정치인이 되고자 했을 것이다. 혹은 기업을 경영하는 사업가였다면 대학원에서 엠비에이(MBA) 코스를 밟았을 것이다.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였다면, 만화책이 가득 꽂힌 골방에서 만화를 그리고 있었겠지. 그렇다면, 나는 전생에 디자이너였던 걸까? 디자이너라는 내 타이틀은 전생의 내 책임이기도 한 것이니 말이다.
어쨌든 나는 내 전생을 도통 알 길이 없으니, 이왕이면 내생(다음 생애)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때에도 나는 과연 디자인을 하고 있을 것인가? 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윤회가 있다면, 언젠간 나도 해탈을 하게 될 것이다. 단, 부처의 해탈과는 조금 다른, 그러니까 부처가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면, 나는 그래픽적 해탈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 세상 모든 일에는 각각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고유의 무언가가 들어 있는 것 같다. 1천 가지 직업이 있으면 1천 가지 해탈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참으로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고, 가치 없는 일 또한 하나도 없는 듯하다.
이임정 기자 im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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