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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이력서를 보여다오

등록 2009-01-21 19:21수정 2009-01-24 16:33

기자가 찾아간 양계축사.
기자가 찾아간 양계축사.
[매거진 esc] 고나무 기자의 맛경찰 | 계란
무항생제 인증 받은 축사를 찾아가 들어본 방사 달걀, 유기 달걀, 그냥 달걀의 진실

⊙ 조사 대상 : 축사형 달걀과 방사·유기 달걀에 대해 요리사와 함께 논하다.

⊙ 조사 내용 :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008년 방사형(프리 레인지·free range) 달걀 판매량이 축사에서 생산된 달걀 판매량을 앞질렀다고 지난해 말 보도했다. 한국에서 축사형 달걀은 여전히 생산량의 90%를 차지한다. 경기도 광주의 길샘농장(대표 이만형)을 찾아가, 방사·유기 계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 농장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에서 무항생제 인증을 받은 축사형 농장이다.


달걀에 금이 갔는지를 검사하는 기계.
달걀에 금이 갔는지를 검사하는 기계.
요리사 제트(이하 제트) : 아까 축사를 봤습니다. 이 정도 규모면 큰 것인가요?

길샘농장(이하 길샘) : 우리 농장의 산란계(알 낳는 닭)는 주령(주를 기준으로 한 닭의 나이)별로 조금씩 다릅니다. 네 가지 서로 다른 주령의 닭이 각각 1만5000마리씩 있습니다. 전체 6만 마리죠. 우리나라 전체 양계 농가는 1700가구 정도입니다. 10만 마리에서 큰 곳은 80만 마리씩 기르는 곳도 있으니, 우리 농장이 크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젊은 닭이 낳은 달걀이 더 건강?

제트 : 소비자들은 유정란과 무정란의 차이를 궁금해합니다.

길샘 : 글쎄요. 유정란과 무정란이 난황(노른자위)의 영양분이라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수정 여부보다, 계란의 품질은 산란계의 수령에 따라 다르다고 봅니다. 젊은 닭이 낳은 게 더 좋죠. 가령 저희 농장은 20주령부터 50주령 사이의 젊은 닭이 낳은 제품만 따로 모아 ‘오늘 아침란 2050’이라는 제품을 만들었죠. 늙은 닭이 낳은 달걀은 따로 마요네즈용 등으로 판매합니다.

제트 : 저도 계란을 구입하는 레스토랑 경영자지만, 생산자 표시가 안 돼 누가 어디서 생산한 것인지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이곳 달걀은 어디로 유통되나요?

길샘 : 대부분 중간 유통업자들이 사고, 일부는 농장 근처 농협이나 마트에 납품합니다. 우리 농장은 무항생제 인증을 받았습니다. 이 인증을 받으려면 계란에서 항생제가 검출돼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살모넬라균 검사와 수질 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함께 받아야 합니다. 법적으로 모든 양계장의 달걀에서 항생제가 검출돼선 안 됩니다만, 무항생제 인증을 받으려면 더 까다로운 거죠.

제트 : 레스토랑으로 바로 달걀을 납품하는 시스템은 불가능할까요?

길샘 : 그래서 저희는 최근 상인을 거치지 않고 바로 소비자들과 만나는 실험을 했습니다. 농장 근처 아파트에 계란 자판기를 설치했습니다. 20주령에서 50주령 된 닭이 낳은 달걀을 공급합니다. 현재 7대를 가동 중입니다.

방사와 유기 달걀은 다르다. ‘방사’는 말 그대로 풀어서 기른다는 뜻이다. 유기 달걀은 풀어서 기르는 점은 같지만, 토양과 사료의 조건 등에서 국제 기준을 만족시켜야 하는 등 훨씬 까다롭다. 방사는 모호한 개념이라, 우리나라를 비롯해 국가 차원의 기준이 없는 나라가 많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방사 계란’ 이름으로 팔리는 달걀이 실제로 어떤 조건에서 생산되는지는 농장마다 다른 셈이다. 농관원은 달걀과 관련해 유기 계란과 무항생제 계란 등 모두 두 가지 인증제도를 갖고 있다. 무항생제 계란은 항생제 검출 여부는 물론, 살모넬라균 검출 기준과 면적당 마릿수 등에서 더 엄격한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유기 인증이 더 까다롭다. 기준을 통과하면 인증마크와 함께 제품에 생산자가 표시된다. 이 마크가 없는 제품 이름에 ‘유기농’이나 ‘무항생제’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면 과장 광고다. 농관원은 유정란이 무정란보다 우월한지는 과학적으로 아직 검증된 바 없다고 설명했다.


(위)양계장에서 나온 달걀은 ‘씻기건조오일코팅흠검사’ 과정을 거친다. <br>(아래)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무항생제 인증과 유기 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위)양계장에서 나온 달걀은 ‘씻기건조오일코팅흠검사’ 과정을 거친다.
(아래)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무항생제 인증과 유기 인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제트 : 아까 일반적으로 산란계는 100주령이 넘으면 폐기한다고 하셨습니다. 다 늙은 산란계는 어떻게 처리하나요?

길샘 : 전부 도계장에 가져가 처리합니다. 산란계는 육질이 매우 질겨 소시지 등 가공식품 재료로 이용합니다. 닭똥은 발효시켜 비료를 생산합니다.

제트 : 뜬금없는 질문이긴 합니다만, 우리 어렸을 적 초등학교 앞에서 몇백 원에 팔던 병아리들은 다 어디서 온 걸까요?

길샘 : (웃음)글쎄요, 제 추측으로는 대부분 산란계 수컷이 아닌가 합니다. 산란계의 경우 병아리 때 암수 구별을 합니다. 수컷은 알을 못 낳으니 필요가 없지요. 아마 그 수컷 병아리들을 거의 공짜로 갖다 파는 것일 겝니다.

제트 : 제가 요리사로 일했던 미국·유럽에서는 수컷 산란계의 경우 병아리 때 폐기하더군요.

고나무 기자(이하 고) : 결국 ‘얄리’(신해철의 노래 ‘날아라 병아리’에 등장하는 병아리)는 수컷이었군요.

제트 : 달걀을 랩으로 싸면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건 요리사로서 궁금한 내용인데요, 달걀의 선도를 유지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습니까?

길샘 : 랩으로 싸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달걀 껍데기를 통해 공기가 통하는데, 이 기공을 막으면 외려 안 좋습니다. 달걀 생산 과정에 오일코팅을 하지만, 그렇다고 기공을 막는 건 아닙니다. 기름 사이로 공기가 통하죠. 공기 중의 병균은 달걀 안의 막이 막아줍니다. 결국, 곧바로 냉장고에 넣어 보관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고 : 지난달 영국 신문 <가디언>을 보니, 최초로 공장형 축산 달걀보다 프리 레인지 달걀 판매 매출이 더 많아졌다고 하더군요. 방사형 달걀이 축사형 달걀보다 맛이나 품질이 낫다는 의견도 있더군요.

길샘 : 글쎄요. 영양학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을까요? 일단 방사가 유기농은 아닙니다. 다만, 풀어서 기르니 주워 먹는 게 다른 거죠. 결국 ‘자연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선이 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봅니다. 무조건 놓아 기르는 게 좋다면, 사람도 산에서 수렵하는 사람들이 가장 건강하게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또 방사를 적극 도입했던 유럽의 한 선진국에서 중산층 이하 계층은 러시아에서 수입한 값싼 축사형 계란을 먹고 돈 있는 계층만 방사형 계란을 사먹는다고 들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누가 계란을 생산했는지 표시하는 ‘이력제’가 정착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얄리, 너 남자였니?


고나무 기자의 맛경찰
고나무 기자의 맛경찰
농관원은 유기 계란이나 무항생제 계란의 생산량을 다 합쳐도 전체 생산량의 10%가 안 된다고 밝혔다. 양계협회도 한국은 땅값이 비싸고 기술력이 낮아 방사형 계란 생산량도 1~2%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풀어서 길러야 하는 탓에 대부분의 방사형 달걀 생산 농가 규모는 5000마리를 넘지 않는다. 방사나 유기 달걀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농장을 나오며 제트에게 물었다.

고 : 방사형 달걀이 더 낫긴 한가요?

제트 : 아무래도 맛은 더 낫죠. 그러나 안전성이나 영양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고 : 확실한 건 ‘얄리는 수컷이었다’는 점이군요.

⊙ 송치 의견 : 더 안전한 먹거리를 더 많은 사람이 먹도록 하는 것은 시대의 ‘화두’다. 이 사건 역시 당분간 미제 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사진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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