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 김신이 만든 <샐러드>
[매거진 esc] 김신의 ‘꼬미꼬미’
냉정살벌한 일본의 서열문화 깨우쳐준 야마시타의 리베라 드레싱
냉정살벌한 일본의 서열문화 깨우쳐준 야마시타의 리베라 드레싱
“학교 어디 졸업했어요?”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농땡이만 쳤고, 여기가 저의 학교예요. 여기서 모든 걸 배웠죠.” 야마시타는 열혈 청년이다. 나이는 나보다 5살이나 어리지만 일에 대한 자부심, 긍지, 노력 어느 하나도 뒤지지 않는다. 가구라자카 지역 비스트로계의 신성이다. 출퇴근용 애마는 영국제 트라이엄프 모터가 달린 네이키드 모터사이클. 삐쩍 마른 몸에 헐렁한 티셔츠, 깊은 쌍꺼풀의 전형적인 일본인 외모인 야마시타는 프랑스 요리사의 꿈을 안고 군마현에서 상경했다. 라비튀드에서 근무한 지 3개월, 주방은 여름으로 접어들며 푹푹 찌기 시작했다. 일본의 더위는 축축한 습기가 양말 위로부터 올라와 바지에 쩍쩍 달라붙는다. 날씨가 풀리면서 예약이 늘었다. 홀에서 일하다가도 주방에서 호출이 오면 부리나케 뛰어들어가 설거지를 한다. 입가에서 땀이 떨어질 정도로 더운 주방 안 그릇 스팀기를 여는 순간이었다. “쨍강!” 소리와 함께 무언가 바닥에서 팝핀을 한다. 스팀기의 안개가 걷히니, 머스터드색 포셀린 커피잔이 바닥에서 헤드뱅잉을 하다 목이 부러져 있는 게 아닌가! 사망 진단서다! 순간 열혈 청년 야마시타와 눈이 마주쳤다. “김상! 사과해 주십시오!”“예? 뭐라고? …” 난 패닉에 빠졌다. 그래도 우선 “괜찮으세요?” 이런 말을 먼저 해야 하지 않나? “당신은 지금 레스토랑의 기물을 부쉈습니다. 사과하십시오!” 순간 짜증이 솟구쳤다. 살갑게 대해주던 야마시타가 오늘은 완벽한 ‘나까무라 순사’다. “김상, 커피잔, 수저, 밥 한 톨까지 라비튀드의 재산입니다. 우리 모두 아끼고 청결하게 유지하여 귀하신 손님들께 올리는 거예요. 그렇게 함부로 다루시면 안 됩니다.” 그의 말이 옳았다. 하지만 너무 냉정하게 나이 어린 친구가 눈을 뜨고 덤벼드는 바람에 순간 당황했다. “셰프에게 사과하십시오!” 재촉하는 그가 얄미웠다. 철저히 조직에 순응하는 일본인의 모습이랄까? 윗사람 지시에 일 획도 벗어남이 없었다. 배운 적 없는 불어로 정확한 ‘아농스’(annonce. 손님의 주문을 주방에 불러주는 것)하며, 깍듯하게 상급자를 예우하는 것, 청결한 주방 관리. 주방 쥐새끼마저 족칠 야마시타였다. 뼈에 사무치도록 업신여김을 당한 내 안에서 이 녀석을 능가하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오너 셰프인 오사카 상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야마시타가 난리를 부리는 동안 뒤도 안 돌아보던 셰프는 단 한마디만 했다. “앞으로 조심하길 바란다.” 7월의 도쿄 주방은 차가웠다. 김신 올리브앤팬트리 주방장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