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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는 열두 제자냐?”

등록 2010-09-30 09:51

김신의 ‘꼬미꼬미’
김신의 ‘꼬미꼬미’
[매거진 esc] 김신의 ‘꼬미꼬미’

남미 출신의 주방 동료 이름은 ‘지저스’ 그의 아내는 ‘마리아’였다네
‘액센트 레스토랑’의 주방에는 남부 캘리포니아 뭉게구름처럼 많은 남미 이주민들이 같이 근무했다.

그중에 특히 눈에 띄던 한 남자 ‘예수’가 있었다. 신장 162㎝ 정도에 땅땅한 몸집. 더벅머리에 두 눈동자는 좌우 45도 이상으로 벌어져 있던 독특한 외모. 어디 한군데 유태인 예수로 보인다거나, 나를 구원해준다든지 뻘겋게 삶아진 가재를 바닷속에서 헤엄칠 수 있게 기적을 베풀 요량은 없어 보이는데, 주방장인 로랑 셰프는 계속 그를 “지저스, 컴 히어”(예수여 강림하소서!)라고 불러댄다. 아~ 미치겠다, ‘지저스’라고 부르기에는 성체모독이니 그럼, ‘코모스타 시뇨르?’라고 인사할까? 괴로움은 잠시, 그의 본래 이름은 ‘헤수스 페르난데스’였다. 라틴 계열은 대개의 이름을 성경에서 많이 도출하였기에, ‘헤수스’가 본명이다. 마치 ‘줄리오 이글레시아스’와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차이라 할까? 아무튼, 가끔 ‘헤수스’와 얼굴을 마주치고 인사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내 얼굴이 아닌, 내 가슴과 어깨 너머를 응시하는 그의 눈빛과(사시이므로), 가슴에 팍 꽂혀 있는 ‘JESUS’라는 명찰에서 알 수 없는 유머와 성체모독을 동시에 느꼈다.

탄탄한 체구를 가지고 있으니 동양인보다도 체력적으로 우수하다. 장시간 근무에도 싫은 내색 한번 없이 묵묵히 일만 하는 ‘메히코 헤수스’. 매일 오전 일곱시에 출근하여 런치 근무를 마치고 1시에 퇴근. 오후엔 우리 호텔에 와서 30분 정도 휴식을 가질 뿐, 쉬지 않고 근면하게 맡은 바 일을 해낸다. 예수도 근면한 목수이지 않았는가? 완전한 노동당 계열의 열혈 분자이다. 짧은 영어와 외모 때문에 정해진 스테이션은 없지만, 궂은일 마다 않고 순돌이 아버지처럼 내 일 남의 일 없이 도와주던 헤수스. 그러던 가을 어느 날, 칼 가방을 가슴에 챙겨 들고 눈물을 훔치며 직원통로를 지나치는 그가 보였다. “토니, 헤수스 왜 그래? 울면서 나가던데?” “배가 아프대, 갑자기 쓰러지더니 울기 시작했어.”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던 헤수스는 지난 몇년간을 쉬지도 않고 자기의 몸이 망가지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왔다. 고향으로의 송금과 가족 부양, 끊임없이 벌어야 하는 기계적 노동은 이민자의 설움과 함께 터져버리고 말았다.

일주일 뒤 헤수스의 복귀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됐지만, 치열한 경쟁 속의 주방생활은 나도 그처럼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했다. 며칠 뒤 총주방장 도미니크는 헤수스에 대한 위로와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는 의미로 가족들을 초청했다. 아마도 좋은 식사와 따스한 말로 걱정을 덜어주려는 것이었으리라. 주방에 인사차 들어온 말끔한 사복차림의 그와 부인. “헤수스, 케 놈브레 시뇨라?”(부인의 이름이 뭐지?). “마리아, 놈브레 마리아.” 장난하냐? 넌 예수고 와이프는 마리아? 그럼, 우리는 너의 열두 제자냐!

성경책에 새로 써야겠다. 예수는 애가 셋이라고! <끝>

올리브 앤 팬트리 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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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료: 올리브 오일 2큰술, 다진 양파 큰 사이즈 1컵, 다진 방울토마토 혹은 캔 토마토 3컵, 곱게 다진 할라페뇨 반 큰술, 다진 마늘 1/2쪽, 드라이 오레가노 1/2작은술, 드라이 바질, 쿠민 1/2작은술(옵션), 옥수수 토르티야 4장, 달걀 4개, 다진 고수 1/2큰술(옵션), 버터 1/2큰술, 소금·후추 약간

⊙ 만드는 법: 1. 살사 즉 소스를 만들기 위해 프라이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양파와 마늘을 투명해질 때까지 중불에서 볶아 준다. 다진 토마토, 오레가노를 더해 약 10분간 약불에서 익혀주고, 할라페뇨를 잘 섞어준 뒤 소금·후추로 간을 해준다. 2. 토르티야는 앞뒤로 버터를 잘 발라 준 다음 약불의 프라이팬, 또는 70도의 오븐에서 열을 가하여 따뜻하게 해준다. 3. 따뜻한 접시 위에 토르티야를 얹고 토마토소스를 얹은 다음 달걀 프라이를 올려서 같이 즐긴다. 4. 엑스트라 소스를 달걀 위에 그리고 으깬 콩 등을 같이 곁들여도 좋다. 5. 옵션으로 고수, 쿠민 등의 허브를 더해 더욱 본토의 맛으로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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