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의 ‘꼬미꼬미’
[매거진 esc] 김신의 ‘꼬미꼬미’ 주방 언저리에서 까불다 혼쭐난 ‘공주과’ 웨이트리스
그는 23살의 야마네상. ‘리스토란테 메모리’의 서버로는 가장 오랫동안 근무를 했던 현재 치위생학과에 다니는 예비간호사이다. 야마네상은 4년제 일반대학에서 특수직종으로 전과를 한 ‘하코이리코’-즉 상자 안에서 자란-공주처럼 귀하게 자라신 몸이다. 내가 살던 와카마초 유지의 딸로 약간은 자기중심적인 재미있는 아가씨다. 그의 남친은 두 살 연하의 ‘야노’군. 오사카에서 상경하여 와세다대 유학생활을 하던 미소년 대학생이다. 무척이나 닭살 커플이던 그들은 금방이라도 결혼할 듯이 함께 런던 여행을 다녀오고, 메모리에서의 근무 시간도 맞추어서 일하며 끝없는 애정을 과시했다. 하지만 애정표현이 너무 심했다. 한번은 지각을 한 나에게 야마네상은 “김, 오늘 오분 지각했으니 저녁밥은 먹을 생각 하지 말아요!”라고 했다. 마치 자신이 가게 사장인 양 행세하더니, 매일 지각하는 남친 야노군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오늘 늦으면 저녁 먹기 힘들다”고 지각 주의경보를 전하는 게 아닌가! “그래, 나도 빨리 여친을 만들자, 치사하다.” 가뜩이나 도쿄의 한국인으로 살기도 힘든데 야마네의 행동은 나의 반일감정을 자극했다. 물론 야노군은 그날 저녁을 잘 먹었다 - 치사한 놈! 진짜 사건은 다른 날 벌어졌다. 이탈리아 요리에서 ‘폴렌타’는 프랑스의 감자요리만큼이나 꽤 많은 요리에 쓰인다. 곱게 빻은 마른 옥수수 가루를 곱게 쪄내고 다시 육수에 불려서 굳힌 다음 토마토소스, 생햄 등과 같이 즐긴다. 그런데 이 녀석(폴렌타)을 굳히면 겉은 금방 식지만, 속은 40여분이 지나야 온건히 단단해진다. 마치 겉만 살짝 식은 팥죽 같다고 할까? 한가한 디너시간. 예약 손님들이 오고, 샐러드, 수프, 파스타, 이제 메인요리가 나갈 참인데 사이드디시로 폴렌타를 원하는 손님이 있었다. 마침 뜨끈한 폴렌타를 준비해 두었기에 푹 떠서는 보기 좋게 먹기도 좋게 접시에 담았다. “김, 이거 폴렌타가 차가운데?” 야마네의 불평이 시작되었다. 응? 이상하다, 분명 뜨거운 녀석을 냈는데? 자, 다시 한번! “김, 폴렌타가 차갑다니까! 너 이렇게 일하는 거 사키상한테 일러준다.” 이런, 쯧, 말버릇하고는. 야마네의 엄지손가락은 폴렌타에 살짝 걸쳐져 있었고 약간 식은 표면이 차갑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손가락 빼지 그래? 손님이 드실 폴렌타야, 야마네의 손가락이 먹을 거 아니라고.” “하여튼 차가운 폴렌타는 바꿔줘.” 야마네와의 신경전을 끝낼 때가 왔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강냉이죽에 지나지 않지만, 부드럽고, 뜨겁게 익혀진 폴렌타를 손으로 만지다가는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오우, 그래? 야마네 이거 한번 체크해줘, 같은 폴렌타인데 손님에게 나갈 수 있을지 말이야.” 난 그의 손바닥 위로 뜨끈한 폴렌타를 ‘턱’하니 올려줬을 뿐이고, 야마네는 ‘차가운데’라고 말하다가 점차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을 뿐이고 철없는 야노는 곁에서 좋다고 낄낄거리고 있을 뿐이고. 당황한 다바타는 얼음 물수건을 준비할 뿐이고! 내가 가라사대, ‘트러스트 유어 셰프’, 즉 너의 요리사를 믿으라는 이야기. “다시는 주방 언저리에서 까불지 말도록.” 나의 한마디는 좋은 교훈이 되었음이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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