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의 ‘꼬미꼬미’
[매거진 esc] 김신의 ‘꼬미꼬미’
프랑스 주방에서 만난 셰프 알렉스, 결국 피를 흘리며 낙향한 사연
프랑스 주방에서 만난 셰프 알렉스, 결국 피를 흘리며 낙향한 사연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내가 알렉스를 기억하는 건 아마도 ‘키친 컨피덴셜’의 주인공과 겹치기 때문일 게다. 짧고 곱슬거리는 진갈색 머리, 잘못 끓인 에스프레소 같은 시커먼 눈동자. 거칠고 시퍼런 수염, 툭 튀어나온 이마와 꿔다 박아놓은 듯한 큰 코, 그리고 170㎝ 전후의 주방에서 일하기 딱 좋은 키. 그보다, 삐쩍 말랐지만 주방 짬으로 다져진 강인한 어깨와 꽉 다문 입술, 거친 손을 보고 있노라면 어리지만 연륜을 느낄 수 있는 프랑스 요리사였다.
어찌됐건 그는 연애 작업의 귀재였으며, 주방에서 가장 독립적인 사고방식과 신세대 요리사의 첨단을 걷는 ‘알. 렉. 스.’였다. (한때 주방에서 ‘이런, 알렉스 같은 놈!’이라는 욕도 했었다.)
파리에서 요리 학교를 우수하게 졸업하고 당시 미슐랭 가이드 2성의 ‘라 투르다장’에서 데미 셰프로 승승장구하다가 리옹의 ‘보퀴즈’로 스카우트된 알렉스. 꼬미 김신이 바닥 생활 3개월 끝에, 스타제(주방에서 ‘꼬미’ 다음 단계)로 승진(?)하여 겨우 주방에서 근무를 시작하는 첫날부터 우리는 친해졌다. 짧고, 되지도 않는 일본어로 “여~ 일본에서 온 꼬레아노, 난 알렉스야. 친하게 지내자”며 다가온 그 남자. 아마 시골 출신이었던 그에게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프랑스까지 건너온 내가 신기하게 보였겠지만, 엉뚱하게도 내게 던진 그의 첫 질문은 “대마초 있니?”였다. 이유인즉슨, 알렉스는 눈뜨는 순간부터 대마초를 피워대는 완전한 ‘꾼’이었던 거다. 저녁 서비스 시간, 코스의 첫 접시가 서비스되자마자 그는 사라진다 - 어디로? 대마초 피우러 - 부주방장은 두번째 접시가 나갈 때 그를 찾는다 - 그는 안 돌아온다 - 하는 수 없이 부주방장이 세번째 요리까지 대신하여 내어 주고 나면 - 알렉스가 왔다! 두 눈이 풀린 상태로 - 부주방장은 기도 안 차서 아예 말도 안 건넨다.
매사가 그런 식이었다. 오늘은 제대로 된 서비스를 이어 나가다가도, 어느 한순간 삐딱해지면 다음날은 주방에서 그를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상사로부터의 해고 협박? 씨도 안 먹힌다. 혼내고 어르고 다 해보아도 전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는 그 누구도 범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으니 바로, 천재적인 ‘요리사의 피’였다.
그가 만드는 프랑스 전통적 방식의 테린, 파테, 드레싱, 소스 그 모든 것이 수석 주방장도 흉내낼 수 없었던 천재적인 재기가 담겨 있던 것이다. 레시피? 요리책?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오직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그의 혀와 거칠고 빠른 손, 40분이라는 시간만 주어지면 모든 것을 꿈처럼 바꾸어 놓았다. 채소와 고기의 조화, 레몬 한 티스푼으로 바뀌는 산도, 심지어 파이 하나를 구워내어도 정확한 시간과 온도에 맞추어내는 대마초 요리 기계 알렉스! 미움도 많이 샀지만 그의 천재적인 요리를 맛보면 경이로움에 몸이 떨린다 - 때문에 아무도 그를 내칠 수가 없었다. 젊은 요리사의 변덕스러움은 오만과 자기만족에 미친 예술가의 바로 그것이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요리사도 예술가처럼 명이 짧을까? 어느 가을날 정확히 정오, 얼굴을 가린 두 손에서 미친 듯이 피를 뿜어내며 주방을 가로질러 가던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 대마초뿐만 아니라, 향정신성 의약품 과다 복용에 밤낮으로 달리던 알렉스의 건강은 최악의 상태까지 와 있었던 것이다. 당대 미슐랭 스타에 빛나던 레스토랑의 젊은 요리사는 낙향의 길로 돌아가야 했다.
“난 알렉스야 - 여기 주방에선 아무도 믿지 마. 이렇게 말하는 나도 믿지 마. 내 요리는 나만 알고 있어야 돼. 다들 도둑들이거든!” 그래 친구여, 지금은 어디서 날고 있는가 - 날개야, 돋아라.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김신 올리브 앤 팬트리 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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