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의 ‘꼬미꼬미’
[매거진 esc] 김신의 ‘꼬미꼬미’
마치 연인을 사랑하듯 그렇게 꿩을 요리하다
마치 연인을 사랑하듯 그렇게 꿩을 요리하다
군대에는 왜 그리도 까투리, 꿩이 많은지 전방에서 근무하던 어느 겨울날, 아직 하얀 눈이 군데군데 얼룩져 있는 풀숲 사이로 까투리 한 마리가 화려한 날갯짓을 하며 수컷을 유혹하고 있었다. 작은 공작과도 같이, 예쁘고 탐스러운 꼬리 털을 흔들며 꿩의 주위를 맴돌던 까투리…. 하지만, 사실은 꿩이 까투리를 유혹하는 것이란 걸 제대 후에야 알게 되었다.
수컷인 꿩은 특히 이북에서 냉면의 육수, 꿩 만두, 젯밥 등에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인데, 마침 고향이 황해도인 조부모님이 꿩 만두를 즐겨 드셨기에, 나에게는 어려서부터 꽤 친근하게 느껴지는 마치 닭 같은 식재료였다.
레스토랑 ‘보퀴즈’가 있는 리옹, 프랑스는 능선과 평원 산지로 이루어진 천혜의 자연조건으로 수많은 가금류인 꿩, 뇌조, 메추리, 토끼 등을 야생, 또는 양식으로도 접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어느 늦은 가을날이던가. 첫서리가 내리고, 날씨도 추워져 아침에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주방에 출근해 보니 사과 궤짝 같은 와인 박스 안에 깨끗한 면 보자기로 싸인 핏덩이들. 꿩, 토끼, 그 외 알 수도 없는 불가사의한 사체들이 줄서서 누워 있었다. ‘합동 장례식인가?’ 난 같이 출근한 알렉스에게, ‘이거 뭐니?’ ‘어? 흐흐 여자들(프랑스에서는 젊은 여자를 메추리에 비교하기도 한다)이지 뭐겠어? 모처럼 피비린내 나는 아침을 맞겠구나!’ 변태 같은 놈. 아침부터 눈이 뻘건 게 아직 간밤에 마시던 그라파(이탈리아의 독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치노! 프레파라시옹 드 파이잔’ 셰프 드 파르티 리샤드가 나보고 꿩을 준비하라 한다. 왠지 나의 가족을 살해하라는 닌자의 특명을 받든 맘으로 한 발짝 칼을 들고 다가섰다. 면 보자기를 살짝 들어올리는 순간, 어머나! 얘네들 모두 발가벗고 있다네? 머리에만 털이 있고 나머진 알몸의 ‘누드’였다. 게다가, 살 위에 손을 대는 순간, 꿩의 따스한 온기가 내 손끝을 타고 심장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이걸 어째!!! 보다 못한 알렉스가 참견을 한다 ‘꼬레! 잘봐, 꿩은 이렇게 사랑하는 거야.’ 알렉스의 거침없는 손길은 꿩을 머리부터 발끝으로 한 번에 쭉 훑더니 뒤로 손을 집어넣고 내부의 장기를 끄집어내어 정리한다. 날개와 다리를 펴주더니 칼끝 가는 대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거죽을 벗겨 나간다, 가슴살을 도려낼 때는 연인의 가슴을 어루만지듯이 - 숙련된 의사가 사랑의 상처를 도려내듯이 날카롭고도 부드럽게 - 내 손에 담아주었다. “따뜻하지? 이렇게 사랑해야 돼. 파이잔(꿩)의 사랑이 우리를 즐겁게 해. 입에서 가슴으로 말이야. 정말 고맙지, 안 그래? 친구.”
식재료를 그저 소비재로 보지 않고 요리사의 사랑을 가슴으로 전하는 매개체로 여기는 리옹의 주방 한구석, 그 순간 내 손안에 담긴 꿩에게 다시 태어날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멋진 모습을 보여준 알렉스는 바로 뒤돌아서는 메추리의 항문에 ‘파르시’(스터핑을 채워넣는 행위)를 하며 연신 즐거워하고 있었다. 성도착증 변태 같은 녀석!
김신 올리브 앤 팬트리 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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