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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보다 더 행복한 일 찾아냈죠”

등록 2012-08-22 16:58수정 2012-10-25 14:03

김은유 뮤직비디오 감독. 박미향 기자 제공
김은유 뮤직비디오 감독. 박미향 기자 제공
[매거진 esc] 인간 반전
음악 백치 모범생 소녀에서 뮤직비디오 연출로 성공한 김은유 감독
영화 <너는 내 운명>, <그놈 목소리> 등을 연출한 박진표 감독의 소개로 소년 같은 한 여자를 만났다. 말투는 담백하다 못해 툭툭 부서졌다. 평상시엔 남들에게 구구절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법이 거의 없는 말수 적은 소년의 분위기였다. 올해 나이 스물여덟. 그는 현재 트웰브라운드(12R)의 대표를 맡고 있다. 권투의 마지막 라운드를 의미하는 이름을 문패로 내건 이곳은 뮤직비디오 제작사다. 마지막 라운드에 올랐다는 심정으로 치열하게 뭔가를 해보자는 심정에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권투를 좋아하냐고 묻자, 심드렁한 표정으로 피식 웃는다. “권투를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회사 차릴 때 부모님이 사무실 보증금을 빌려주셨는데, 회사 망하면 시집이나 가라고 하기에 이번이 마지막 기회구나 싶어서 이런 이름을 붙이게 됐죠.”

profile

김은유 1985년 부산 출생. 뉴욕주립대 영화과 졸업. 2011년 FT아일랜드 ‘헬로 헬로’로 뮤직비디오 감독 데뷔. 2011년 유키스 ‘네버랜드’로 SBS, MTV, 베스트 뮤직비디오상 수상.

다행히 마지막 라운드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권투로 치면 1라운드에서 케이오(KO)승을 거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회사를 연 지 두달 만에 에프티(FT)아일랜드의 ‘헬로 헬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고, 영상이 공개된 뒤 반응이 좋아 꾸준히 한달에 두세 편의 작품을 공개하고 있다. 12R의 문을 연 지 1년 반 만에 이룬 성과가 제법 그럴듯하다. 에프티아일랜드의 ‘새들처럼’, 유키스의 ‘네버랜드’ 뮤직비디오로 유튜브 전세계 톱페이지에 올랐고, 유키스의 일본 진출곡 ‘틱톡’의 뮤직비디오로 일본 무대에서도 꽤 이름을 알렸다.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고, 지원군이 빵빵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일단 보증금을 빌려주는 부모님이 있었고, 어린 여자가 보낸 3장짜리 장문의 편지를 흥미롭게 읽어준 연예기획사의 대표가 있었다. 에프티아일랜드와 씨엔블루가 소속된 에프엔시(FNC)엔터테인먼트의 대표는 저돌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피력하는 소녀가 누구인지 궁금해 일단 만나보기로 했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갓 나온 음원을 영상화할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거절당하고, 또 거절당했던 뮤직비디오 연출 기회를 드디어 잡게 된 순간이었다.

김은유 감독이 영상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중학교 시절이다. 모범생 소녀는 핑클과 에스이에스(SES)도 구분하지 못할 만큼 가요나 연예계에 관심이 없었다. 그 무렵, 드라마 문외한인 그를 가슴 뛰게 하는 한 편의 드라마가 나타났다. 한류의 시발점이 된 윤석호 감독의 멜로 <가을동화>. ‘어, 이게 뭐지? 이렇게 영상이 아름다울 수도 있는 건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힘이 센 건가?’ 마음속에 작은 동요가 일었다. 국제고등학교에 수석 입학했지만 그는 무료한 인생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무료한 인생 바꾸기 위해
교환학생으로 미국 체류
영화과로 진로 바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1년간 교환학생으로 미국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한국 사람이 거의 없는 와이오밍에서 새 생활이 시작됐다. 학과 공부는 어렵지 않았지만 외로움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음악을 듣고 또 들었다. 사진기를 놓지 않았다. 여백이 많은 풍경 사진을 주로 찍었다. 음악을 들으면 영상이 자연스레 흘러넘쳤다. 대학에선 부모님이 그리 원하지 않던 영화과 진학을 선택했다. 예술영화를 주로 가르치는 뉴욕주립대 영화과였다.

여기서 잠깐, 화면을 리플레이 해본다. 박진표 감독이 그를 소개해주면서 건넨 한마디. “<너는 내 운명>에서 촬영 스태프 막내로 일했던 친구인데, 꽤 재미있는 이력을 가졌어.” <너는 내 운명>은 2005년 9월에 개봉되어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멜로영화다. 햇수를 따져보면 그의 나이 고작 스무살 때 영화 스태프로 참여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는 인터뷰 중간중간 참여했던 영화 이력을 몇 편 더 읊어댔다. 자랑삼아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영상을 만든다는 게 얼마나 재미있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자연스레 흘러나온 이야기다.

“<어느날 갑자기>와 <어느날 갑자기 네 번째 이야기-죽음의 숲>, <잘못된 만남>의 스태프로 일했어요. 틈만 나면 유튜브 동영상을 만들고, 개그맨 홍보 동영상도 만들었죠. 조회수가 100만이 넘어 기사로 소개된 적도 있어요. 처음엔 영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전혀 몰랐고, 그걸 알기 위해 영화 스태프 일을 시작했죠. 근데 만족감이 너무 크더라고요. 그냥 심부름한 것밖에 없는데, 영화 개봉된 다음 사람들이 감동하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뿌듯해요. 저 장면 찍을 때 내가 저기서 뭘 하고 있었는데, 기억이 나니까 그것도 참 좋고.”

스무살 때부터
다양한 영화현장 경험
젊은 여성이라는 선입견 극복

미국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온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풍성한 한국 경력이다. 그는 방학 때마다 한국에 나와 다양한 영상 경력을 쌓아나갔다. “영화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무조건 한국에서 영상 일을 시작하고 싶었죠. 외국에 있으면 애국심이 강해져요. 대구 지하철 참사가 났을 때 혼자 기사 보고 엄청 울었거든요.”

한국에 돌아오면 뭔가 대단한 사건이 펼쳐질 줄 알았고, 어떤 일이든 잘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고, 1년간 한심한 백수 생활이 이어졌다. 용기를 내서 평소 좋아했던 가수들에게 뮤직비디오 연출 제안을 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정중하지만 완곡한 거절.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 여자의 능력을 믿어주는 곳은 거의 없었다. 오기에 차서 뮤직비디오 회사를 차렸다. “회사를 차리면 일을 맡겨주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의 작품은 몽환적이고 이국적이다. 외국 어딘가에서 찍은 것 같은데, 해외 로케이션 작품은 한 편도 없다. 동화 속 한 장면을 재현해낸 것 같은 낯설고 이국적인 느낌. 이런 독특함이 통했는지, 그는 현재 몇몇 일본 가수의 뮤직비디오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일본 음악방송에서 그의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올 날이 머지않았다. “한국에서 시작해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꿈을 이루고 싶어요.” 스물여덟, 소년처럼 싱싱한 피가 힘차게 끓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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