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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여자에게 홀리는 그 느낌의 백배”

등록 2012-11-21 17:08수정 2012-11-29 13:51

신동만. 씨네21북스 제공
신동만. 씨네21북스 제공
[매거진 esc] 인간 반전
취미를 직업으로 바꾼 프로낚시꾼 신동만의 루어낚시 찬가
2주 전 제주도에서 얼떨결에 가다랑어 낚싯배에 동승했다. 선장은 10여년 만에 제주 바다에 찾아온 가다랑어 떼라며 “수십 마리는 너끈히 잡아 올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낚시의 기본도 모르는 초보자에게 선뜻 낚싯대를 쥐여주는 아량도 베풀었다. 낚싯줄에는 무늬만 물고기인 가짜 미끼들이 10여개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이걸로 진짜 팔뚝만한 가다랑어를 잡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낚싯대를 던졌더니 우려와 달리 가다랑어들이 초보자의 미끼나 어부들의 미끼나 ‘공평하게’ 물어준다. 30분도 채 안 됐는데 배 안에는 가다랑어가 한가득 쌓였다.

그날 우리가 체험한 것은 일명 루어(lure·가짜 미끼) 낚시. 낚시하는 방법에 따라 지깅 낚시(jigging·대를 상하로 움직여 잡는 낚시)로도 불린다. 신동만 프로는 이 분야에서 알아주는 고수다. 원래 플라잉 낚시의 멋에 이끌려 낚시에 입문했다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싶다는 소박한 호기심에 이끌려 15년여 전부터 루어낚시를 시작했다.

가짜 미끼로 물고기를 낚아 올리다 보면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지금 물고기에게 사기를 치고 있는 건 아닐까.” 루어낚시를 해본 첫 소감이 그랬다.

“인조 미끼를 진짜 물고기처럼 움직이는 게 기술이에요. 루어낚시의 매력은 가짜 미끼로 물고기를 잡는다는 것 자체에 있죠. 이걸로 가능할까 고개가 갸웃거려지는데 실제로는 별별 물고기를 다 잡을 수 있어요.”

흔히 낚시를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표현하는데 루어낚시는 기다리지 않고 열정적으로 쫓아간다. 정적인 스포츠가 아니라 어느 분야보다 활기찬 스포츠다. “대부분의 낚시는 한없이 기다린 끝에 겨우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아 올려요. 반면 루어낚시는 피싱 포인트를 찾아다니며 낚시를 하죠. 물고기 한 마리가 튀어오르면 그걸 한눈에 파악해 포인트를 찾아내고 가짜 미끼로 물고기를 홀려 물게 만드는 거죠.”

쇼하듯 재능 과시하는
직장생활에 신물 나
15년 전부터 루어 시작

미국 샌프란시스코부터 마다가스카르, 모리셔스까지 세계 곳곳을 누비며 거대한 물고기들과 사투를 벌여온 이야기는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한 대목처럼 길고 장엄하다. 짧게는 1시간, 길게는 3시간가량 물고기들과 씨름하느라 손이 잘릴 뻔한 적도 있고, 망망대해에서 실종될 뻔한 적도 여러 번이다.

“낚싯대만 보고 있어도 그냥 뿌듯해요. 주말에 길 막히는데 지방 다녀오면 몸이 천근만근 무겁잖아요. 그렇게 고생해서 다녀와도 뭔가를 빼앗긴 게 아니라 채워진 느낌이 들어요. 이건 연애할 때 느끼는 감정과 비교가 안 되죠. 낚시에 이끌리는 감정은 예쁜 여자에게 홀리는 감정의 백배 이상이에요.”

낚시를 이다지도 사랑하는 남자의 첫 직장은 원래 삼성항공(현 삼성테크윈)이었다. 대기업에 입사해 번듯한 삶을 시작했지만 “원숭이 쇼하듯 재능을 과시해야 하는” 직장생활에 쉽게 신물이 났다. 그는 1년 반 만에 직장을 때려치우고 옥외광고 사업을 시작했다.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일을 시도해야 재미를 느끼는 습성 때문에 사업을 할 때도 주위에서 걱정할 만큼 새로운 일을 자주 벌여 나갔다. 선거운동에 ‘유세 전용차량’을 도입하고, 공사 현장 펜스에 그림을 그려 현장의 삭막함을 지워 나가는 작업을 선구적으로 시도했다. 재주가 좋고 배짱도 두둑한 편이라 생소한 광고 의뢰를 받으면 일단 할 줄 안다고 말하고 광고주가 원하는 것을 뚝딱 만들어냈다.

열정적으로 포인트 찾아
가짜미끼로 물고기 잡기
“오늘 이 순간을 누리고 싶어”

이 무렵 신동만 프로가 은밀하게 즐기던 취미가 낚시였다. 직장생활 초창기, 우연히 해외 아웃도어 전문지 <배스 프로 숍>(Bass Pro Shops)을 읽다가 플라잉낚시 기사에 눈길이 꽂혔다. 해외 출장 가는 팀장에게 하나만 사다 달라고 부탁했더니, 고맙게도 잡지와 낚싯대를 세트로 사다주었다. 특별한 장난감을 손에 넣은 뒤부터 그는 무작정 플라잉낚시에 빠져들었다. <흐르는 강물처럼>의 한 장면처럼 카우보이모자를 눌러쓰고 강가에서 낚싯줄을 돌리는 모습이 어찌나 근사하던지.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플라잉낚시를 즐기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운 터라 장님 문고리 잡듯 낚싯줄 돌리는 법부터 차근히 연구했다. 너무 어설프게 낚싯줄을 돌리는 바람에 플라잉을 한 지 2년 만에 겨우 배스 한 마리를 잡아 올렸다.

지름길로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남들이 보기엔 조금 답답할 만큼 정도를 지키며 한길을 걸어갔다. 그는 이런 습성을 한마디로 ‘꼴통’이라 표현한다. “자기 일에 광적으로 매달려 한 분야를 개척한 사람, 그게 바로 꼴통 아닐까요? 나를 제일 잘 표현하는 단어가 꼴통이에요. 꼴통은 사실 제 어릴 적 별명이기도 하고요.”

profile

신동만 1967년생. 삼성항공(현 삼성테크윈)을 거쳐, 옥외광고 사업 시작. 공연 기획 및 (한미 텔레비전 뉴스) 한국 특파원 등 다양한 업종에 종사. 현재 루어낚시 전문가로서 다수의 낚시 채널 및 매체에 출연중이다.

집중력이 남다른 그는 루어낚시에 입문한 뒤 몇 백 킬로그램짜리 물고기를 너끈히 들어 올릴 수 있는 가볍고 튼튼한 낚싯대와 무게감 있는 가짜 미끼 등 다양한 루어용품을 직접 개발했다. 머리카락 두세개 굵기의 가는 줄로 대형 어족과 싸워 이기는 희열에 매료되다 보니 본업을 접고 지금은 프로 낚시꾼으로 살고 있다. 취미가 직업으로 바뀐 셈이다.

경제적 이익 창출은 여전히 어렵다. 매출은 늘었지만 버는 돈보다 투자하는 돈이 더 많다. 세계 전역을 누비며 루어낚시를 즐기려면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래도 등산가들이 히말라야를 찾아가듯, 그 역시 세계 전역의 피싱 포인트를 찾아 떠도는 일을 멈추지 못한다. 1000만원 이상의 경비를 들여 외국에 나가고 힘든 사투 끝에 대형 물고기를 잡아 올려도 사진만 찍고 바로 놓아준다. 그 이상의 욕심은 없다. 그는 순간을 최대한 즐기기 때문에 그저 행복하다고 말한다.

“내일을 준비하느라 오늘을 못 누리는 건 사람의 특징이죠. 동물은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누리며 살아요.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먼 미래를 계획하지 말고 빨리 가세요. 돈 벌어서 가야지 하면 평생 못 가요. 여건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예요.” 지론처럼 그는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조건을 부지런히 만들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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