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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홈카페에선 내가 커피의 신

등록 2013-09-25 20:29수정 2014-01-20 10:48

1 홈카페 전문가인 김요한씨.
1 홈카페 전문가인 김요한씨.
[esc] 커버스토리 고품질 커피 인기
홈카페 만들면서 우울증 극복한 커피광 김요한씨와 커피사랑으로 로스터기 개발한 변인규씨
김요한(30)씨의 직업은 영사기사다. 그의 일터는 롯데시네마 용인점. <시네마천국>의 알프레도가 떠오른다. 직업만큼 그의 일상도 향긋하다. 커피 때문이다. 퇴근 채비 목록에는 ‘스마트폰을 꺼내 앱을 활성화하고 누르기’가 있다. 손끝이 닿는 그 순간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수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그의 베란다에 있는 에스프레소 기계가 켜지고 서서히 뜨거워진다. 독일에서 구입한 원격조종 장치를 달아서 예열시간을 줄인 것이다. “가정용 에스프레소 기계는 업소용보다 예열시간이 길어요.” 에디슨이 된 양 커피를 볶고 추출해서 한 잔의 커피를 만든다. 그의 집에서 그는 ‘커피의 신’이다. 빨랫감이 차지해야 할 베란다는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든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었다면 그의 책 <해 뜨는 나라의 공장>에 넣고도 남을 수제커피 공장이다. 베란다에는 10가지가 넘은 커피 추출기들, 아담한 가정용 에스프레소 기계, 그라인드 장비, 로스터기, 형형색색의 커피 잔, 질감이 다른 필터 등이 나무 테이블에 줄서 있다.

2 여러가지 커피 추출기.
2 여러가지 커피 추출기.

4년 전이었다. 그는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자 우울증에 빠졌다. 당시 그가 하던 아동복 판매업은 이익은 고사하고 손실이 커져만 갔다. 공무원이었던 아내는 취미 삼아 커피공부를 해보라고 권했다. 그는 한 달에 네 번 한 카페의 커피교육 프로그램을 들었다. 커피 맛을 기가 막히게 감별해내는 소질을 발견하고는 “교통비 쓰지 말고 더 많은 원두를 사서 직접 해보자” 결심을 했다. ‘홈바리스타클럽’에 가입해서 동호회 활동도 시작했다. 2012년 5월부터 개설자로부터 카페 운영을 양도받았다. “결혼을 일찍 해서 친구도 별로 없고 조용한 성격 탓에 대인관계도 넓지 않았어요.”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을 만나 커피 얘기를 하다 보니 활기도 찾았다. 우울증은 서서히 그의 인생에서 자취를 감췄다. 현재 ‘홈바리스타클럽’은 630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는 카페로 성장했다. 공동구매하고 남은 수익은 굿네이버스에 기부한다.

“물 온도, 분쇄 정도가 다 맛에 영향을 미쳐요.” 커피 얘기를 시작하자 신바람이 났다. “요새는 에어로프레스 추출기가 인기예요. 제 그라인더는 말코닉(말코니히)인데 한 300만원 하죠.” 가격에 놀라는 기자에게 초보자는 “30만원대인 바라짜의 버추오소(virtuoso)를 추천합니다. 물론 10만원대 이하의 것도 있지만 어차피 오랫동안 할 요량이라면 이 정도가 적당해요.” 고가 커피장비 구입보다 간편하고 저렴한 추출기부터 쓰는 게 초보자에게는 좋다고 조언한다. “추출기인 칼리타만 해도 5천원부터 2만원 이상까지 다양하거든요.” 그는 동으로 만든 칼리타보다 좀더 싼 플라스틱 칼리타를 추천한다. “맛 차이 크게 없어요.” 그는 이제 전문가다. “초보자는 주변에 질 좋은 원두를 로스팅하는 데 가서 맛을 보고, 구입해서 집에서 많이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취향을 찾게 된다.

커피는 가족을 탄탄하게 엮어주는 동아줄이 됐다. 어설퍼 보이는 페트병으로 더치커피 추출기를 만들어 아내와 처제, 어머니에게 더치커피를 선물했다. 그의 어머니는 친구들 사이에서 ‘아들표 커피’로 인기 스타가 됐다. 부부관계는 더 좋아졌다. 7살, 6살 두 아이도 그의 팬이 되었다.

“처음에 생두를 팝콘 튀기는 기계나 프라이팬에 볶았는데 난리가 났죠. 회원이 직접 만든 로스터기 사용해요, 지금은.” 아예 커피사업 하라는 소리도 많이 듣는다는 그는 “생업이 되면 재미가 없을 거 같아요”라고 잘라 말한다. 커피용품 구입처로 ‘홈바리스타클럽’(http://www.homebarista-club.com)의 공동구매, 카페뮤제오(http://www.caffemuseo.co.kr), 남대문 수입상가의 커피용품 코너 등을 추천한다.

3 홈카페 활동을 하다 로스터기를 개발한 변인규씨.
3 홈카페 활동을 하다 로스터기를 개발한 변인규씨.

원두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실험해 새로운 맛을 추구하는 홈카페족들에게는 뜻밖의 일도 벌어진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경영학을 전공한 변인규(27)씨는 약 4년 전, 대학교 3학년 때 취미로 홈카페 활동을 시작했다. 커피를 접하자 도전정신이 왕성한 그는 바리스타대회 출전을 결심했다. 하지만 구입해야 할 로스터기가 수백만원대여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카페 아르바이트도 했는데, 대회 하나 때문에 수백만원을 쓸 수는 없었어요.” 그는 아예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캐드학원을 등록하고 도면도 그리고 카페 주인들을 설득해서 로스터기를 뜯어보기도 했다. 국내에 수입되는 대부분의 로스터기는 그의 섬세한 분해기술을 맛봤다. 바리스타대회는 까맣게 잊고 로스터기 제조에 돌진했다. “학생이니깐 돈 욕심도 없고, 그냥 재미있었어요. 뭔가 열심히 한 게 처음이었죠.”

도면은 완성됐으나 엉뚱한 곳에서 벽을 만났다. “철판 가공회사 찾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대전, 안양, 서울 청계천 일대 다 돌아다녔는데 ‘귀찮다’ 소리만 듣고 문전박대 당했어요.” 모터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4 변인규씨가 개발한 로스터기 '이지스터'.
4 변인규씨가 개발한 로스터기 '이지스터'.

결국 1년 걸려 멋대가리는 없지만 매우 실용적인 기계 한 대가 완성됐다. 카페에 올리자 2300여개의 댓글이 달릴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 몰려왔다. “너도나도 만들어 달라는 겁니다.” 35만원, 재료비만 받고 팔았다. 자신이 썼을 때 가장 좋은 구조를 만들겠다는 신념이 인정받은 것이다.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는 ‘누구나 로스팅할 수 있다’란 의미를 담아 ‘이지스터’란 이름을 기계에 달았다. 충남 부여에서 도장 파는 일을 하는 어머니의 가게를 작업장으로 썼다. 19.8㎡(6평), 작은 크기였다. “가게 구석에서 처박혀 했죠. 부모님은 제가 어떤 일을 하든 믿어주세요.” 쇄도하는 주문을 감당할 수 없어 대전으로 작업장을 옮겼다. 한 달에 10~15대 제작했다. “날카로운 부분은 제가 다 직접 갈아요. 로스팅하다가 베이면 안 되잖아요.” 이제는 사업자등록도 하고 264.4㎡(80평)로 넓히고 직원도 뽑는다. 홈페이지(http://cafe.naver.com/easyroster)도 열었다. 기능을 향상시킨 가정용 로스터기부터 상업용까지 생산한다. 총 4가지. 가격은 98만원에서 260만원 정도. “대학원 가려던 계획은 접었고요, 세계에서 가장 좋은 로스터기를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커피업계 관계자들은 홈카페족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본다.(22면 기사 참조) 롯데마트에서 내놓은 자료를 보면 가정용 에스프레소 기계 판매율은 2011년에 비해 2012년에는 5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해외 유명 로스터리 커피전문점과 계약을 맺고 가정에 원두를 배달하는 업체도 생겼다. ‘빈스박스’(www.beansbox.co.kr)는 미국, 캐나다, 유럽의 40여 군데 유명 로스터리 커피전문점의 볶은 원두를 3만4700원 가입비를 받고 한 달에 한 상자씩 배송한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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