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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힙합이 접수

등록 2016-12-01 10:14수정 2016-12-05 11:07

[ESC] 커버스토리_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힙합의 매력 속으로
힙합 레이블 하이라이트레코즈 공연장에서 관객이 열광하고 있다.(위) 하이라이트레코즈 제공 엠넷의 인기 힙합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5> 결승전 장면. (아래 3장) 씨제이 이앤엠(CJ E&M) 제공
힙합 레이블 하이라이트레코즈 공연장에서 관객이 열광하고 있다.(위) 하이라이트레코즈 제공 엠넷의 인기 힙합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5> 결승전 장면. (아래 3장) 씨제이 이앤엠(CJ E&M) 제공
“(힙합은) 타인의 눈치를 보며 할 말 못하고 사는 2030세대들에게 일종의 쾌감을 주었다. (중략) 취업, 입시, 결혼 등 고민이 많은 사람들에게 힙합은 일종의 출구 역할을 한다.”(<트렌드 코리아 2017>)

지금 대한민국은 힙합 세상이다. 2012년 첫 방송을 시작한 케이블티브이 엠넷의 <쇼미더머니>는 올여름 시즌5에서 시청률 3.8%를 찍었다.(티엔엠에스 기준) 지상파 3사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 시청률이 1.5% 안팎인 것과 비교하면 2배가 넘는다. ‘국민 예능’으로 자리잡은 <무한도전>에선 힙합에 역사를 결합한 ‘힙합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다음달 9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는 힙합의 한 요소인 그라피티를 소재로 한 ‘위대한 낙서’전이 열린다. 지난해부터는 힙합을 소재로 한 영화만 상영하는 ‘서울 힙합영화제’도 열리고 있다. 음악 차트인 ‘가온차트’ 분석을 보면 연간 음원 매출 상위 100곡 가운데 힙합 점유율은 2009년 7%였지만 2014년엔 15%로 뛰었다. 이 정도면 대중문화 전반을 힙합이 ‘접수’했다고 봐도 될 정도다.

‘좀 센 언니·오빠’들이나 즐기는 줄 알았던 힙합이 이렇게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이유는 뭘까. 문화계 안팎에선 우선, <쇼미더머니> 같은 방송과 대형 기획사들의 영향이 컸다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대표적인 게 ‘빅뱅’이다. 특히 지디라는 걸출한 스타는 힙합 음악에 익숙지 않던 여성들도 힙합 음반을 사게 만들었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힙합 음반 구매자의 절반 이상(54.9%)이 여성이다. 아이돌 그룹 ‘블락비’의 래퍼 지코는 언더그라운드에서 닦은 실력으로 아이돌이지만 전문 힙합 뮤지션에게도 인정을 받으며 스타로 떠올랐다.

그라피티 라이터 로얄독(심찬양)이 작업을 하는 모습. 로얄독 제공
그라피티 라이터 로얄독(심찬양)이 작업을 하는 모습. 로얄독 제공
“같은 시간이라고 해도 노래에 비해 랩은 담을 수 있는 메시지가 많다. 랩에 매력을 느낀 것도 이 때문이다.”(언더그라운드 래퍼 ‘미디엄’(본명 박현음·20))

힙합 자체의 매력도 한몫을 했다. 방송에서 아무리 띄워줘도 힙합 자체의 ‘힘’이 없다면 인기를 끌기 어렵다. 그 매력의 기원은 ‘놀이’다. 힙합은 1970년대 미국 뉴욕 브롱크스 지역 빈민가에서 흑인들이 ‘놀다가’ 만든 장르다. 누군가 음악을 선곡해 틀었고(디제이), 거기에 맞춰 춤을 추고(비보이), 정식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멜로디 없이 자기 자랑을 하기 시작했고(랩), ‘이 구역은 내 거야’라며 스프레이로 표시(그라피티)를 한 것이 힙합이 된 것이다. 즉 지극히 개인적인 놀이 개념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감정을 억압당하고, 할 말을 못하고 사는 청년들에게 힙합이 ‘탈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 엘에이(LA) 등에서 한복을 입은 흑인 소녀 그라피티를 그려 화제를 모은 그라피티 라이터 로얄독(본명 심찬양·28)은 “힙합은 내가 제일 잘났다는 영웅심에서 시작됐다. 남을 위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이 지극히 개인을 위해 작업하는 힙합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 세대의 ‘불안’이 힙합 열풍을 일으켰다는 분석도 있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거침없는 랩이 안정된 삶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분노와 희망을 드러내는 데 적합하다는 것이다. 한국 힙합 1세대가 인기를 끌었던 1990년대 말이 경제 불안이 극에 달했던 시기라는 점은 상징적이다. 지금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힙합 뮤지션 42명을 인터뷰해 <힙합하다>란 책을 낸 송명선 박사는 “요즘 인기를 끄는 ‘도끼’의 랩 속에는, 평범한 청년들이 공부 잘해 좋은 대학을 가도 가지기 힘든 롤렉스나 벤츠가 자주 등장한다. 사회의 경제적 불안과 개인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한국 힙합이 태어나고 성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힙합’의 뜻은 ‘엉덩이를 들썩이다’다. 귀가 아닌 몸으로 즐기는 문화다. 현재 한국의 힙합은, 엉덩이는 도서관 의자에 붙인 채 이어폰 꽂고 고개만 까딱이는 ‘헤드합’일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떤가, 그게 2016년 한국의 모습인 것을. 다 같이 손, 머리 위로, 푸처핸섭!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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