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동 대표 조엘 글래이저(왼쪽에서 둘째)와 애이브럼 글래이저(왼쪽에서 셋째)가 지난 2012년 8월 미국 뉴욕 월가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맨유의 상장을 기념하며 개장 종을 울리고 있다. 뉴욕/UPI 연합뉴스
1964년 대서양을 건넌 비틀스는
에드 설리번 쇼 출연을 시작으로 미국 음악계를 초토화했다. 뉴욕 존.F.케네디 공항에는 수천 명이 몰렸고, 빌보드 핫100에는 최초의 ‘차트 줄 세우기’를 시전했다. 이때의 광풍을 세상은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영국의 침공)이라고 부른다. 영국의 문화 침공은 60년대 이후 시들해졌고 다음 세기 들어 분야와 공수가 바뀌었다. 150년 묵은 영국의 ‘전통문화’ 축구에 ‘아메리칸 인베이전’이 벌어진 것. 아메리칸 인베이전도 사람을 모으고 순위표 줄 세우기를 한다. 조금 다른 양상으로.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소속 20개 구단 가운데 약 절반(9곳)이 미국의 자본가를 구단주로 두거나 부분적인 투자를 받고 있다. 축구사가들은 2003년 첼시를 인수한 러시아 석유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등장 전후로 프리미어리그 생태계의 변화를 나누는데, 미국 자본의 침투는 비슷한 시기 더 은밀하고 전략적으로 진행됐다. 특히 지난 5월 아브라모비치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정부
제재를 받으면서 물러나고, 미국의 사업가 토드 볼리가 이끄는 컨소시엄이 첼시의 새 주인이 된 일은 상징적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소속 첼시의 구단주 토드 볼리(가운데)가 지난 5월 영국 런던 스탬포드브리지를 찾아 첼시의 경기를 지켜보다 머리를 감싸 쥐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리버풀의 구단주 존 헨리(오른쪽)가 지난 2019년 영국 리버풀 안필드를 찾아 본인 팀의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리버풀/AP 연합뉴스
아스널의 최대 주주이면서 미식축구(NFL) 구단 로스앤젤레스 램스의 구단주이기도 한 스탠 크랑키가 지난 2월 램스가 슈퍼볼을 우승한 뒤 ‘빈스 롬바디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잉글우드/AP 연합뉴스
프리미어리그는 매력적인 사업처다. 수입과 지출, 영향력 모든 면에서 유럽 다른 빅리그의 추종을 불허한다. 통계 분석 기업 <스탯티스타>의 그래프를 보면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는
61억유로(약 8조1239억원)를 벌어들였다. 2위 스페인 라리가(34억유로), 3위 독일 분데스리가(30억유로)보다 2배 가까이 많다. 이 차이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초부터다. 메이저리그(MLB), 미식축구(NFL), 미국프로농구(NBA) 구단을 경영해본 큰 손들이 노하우를 살려 잉글랜드 진출을 본격화한 시기다.
유럽 스포츠계에 미국식 경영 전략을 접목한 이들의 성과에는 명암이 공존한다. 2010년 리버풀을 인수한 펜웨이스포츠그룹(FSG)의 존 헨리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이른바 머니볼 이론을 접목해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보스턴을 메이저리그 최강팀으로 탈바꿈했다. 그는 리버풀에서도
유럽 입자 물리학 연구소(CERN) 출신 데이터 과학자를 기용하는 등 남다른 운영을 선보이며 팀에 14년 만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18∼19시즌), 30년 만의 리그 우승(19∼20시즌)을 선사했다.
지난해 3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이 영국 맨체스터 올드트래퍼드 앞에서 “글레이저 가문은 나가라”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미국인 구단주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맨체스터/AP 연합뉴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블룸버그>는 한 스포츠 컨설턴트의 발언을 인용해 “유럽에서는 구단주가 수익을 남기면 욕을 먹는데, 미국에서는 기본적으로 투자자가 벌어가게 돼 있다.
중대한 문화 충돌이다”라고 두 대륙의 스포츠 문화 차이를 짚었다. 유럽의 축구팬들은 축구를 사업으로만 보고 구단 성적보다 수익에 신경 쓰는 미국의 자본가들에 반감을 표한다. 200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지분을 사들인 글래이저 가문이 대표적이다. 맨유팬들은 그들이 팀의 암흑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익만 빼간다며 틈만 나면 “글래이저는 나가라”(Glazers Out)를 외친다.
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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