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한국과 토고전이 열린 프랑크푸르트의 코메르츠방크 아레나는 마치 한국을 옮겨다 놓은 것 같았습니다. 경기 몇시간 전부터 경기장 주변에 빨간색의 무리들이 점차 많아지더니, 경기 1시간 전부터는 경기장 안이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둔갑했습니다. 선수들이 입장하자, 2002년 이래 항상 재치 있는 문구로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던 붉은 악마는 “보라! 승리를 확인하러 우리가 왔다”라는 글이 쓰인 대형 붉은색 유니폼을 들어올렸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콧등이 찡했습니다. 이것이 부담이 됐을까요. 태극전사의 전반전 플레이는 눈을 뜨고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발은 떨어지지 않고, 패스는 빗나가고, 지켜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옆에 있는 외국 기자는 하품을 해대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후반전은 마치 다른 팀이 나온 것 같았습니다. 선수들의 몸놀림이 활발해지고, 해보자는 열의가 스탠드 위쪽까지 뜨거운 바람을 타고 전해져 왔습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붉은 악마가 다시 경기 시작 전의 그 대형 유니폼을 들어올렸습니다. 글귀는 그대로였지만 “그래! 우리가 와서 승리를 확인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동안 경기장을 빠져나가지 않았습니다. 역전승의 기쁨을 오래 느껴보자는 모습이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신문선 <에스비에스> 해설위원에게 물어보니, “축구경기에서 선제골을 내주고 역전승을 하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어렵다”고 하더군요. 더구나 이날처럼 폭염 속에, 또 월드컵과 같은 수준높은 무대에서 역전승을 거두는 것은 더욱 어렵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한국 선수들은 해냈습니다. 이번 대회를 샅샅이 훑고 있는 최진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대표팀 코치도 “상대가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역전을 하려면 두세 배의 힘이 든다.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려는 투혼이 가장 중요하다”고 경험담을 들려주더군요. 그렇지만 역전승을 거뒀을 때 기쁨은 ‘찢어진다’고 하더군요.
이날의 역전승은 한국 축구사에도 큰 의미를 던져줄 것이 분명합니다. 우선 2002년 한국의 4강이 ‘안방의 장난’에 의한 것이 아니었음을 국제사회에 보여주었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선수들이 역전극을 통해 더욱 강해지고 더욱 강한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제 누구도 두렵지 않다’는 것은 선수들만의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국내외의 거리에서 응원을 하는 시민들도 역전승의 기를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저희 취재단도 너무 기를 많이 받았는지 아우토반을 최고 시속 200㎞로 밟으며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아우토반은 속도 무제한입니다. 뒤셀도르프에서 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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